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보다 미국에서 신약 흉년을 맞은 2022년, 기술적·임상적·상업적으로 큰 혁신을 불러일으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상위 5개 올해의 신약은 무엇일까. 이들 신약이 왜 특별한지 의미를 부여해본다.
미라티테라퓨틱스 ‘크라자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표적항암제 전문기업 미라티테라퓨틱스(Mirati Therapeutics, 나스닥 MRTX)는 지난 12월 12월 FDA로부터 KRAS G12C 변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크라자티’(KRAZATI, 성분명 아다그라십 adagrasib, 코드명 MRTX849)를 가속승인받았다.
크라자티는 FDA가 승인한 두 번째 KRAS 억제제다. KRAS는 한 때 표적화하기 어려운 약으로 만들기 불가능하다(undruggable)고 여겨졌던 표적이다. 크라자티는 2021년 5월 28일 세계 최초의 KRAS G12C 유전자 변이 동반 성인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미국에서 가속승인된 암젠의 경구용 항암제인 ‘루마크라스’(Lumakras 성분명 소토라십 Sotorasib)와 경쟁하게 된다.
크라자티는 승인된 지 열흘 만인 지난 12월 21일 EGFR 표적항암제 ‘얼비툭스주’(ERBITUX, 성분명 세툭시맙, cetuximab)와의 병용요법이 KRAS G12C 변이 진행성 대장암의 3차 치료제로서 FDA 혁신치료제 지정을 받았다.
시장의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미국 월가는 크라자티가 연간 10억달러 이상을 팔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라티는 이런 낙관적인 기대에 힘입어 2022년 유력한 피인수 기업으로 루머가 횡행한 대표적인 바이오파마 기업이었다.
버지니아암전문가연구협회(Virginia Cancer Specialists Research Institution)의 알렉산더 스피라(Alexander Spira)의 박사는 “임상적 측면에서 일부 사람들은 어떤 항암제에 다른 항암제보다 더 잘 견디기 때문에 하나 이상의 대안을 갖는 것이 항상 좋다”고 말했다. 크라자티와 루마크라스가 호환 가능한 대체제로 좋은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알닐람의 ‘앰부트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소재 알닐람파마슈티컬스(Alnylam Pharmaceuticals)는 다발성신경병증(polyneuropathy, PN)을 유발하는 유전성 트레스티레틴(transthyretin, TTR) 매개 아밀로이드증(hereditary Amyloidosis associated with transthyretin, hATTR) 치료제로 ‘앰부트라’(Amvuttra, 성분명 부트리시란, Vutrisiran, 코드명 ALN TTRsc02)을 올해 6월 14일 FDA 승인을 받았다. 앰부트라는 3개월마다 1회 피하주사하는 새로운 RNAi(RNA 간섭) 치료제다.
이 회사는 앰부트라와 동일한 적응증과 기전을 가진 ‘온파트로’(Onpattro 성분명 파티시란 patisiran)를 보유하고 있다. 파괴적인 신경장애를 가진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치료 옵션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환자나 제약사에게 든든하다.
존스홉킨스대 의대 신경과 교수이자 앰부트라의 3상 HELIOS-A 임상연구를 주과한 마이클 폴리데프키스(Michael Polydefkis) 박사는 “앰부트라가 수용할 만한 안전성을 가진데다가 다발성신경병증 진행을 중단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알닐람의 행보는 RNAi 치료제 분야의 최상위 회사로서 내년에 피인수 대상이 되는 무대에 오를 기회를 열 것으로 보인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캄지오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지난 4월 28일 성인 증후성 뉴욕심장협회(NYHA) 2~3등급 폐쇄성 비후성 심근병증(obstructive hypertrophic cardiomyopathy, oHCM) 의 기능 및 증상 개선제 ‘캄지오스’(Camzyos 성분명 mavacamten 마바캄텐) 2.5mg, 5mg, 10mg, 15mg 캡슐제로 FDA 승인을 획득했다.
캄지오스는 BMS가 2020년 10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브리즈번(Brisbane) 소재 심장질환 전문 바이오업체 마이오카디아(MyoKardia)를 131억달러에 인수하면서 확보한 핵심 자산이다.
연간 최대 매출이 4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심부전 치료제는 곧 특허가 만료되는 이 회사 베스트셀러인 PD-1 억제제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 항응고제 ‘엘리퀴스정’(Eliquis 성분명 아픽사반 apixaban)에 매출 감소에 대비하려는 BMS의 행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캄지오스는 oHCM의 근본적인 병태생리학적으로 심장 미오신에 대해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유일한 FDA 승인 알로스테릭 및 가역적 억제제다. 근육 수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오신 단백질을 억제해 심근육의 이완 능력을 향상시켜 심장의 박출력을 높인다. 과도한 심근수축을 누그러뜨려 전반적인 심장 펌프질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미국 클리브랜드클리닉의 임상운영 책임자이자 비후성심근증센터 소장인 미린드 데자이(Milind Desai)는 “ 캄지오스 승인으로 심장병 전문의들이 oHCM의 기본 병태생리학 기전을 표적으로 하는 적격 환자를 위한 새로운 약리학적 옵션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블루버드바이오의 ‘스카이소나’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중증 유전성질환 및 암 치료용 유전자 치료제 개발 전문 생명공학기업 블루버드바이오(bluebird bio)는 지난 9월 16일 대뇌부신백질이영양증(cerebral adrenoleukodystrophy, CALD, 일명 로렌조오일병) 유전자치료제인 ‘스카이소나’(Skysona, 성분명 엘리발도진 오토템셀, elivaldogene autotemcel, 일명 엘리셀(eli-cel)로 FDA 가속승인을 받았다.
한 달 전인 8월 17일 유전자치료제 ‘진테글로’(Zynteglo 성분명 베티베글로진 오토템셀, betibeglogene autotemcel, 일명 베티셀)이 정기적인 적혈구 수혈이 필요한 소아 및 성인의 베타-지중해빈혈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쾌거였다.
스카이소나는 두 가지 이유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단회성 치료제로서 1회 치료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300만달러로 책정됐다. 진테글로는 280만달러, 노바티스의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 유전자치료제인 ‘졸겐스마’(Zolgensma 성분명 오나셈노진 아베파보벡, Onasemnogene abeparvovec)는 210만달러다.
둘째,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유전자치료제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올 초만 해도 유전자치료제는 안전성 문제와 별 볼 일 없는(less-than-stellar) 유효성으로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블루버드바이오 같은 차세대 개발자들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아미릭스파마슈티컬스의 ‘렐리브리오’
지난 9월 29일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소재한 신경퇴행성질환 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아미릭스파마슈티컬스(Amylyx Pharmaceuticals, 나스닥 AMLX)가 개발한 ‘렐리브리오’(Relyvrio 성분명: 페닐부티르산 나트륨+타우루소디올, sodium phenylbutyrate + taurursodiol, 개발코드명 AMX0035)가 루게릭병으로도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렐리브리오는 기존 루게릭병 치료제와 달리 질병교정(disease-modifying, 병리기전에 대응한 개선)을 하는 치료제다. 기존 사노피 젠자임의 ‘리루텍정’(Rilutek 성분명 릴루졸 Riluzole)은 과량의 글루타메이트가 운동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것을 방어하지만 핵심 병리기전은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의 ‘라디컷주’(Radicut 성분명 에다라본 Edaravone, 미국 브랜드명은 라디카바 Radicava)는 자유라디칼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 손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 또한 해당되는 영역이 협소하다.
이에 반해 렐리브리오는 필수 단백질을 세포 안에 올바르게 삽입하는 소포체(endoplasmic reticulum, ER) 증강제인 소듐 페닐부티레이트(Sodium Phenylbutyrate)와 뉴런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해 세포사멸을 줄이는 타우루소디올(Taurusodiol)의 복합제다. 이같은 기전상의 차이는 진행성 신경퇴행성질환에 대한 치료 패러다임에 상당한 발전을 가져온 것으로 인정된다.
렐리브리오는 ALS에 대한 높은 미충족 의료 수요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특혜’를 받지 않고 여느 신약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절차를 거쳐 승인됐다는 점이다.
올해 3월 30일 FDA 산하 말초‧중추신경계약물 자문위원회(PCNSDAC)는 단일군, 무작위 배정, 위약대조, 표지개방, 기간연장 방식으로 진행된 2상 CENTAUR 임상시험의 데이터가 AMX0035가 ALS 치료제로서 효과적인지 묻는 설문에 찬성 4표, 반대 6표로 허가를 권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FDA는 아미릭스가 새로운 분석결과를 제출한 뒤 가진 지난 9월 7일의 두 번째 자문위 투표에서 찬성 7표, 반대 2표로 이 약의 유익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오자 승인을 결정하게 됐다.
월가는 렐리브리오가 연간 최대 5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