릴리의 사이클린의존성키나제(cyclin-dependent kinase, CDK) 4·6 억제제인 ‘버제니오정’(Verzenio 성분명 아베마시클립, Abemaciclib)이 특정 유형의 조기 유방암에서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한 적응증 업그레이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릴리는 3일(현지시각) 재발 위험이 높은 조기 유방암에서 버제니오를 호르몬수용체 양성(HR+: 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양성), 인간표피성장인자수용체2 음성(HER2-), 결절 양성 성인 조기 유방암의 보조치료를 위해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selective estrogen receptor modulator, SERM) 제제인 ‘타목시펜’ 또는 아로마타제 억제제(AI)와 같은 내분비요법과 병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2021년 10월 13일에 허가받은 내용과 달라진 것은 이번에 ‘Ki-67’ 수치가 2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이로써 Ki-67 조건 때문에 제약받았던 족쇄가 풀려 더 많은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게 됐다. Ki-67은 세포 증식의 표지자로, 높게 발현될수록 암에서 특이적으로 생존기간이 짧아지게 된다. 이런 규정은 미국에서만 존재했고 유럽연합이나 한국에서는 이런 선별용 기준이 없다. 따라서 왜 FDA가 이런 기준을 설정했는지 의아하다는 게 손주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 등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다만 버제니오의 사용이 적합한 재발 고위험도 환자들은 결절 상태, 종양 크기, 종양 등급 등을 근거로 설정되는 것은 여전하다. 즉 4개 이상의 겨드랑이 림프절(axillary lymph nodes, ALN)을 가졌거나, 1~3개의 ALN이 있으면서 5cm 이상의 종양 크기 또는 3급 이상의 종양이 적어도 1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기준이 정해졌다.
FDA는 이번 적응증 업그레이드를 2021년 승인 당시 근거로 삼았던 3상 ‘monarchE’ 임상시험에서 4년차에 확보된 결과를 근거로 이번에 적응증을 추가 승인했다.
이번 데이터는 2년 전, 치료 2년차에 확보된 결과를 웃도는 무침습성 질병 생존기간(invasive disease-free survival, IDFS)을 보여줘 유익성이 한층 강화됐음을 입증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IDFS도 같이 증가한 게 확인됐다.
이와 함께 4년차에 평가했을 때 버제니오+내분비요법제 병용군의 무재발률은 85.5%로 집계돼 내분비요법제 단독요법을 진행한 대조군의 78.6%를 웃돌았다. 이 편차는 6.9%p로서, 2년차의 3.1%p, 3년차의 5.0%p와 비교할 때 격차를 벌렸다. 요컨대 병용군의 4년차 재발률은 내분비요법제 단독군에 비해 35% 낮았다.
안전성 측면에서 새로운 문제점은 확인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는 기존 자료와 대동소이했다.
monarchE 임상시험의 4년차 자료는 지난해 12월 6~10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개최된 제45차 샌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SABCS)에서 발표되었고, 의학 학술지 ‘란셋 온콜로지’에도 게재됐다.
monarchE에는 총 5637명의 환자가 참여해 2개 코호트로 나뉘어져 임상시험을 도왔다. 자료 산출을 위한 컷-오프 시점에서 전체생존기간은 도출되지 않았고, 코호트2 그룹의 경우 병용군이 단독군에 비해 사망자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253명 중 10명 vs. 264명 중 5명)
이 임상시험을 진행한 테네시주 내슈빌의 사라캐넌연구소의 에리카 해밀턴( Erika P. Hamilton) 박사(유방암‧부인암 과장)는 “초기 유방암에서 강화요법의 목표는 관해 상태를 유지하고 암의 재발을 예방하는 데 있다”며 “monarchE 임상시험에서 4년차에 도출된 자료에 나타난 유익성을 보면 재발 위험성이 높은 성인 호르몬 수용체 양성,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음성, 결절 양성 초기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표준요법제로 ‘버제니오’ 보조요법제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버제니오가 조기 유방암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취득하면서 임상관행에 변화를 가져왔다”며 “새로운 적응증이 추가됨에 따라 더 많은 수의 유방암 환자들이 재발 위험성을 낮추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올해 유방암을 진단받는 환자 수는 3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90% 정도가 초기에 유방암을 진단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유방암 환자 가운데 70% 정도(미국의 한 연구는 72.7%)가 호르몬 수용체 양성,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음성 하위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유형의 초기 유방암 환자 예후는 일반적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은 저위험도 환자들에 비해 재발 위험성이 3배 정도 높은데다가 대다수는 난치성 전이성 유방암을 나타낸다는 게 릴리의 설명이다. 특히 내분비요법제를 사용하는 처음 2년 동안 재발 위험성이 높게 나타난다.
릴리의 항암제 개발 계열사인 록소온콜로지(Loxo Oncology) CEO인 야콥 반 나르덴(Jacob Van Naarden)은 “적응증이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종양이 재발해 치료가 어려운 전이기에 도달하기 이전 단계에서 보다 많은 수의 호르몬 수용체 양성,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음성, 고위험성 초기 유방암 환자들이 버제니오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며 “버제니오가 조기유방암의 재발위험을 막는 보조치료제로서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데 이어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성숙해진 monarchE 임상 결과를 근거로 적응증이 추가 승인됨에 따라 차별화된 CDK4/6 저해제가 초기 유방암 환자들의 재발 위험성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