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은 6일(현지시각) 공동 개발한 항 베타-아밀로이드 원시섬유(protofibril) 항체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인 레카네맙(lecanemab, 개발코드명 BAN2401)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가속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치료 적응증은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 또는 경도 치매 단계의 질병이 있고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 형성이 확인된 환자의 치료다.
미국에서 레카네맙은 ‘레켐비’(Leqembi)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레켐비는 2021년 6월에 미국에서 승인된 최초의 항 베타-아밀로이드 계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에 이어 알츠하이머병의 근본적인 병태생리를 표적으로 하는 두번째 의약품이다. 둘 다 가용성 및 불용성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인간화 면역글로불린감마1(IgG1) 단일클론항체로서 정맥주사 제형이다.
애듀헬름은 첫 번째 항 베타-아밀로이드 계열 치료제이지만 FDA 산하 자문위원회가 8대 3(찬성1, 기권 2)으로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돼 유효성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냉담한 의사들의 반응, 연간 5만6000달러로 책정해놓은 높은 약값, 의회 및 미국 연방정부의 허가 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 미국 보험사들의 보험약제 등재 거부 등으로 수난을 겪었다. 이번 레켐비 승인으로 양사는 애듀헬름 마케팅을 서서히 접고 레켐비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승인은 레켐비가 알츠하이머병의 결정적인 특징인 뇌 내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 축적을 감소시킬 수 있음을 입증한 2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레켐비로 치료받은 856명의 환자들은 뇌내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가 용량 및 시간 의존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이 환자의 인지능력을 개선하는지 여부는 평가하지 않았다.
알츠하이머병처럼 의료수요가 높고 기존 치료제가 확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통상 2상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신약승인이 나온다. 레카네맙도 아두카누맙과 마찬가지로 2상 결과만으로 승인을 얻었다.
양사는 아두카누맙의 논란을 걷어내기 위한 3상 임상시험 결과를 2022년 9월(초기자료)과 11월(상세자료)에 추가로 발표했다. 3상 CLARITY AD 연구 결과 레카네맙은 ‘임상치매등급 평가총점’(Clinical Dementia Rating-Sum of Boxes, CDR-SB) 기준으로 18개월차 경증~중등도 알츠하이머병(AD) 환자의 임상 증상 정도가 위약에 비해 27%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18개월의 레카네맙 투여가 환자의 인지기능저하를 27%가량 늦출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아두카누맙 승인 과정에서 겪은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양사의 처철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향후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18개월 이후에도 효과가 지속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에 대해 미국 알츠하이머병협회(Alzheimer’s Association)의 조안 파이크(Joanne Pike) 회장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단계에서 레카네맙을 복용하면 질병의 진행을 늦춤으로써 개인이 일상생활에 참여하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줄 것”이라며 “대략 환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인식하거나 가치 있는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18개월 외에 추가로 6개월 정도는 확보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는 양전자단층촬영(PET) 영상을 사용해 알츠하이머병 병리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뇌 영역과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뇌 영역을 비교해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 수치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정량화됐다.
레켐비 치료는 임상시험을 통해 연구된 집단인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치매 단계의 환자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 이전 또는 이후의 질병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안전성 또는 유효성 데이터는 없는 상태다. 권장 용량은 치료 시작 전 아밀로이드 베타 병리 존재가 확인된 적격 환자를 대상으로 2주마다 1회 10mg/kg을 정맥 투여하는 것이다.
레켐비 처방 정보에는 뇌 자기공명영상으로 판독하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myloid 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ARIA)에 대한 부작용 경고가 포함된다. ARIA는 대개 증상이 없지만 드물게 심각하고 치명적인 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 보통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는 일시적인 뇌 부종이 나타나며 뇌 내부 및 표면의 작은 출혈 반점을 동반할 수 있다. 일부 사람은 두통, 혼란, 어지럼증, 시력 변화, 오심, 발작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양사는 의약품 라벨을 통해 레켐비 치료 시작 후 첫 14주 동안 ARIA에 대한 강화된 임상적인 경계를 권고했다. 치료 시작 전 1년 이내 뇌 MRI 검사를 실시해야 하며 5번째, 7번째, 14번째 주입 전에 MRI를 사용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시행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레켐비 경고문에는 주입 관련 반응 위험과 독감 유사 증상, 오심, 구토, 혈압 변화 같은 증상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레켐비 투여 후 가장 흔한 부작용은 주입관련반응, 두통, ARIA였다.
레켐비는 이미 임상시험 도중 3명이 사망하는 안전성 논란을 겪었다. 2022년 10월, 11월과 2023년 1월에 3명의 사망사례가 각각 ‘STAT News’ ‘SCIENCE INSIDER’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 편집자 레터 등에 보도 또는 보고됐다. 3명 모두 뇌출혈 관련 사망자다.
이에 대해 에자이의 임상연구 부문 수석 부사장인 마이클 이리자리(Michael Irizarry)는 “대뇌 거대출혈인 뇌출혈은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작용”이라며 레카네맙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의학계도 상당 부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들은 ARIA 등의 영향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의심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항체인 레카네맙이 혈관을 감싸고 있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공격하면서 뇌의 혈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망한 모든 환자는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ARIA로 인해 출혈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3명의 약제 관련 사망 소식은 이번에 레카네맙이 허가되지 않을 수도 있는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했다. 다행히도 긍정적인 3상 결과가 이런 부정적인 기류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양사는 확증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보완해 가속승인이 나온 6일, 정식승인을 얻기 위해 보충적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서를 동시에 제출했다. 또 2022 회계연도(에자이 기준 2023년 3월 31일 종료) 말까지 일본과 유럽에서 레카네맙의 판매 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사는 미국에서 레켐비 출시 가격(도매상 출고가)을 1년에 2만6500달러로 정했다고 밝혔다. 애듀헬름의 5만6000달러(최초 설정 가격)에 비하면 ‘착한’ 가격이다. 애듀헬름은 현재 비보험으로 연간 2만8000달러에 처방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미국에서만 650만명이 존재할 정도로 미충족 의료수요가 큰 질환이다. 미국 시민단체들은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아직 일상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을 감수하고 연간 2만6500달러를 들여 레켐비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FDA는 현재 레켐비, 애듀헬름과 같은 계열인 릴리의 도나네맙(donanemab, 개발코드명 LY3002813)의 신약승인 심사를 진행 중이다. 도나네맙도 올해 2월초까지 승인 여부가 결정날 전망이다. 릴리도 피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실질적으로 제거했음을 보여준 2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가속승인을 신청했다.
도나네맙은 2022년 11월 30일에 내놓은 3상 ‘TRAILBLAZER-ALZ 4’ 연구에서 애듀헬름과 직접 비교한 예비 결과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 능력이 우월함을 입증했다. 아밀로이드 표적요법으로 치료받은 초기 증상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 능력을 기존 승인 치료제와 직접 비교한 최초의 임상시험으로서, 활성 비교 데이터가 도출된 데 의미가 크다. 아두카누맙, 레카네맙의 전례에 따라 도나네맙도 오는 2월 승인이 유력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