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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삼천포로 빠져야만 하는’ 사천여행 … ‘실안 낙조’와 ‘동백 향연’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12-21 09:19:12
  • 수정 2022-12-21 16: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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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첫 등장 ‘사천해전’의 무대 … 노산공원 옆 박재삼문학관

경남 사천시(泗川市)는 삼국시대 가야의 사물국과 군미국으로서 일찌감치 역사에 등장했다. 북쪽으로는 진주시, 서쪽으로는 하동군, 동쪽으로는 고성군, 남쪽으로는 남해군과 맞닿아 있다. 1995년 5월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돼 지금의 사천시가 됐다. 사천 동남쪽의 동(洞)으로 명명된 지역이 옛날 번성했던 삼천포시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있다. 장사꾼이 진주로 가야 돈을 버는데 엉뚱하게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뜻은 아니지만 사천 여행자의 대부분은 삼천포로 빠진다. 그만큼 사천의 여행지의 대부분이 삼천포 일대에 몰려 있고, 삼천포로 가야 재미가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사천만 해안도로


‘실안의 낙조를 보지 않고는 낙조를 논하지 말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낙조는 어디라 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실안마을에서 보는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 하여 사천 8경으로 꼽는다.


사천시 대방동(大芳洞)에서 실안동(實安洞) 사이 사천만을 끼고 이어지는 약 6km에 달하는 실안해안도로는 남해안의 해안 풍경과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에 대나무발 벽을 세워 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방식인 죽방렴이 펼쳐져 더욱 특별한 풍광이 연출된다. 대한민국 바다에서 물살이 센 곳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과 사천시와 남해군 사이의 사천 앞바다다. 이런 지형의 특성 때문에 죽방렴 어업을 할 수 있다. 조류에 대발로 밀려들어온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해 잡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순신바닷길 2코스가 지나는 해안도로 역시 낙조 명소로 손색이 없다. 2코스는 선진리성에서 각산(角山모충사(慕忠寺)에 이르는 12km의 둘레길이다. 걸어서 대략 3시간이 걸린다. 최초로 거북선이 출항했던 ‘거북선마을’을 둘러보며 낙조 감상을 해도 좋겠다. 


선진리성(船津里城)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은 왜성이다. 선진항의 북방에 있다. 삼면이 바다에 면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는 반도 지형에 성이 세워졌다. 바다와 가까워 이미 고려시대부터 조창을 설치했고 그 주변에 토성을 쌓았다. 봄이 되면 벚꽃 10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이순신 장군은 선진리 앞바다에 거북선을 처음으로 등장시키며 왜선 13척을 침몰시키니 그게 바로 사천해전이다. 


모충사는 바위와 선홍빛 진달래가 아름다운 곳으로 사천만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조계종의 사찰이지 이순신 장군 사당은 아니다. 그 옆 송포동 월천포(月川浦)의 모충공원(慕忠公園)은 1592년 7월 8일 사천해전이 벌어졌던 모자랑포(毛自郞浦)와 가깝고, 노량해전이 벌어진 노량목(露梁牧)이 멀리 바라보인다. 모충공원은 1953년 충무공 탄신일에 맞춰 지어진 기념공원이다. 


모자랑포보다 약간 북방의 대포항이 있는 서포면 대포마을은 매년 7~8월 전어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거기서 조금 더 북으로 올라가면 사천대교가 나온다. 사천만의 서포면 자혜리(서편)와 용현면 주문리(동편)를 가로 지르는 다리로 2006년 12월에 개통됐다. 참고로 대포동(남양동 관할)은 대포마을에서 동쪽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시 지역에 속한다. 


삼천포항의 일몰 / 변영숙

붉게 물들어가는 남해안 갯벌은 고요함만이 가득하다. 시간이 갈수록 검붉은 색을 띠다 급기야는 까만 암흑으로 빛나는 낙조는 너무 아름다워 숨이 막힐 정도다. 혹여 크게 내쉬는 숨소리가 장엄한 자연의 의식에 누가 될까 숨죽여 바라볼 뿐이다. 바다와 바다 건너 섬들,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갯벌, 갯벌 위에 솟은 부채꼴 모양의 죽방렴 …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형체들이 하나둘씩 어둠 속에 잠긴다. 온 세상의 모든 형체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편하게 큰 숨을 내쉰다.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에게 이보다 따스한 위로가 있을까.


동백과 바다 & 문학이 어우러진 곳 ‘노산공원’


매년 11월에 시작돼 12월에 절정을 이루는 노산공원 동백숲 / 변영숙

전국을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사천에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삼천포 바다 끝, 삼천포항 동편에 위치한 노산공원에는 한창 동백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바닥은 떨어진 꽃잎으로 분홍색 융단이 깔린 듯하다. 다른 편에서는 새 꽃잎을 틔우기 위해 막바지 진통을 하고 있다. 


노산공원은 구항과 신항의 경계 지점인 삼천포 팔포항 바닷가에 봉긋 솟아 있는 자그마한 언덕(노산, 魯山)에 있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그 끝에 오르면 삼천포 앞바다와 다도해, 삼천포대교, 멀리 청널공원까지 조망할 수 있다.


넓은 암반 위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선가 구슬픈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이어폰을 잊어버린 노신사가 틀어 놓은 노랫소리인가 싶었지만 분명 공원 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이다.


삼천포 팔포항 갯바위에 세워진 ‘삼천포 아가씨’ 동상 / 변영숙

갯바위에 세워진 자그마한 여인상을 발견하는 순간 노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이 여인상은 1965년 발표돼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은방울 자매의 노래 ‘삼천포 아가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부산, 마산, 통영, 여수 등지를 오가던 연안여객선을 타고 오갔던 청춘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삼천포 아가씨’는 남해의 작은 항구 도시 삼천포항을 단숨에 전국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비 내리는 바닷가에서 오늘도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삼천포 아가씨가 구슬퍼 보이기만 하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 년이요 이 년이요 /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중략> 꽃 한 송이 꺾어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 / 님을 싣고 떠난 배를 날마다 기다려요./


‘삼천포 아가씨’ 여인상과 물고기상을 지나면 데크길은 노산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노산정’이 나온다. ‘노산정’에 오르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삼천포 앞바다와 삼천포대교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청널공원의 랜드마크인 푸른 지붕의 풍차 모습도 멀리서나마 조망해 볼 수 있다.


넋을 잃고 한려수도의 바다 풍경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꽃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꽃 향의 진원지는 노산공원을 뒤덮고 있는 ‘동백꽃’. 12월 노산공원은 그야말로 동백꽃이 지천이다. 노산공원이 아니라 차라리 동백동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하다. 1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12월에 절정을 맞이하는 사천의 동백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노산공원의 길목마다 활짝 핀 동백꽃이 화사하게 방문객을 반긴다. 분홍빛이 도는 사천의 동백이 여심을 붙들어 매는 터에 좀처럼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운이 좋으면 인적이 드문 노산공원의 동백 숲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도 있다.


삼천포의 대표적 향토 서정 시인, 박재삼 


노산공원에서 동백꽃 놀이를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박재삼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려 보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은 삼천포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여생을 지낸 시인은 가난과 억울함 등을 우리의 전통적 가락에 잘 실어 담았다고 평가받는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등이 있다.


박재삼문학관 입구의 벤치에 편안하게 앉은 모습을 한 박재삼 시인의 동상 / 변영숙

고향의 바닷가 햇빛 곱게 드는 언덕, 동백 숲에 자리한 시인의 집이 참으로 부럽다. 동백 숲에 그의 대표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문학관 입구에서 벤치에 편안하게 앉은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문학관에는 시인의 흉상과 시인의 서재 등이 꾸며져 있고 그의 대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문학관 옆에 호연재(浩然齋)라는 잘 지어진 한옥 건물 한 채가 보인다. 호연재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건립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학당으로 지역 유림들의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짓던 곳이다. 1901년 ‘보흥의숙’으로 전환돼 교육기관으로 출범하였고, 1905년에는 ‘광명의숙’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립학교로 정규교육을 시작하였다. ‘광명의숙’을 모태로 삼천포공립보통학교(현 삼천포초등학교)가 출범했다. 1906년 호연재를 출입하는 문객들이 일본의 침략 행위에 울분을 토하는 시문집을 발간하자 일본 경찰은 호연재를 강제 철거했다. 이후에도 호연재는 주경야독하는 초당 서재로 재건립돼 운영되면서 후에 3.1만세 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현재의 호연재 건물은 지역 시민들이 뜻을 모아 2008년 복원, 재건립했다.


조선의 비밀 수군기지 ‘대방진굴항’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조선 순조 때 건설한 인공항구인 사천의 대방진굴항 / 변영숙

신항에도 등대가 있지만 더 유명한 것은 구항의 옆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항구인 대방진굴항(大芳鎭掘港)의 작은 등대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하얀 등대는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방진굴항은 빈번해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고려 25대 충렬왕 28년(1302)에 인공으로 조성된 병영지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을 수군기지로 삼아 거북선을 숨겨 두고 병선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민물을 채웠다는 얘기가 전한다.


사실상 폐쇄돼 쇠퇴한 것을 조선 순조(1801~1834) 때 인공항구(굴항)로 복원했다. 남해 창선도와 군사 연락,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대방선진을 설치가 주목적이다. 활 모양으로 둑을 쌓아 만을 만들고 굴항을 설치한 게 현재의 모습이다. 진주목 관하 73개면에서 수천명이 동원돼 1820년에 완공됐다. 이후 300여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이 상주했다고 한다. 굴항 북편에는 수군장과 병사들의 거처가 늘어선 수군촌, 곡식 2만섬을 저장할 수 있는 선진창이 있었다고 한다.


‘굴항’이란 해안선으로부터 육지 쪽으로 땅을 파서 만들거나 해안선에서 바다 쪽으로 돌담을 쳐서 만든 군항 시설로 바깥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름대로 비밀 수군기지인 셈이다. 실제로도 바깥쪽에서는 기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뿐더러 축대에 올라서도 사방으로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듯한 나뭇가지 때문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굴항 중간 쯤에 ‘고려 충렬왕 때 조성된 인공 병영지이며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왜구를 섬멸하여 사천대승을 거둔 해전사에 길이 남을 수군 요새’로 ‘충무공의 호국정신이 깃든 유적지’라는 내용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복원된 대방진굴항에는 주민들이 사용하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200년이 넘은 팽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사천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다. 대방진굴항 바깥쪽에는 삼천포대교와 삼천포항이 지척이며 안쪽으로는 마을이 형성돼 있다.


팔포음식특화거리 & 삼천포용궁수산시장


노산공원 바로 아래에 팔포(八浦) 매립지에는 ‘팔포음식특화거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맞은편 2012년 어항구로 지정된 팔포항은 낚싯배, 수산물, 운반선 등 화물선이 이용하는 무역항으로 사량도, 수도도 등 인근 섬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이 출발한다. 팔포란 와룡산(臥龍山) 주봉의 급류인 선내천(한내)이 삼천포 선상지(삼각주)를 형성하면서 바다로 유입되면서 물줄기가 ‘여덟 팔’자로 벌어졌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팔포음식특화거리에는 횟집, 숙박시설, 별미 식당 등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싱싱한 자연산 생선회와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며 숙박도 가능하다. 매해 가을이면 사천의 대표축제인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다리를 건너면 10년이 젊어진다는 ‘팔포십년다리’도 조성돼 있다. 이웃한 고성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이 색다른 정서를 자극한다.


노산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삼천포용궁수산시장’(옛 삼천포어시장)이 있다.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삼천포 대표 수산시장이다. 약 270여 개의 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각종 활어와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방어가 제철이다. 혼자 온 여행객에게 방어 반 마리를 두말없이 회를 떠 주는 친절함에 눈물겹도록 고맙다. 매년 3월에는 도다리 세꼬시와 도다리쑥국을 즐길 수 있다. 


삼천포용궁수산시장과 팔포음식특화거리에는 남해군에서 잡힌 선어들이 창선대교를 넘어 집결한다. 지금은 통영에 주도권을 뺏긴 느낌이지만 삼천포가 한참 잘 나가던 1970~1980년대에는 오히려 통영을 제쳤다. 진주 사람들도 당연히 삼천포에서 장을 보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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