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릴리, 바이오젠 등이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 개발에서 3파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로슈가 경쟁에서 밀리는 불리한 조짐이 나타났다.
로슈는 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물질인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이 GRADUATE I 및 II 등 2건의 3상 임상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1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30개국에서 알츠하이머병 또는 알츠하이머치매에 의한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 환자(초기 알츠하이머병) 1965명을 모집해 27개월여 동안 피험자 무작위 배정, 이중맹검, 위약 대조 방식으로 진행된 두 임상시험에서 간테네루맙으로 치료받은 환자의 ‘임상치매등급 평가총점’(Clinical Dementia Rating-Sum of Boxes, CDR-SB)의 점수는 평가시작시점(기저선)보다 각각 0.31점 및 0.19점 감소했다. 이는 모두 통계적 유의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를 상대적으로 수치화하면 간테네루맙은 위약에 비해 두 임상에서 각각 8%, 6% 정도의 임상적 증상의 감소(발현 지현)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 감소를 늦췄습니다.
CDR-SB는 기억력, 지남력(방향감각 orientation), 판단력 및 문제 해결능력, 일상 사회활동(community affairs), 가정과 취미, 개인관리(personal care) 등을 포함한 6개 영역에 걸쳐 인지 및 기능 변화를 평가하는 지표이다.
임상시험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내부에 축적돼 플라크를 형성시키는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제거 수준(청소율)도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슈는 두 임상시험의 톱라인 결과를 오는 11월 29일~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제15회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 학술대회(CTAD)에서 30일 공개할 예정이다.
아밀로이드 관련 비정상적 자기공명영상소견(Amyloid 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ARIA)은 아밀로이드 표적치료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방사선 진단 소견이다. 간테네루맙 치료군은 ARIA 기준 혈관부종 및 열구삼출액(ARIA-vasogenic edema and sulcal effusions. ARIA-E) 소견이 발생한 비율이 25%에 달했으나 대부분 무증상을 나타냈고, 약물투여 중단으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고 로슈는 설명했다.
뇌내 미세출혈, 뇌내 대출혈, 표재성 철색소 침착증 등이 나타났음을 반영하는 ARIA 기준 헤모시데린 침착(ARIA-hemosiderin deposits, ARIA-H) 소견은 간테네루맙 투여군과 위약 대조군 사이에서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로슈는 대변인 입장 표명을 통해 “이번 3상 결과에 따라 초기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모든 간테네루맙 연구를 중단할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 2차 예방(치매의 재발과 악화 방지)에 관한 SKYLINE 임상 연구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하주사 제형인 간테네루맙은 플라크, 원섬유(fibrils), 올리고머와 같은 응집체를 형성하는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삼아 결합하는 완전 인간 단일클론 IgG1 항체다. 뇌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이러한 응집체를 제거하고 추가 형성을 방지한다.
로슈는 이번 임상 실패로 올해 들어 알츠하이머병 분야에서 두 번째 고배를 들었다. 지난 6월, 베타-아밀로이드 단일클론항체인 크레네주맙(crenezumab)은 희귀한 유형의 상염색체 우성 알츠하이머병(autosomal-dominant Alzheimer’s disease, ADAD)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데 실패했다 .
ADAD는 희귀 유전성 치매로 APP, PSEN1 또는 PSEN2 유전자의 단일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전 세계 모든 환자의 1% 미만이 ADAD를 가지고 있지만 보통 다른 치매에 비해 수십 년 전에 발병한다.
크레네주맙은 2019년에도 2건의 다른 3상 임상시험에 실패했다. CREAD 1 및 2라고 불리는 이 연구는 초기 단계 알츠하이머병에서 크레네주맙을 평가했는데 둘 다 중단됐다.
그러나 로슈는 가장 복잡한 신경계질환의 하나이자 주요한 공공보건 도전요인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을 개발 중이며 다양한 표적·유형·증상 진행단계에 따른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로슈는 초기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2상을 진행 중인 베프라네맙(bepranemab)과 경증~중등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2상을 마치고 결과를 분석 중인 세모리네맙(semorinemab)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두 신약후보는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단일클론항체다.
바이오젠 ‘레카네맙’ 긍정적 3상 결과 … 내년 1월초 FDA 심사 결과 발표 예정
하지만 경쟁 제약사는 최근 알츠하이머병 분야에서 복합적인 성공을 거뒀다. 지난 9월 27일,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 중인 항 베타-아밀로이드 원시섬유(protofibril) 항체 신약후보인 레카네맙(lecanemab, 개발코드명 BAN2401)은 3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뇌내 아밀로이드 침착이 확인된 알츠하이머병 및 경도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경도인지장애(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글로벌 3상 확증 임상시험 ‘Clarity AD’ 연구에서 레카네맙은 1차 평가지표인 CDR-SB와 모든 주요 2차 평가지표를 충족했다.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한 결과를 보였다.
Clarity AD 임상시험은 전 세계에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위약 대조, 이중맹검, 평행군, 무작위 환자 배정 방식의 연구다.
치료 18개월 차에 레카네맙은 CDR-SB 기준으로 인지 및 기능과 관련 임상적 저하를 위약 대비 27% 감소시켰다. 치료 의향(ITT) 모집단 분석에서 레카네맙 치료군은 위약군보다 0.45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레카네맙 치료는 위약과 비교했을 때 빠르면 6개월 차부터 모든 시점에 걸쳐 기저치 대비 매우 통계적으로 유의한 CDR-SB 변화를 보였고 모든 주요 2차 평가지표도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했다.
주요 2차 평가지표는 아밀로이드 양전자 단층촬영(PET)으로 측정된 뇌 내 아밀로이드 수치의 변화와 알츠하이머평가척도 인지기능영역14(ADAS-cog14), 알츠하이머종합점수(ADCOMS), 알츠하이머협력연구-경도인지장애 일상생활수행능력 척도(ADCS MCI-ADL) 점수가 포함된다.
항 아밀로이드 항체와 관련된 부작용인 ARIA-E 발생률은 레카네맙 치료군이 12.5%, 위약군이 1.7%였다. 유증상 ARIA-E 발생률은 레카네맙 치료군이 2.8%, 위약군이 0.0%였다.
ARIA-H 부작용 발생률은 레카네맙 치료군이 17.0%, 위약군이 8.7%이었다. 유증상 ARIA-H 발생률은 각각 0.7%, 0.2%로 집계됐다.
ARIA-E를 경험하지 않은 환자의 ARIA-H 단독 발생은 레카네맙 치료군과 위약군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총 ARIA(ARIA-E 및 ARIA-H) 발생률은 레카네맙 치료군이 21.3%, 위약군이 9.3%였다. 양사는 전반적으로 레카네맙의 ARIA 발생 프로파일이 예상 범위 이내였다고 설명했다.
나이토 하루오(Haruo Naito) 에자이 최고경영자(CEO)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 억제제인 ‘아리셉트’(성분명 도네페질) 출시 후 거의 25년 만에 나온 항 Aβ 원시섬유 항체 레카네맙의 긍정적인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커뮤니티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레카네맙 Clarity AD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뇌내 비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이라는 아밀로이드 가설을 입증했다”며 “뇌내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체 제거가 질병 초기 단계에서 질병 지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에자이는 미국, 일본, 유럽의 규제당국들과 이러한 데이터에 대해 논의할 것이며 2022 회계연도(2023년 3월 31일 종료) 말까지 미국에서 정식 승인 신청, 일본과 유럽에서 판매 허가 신청을 제출할 계획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7월에 레카네맙의 생물의약품승인신청(BLA)을 접수하고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처방의약품생산자수수료법(PDUFA)에 따른 심사 기한은 내년 1월 6일까지로 정해졌다.
에자이는 앞서 올해 3월에 일본에서 레카네맙의 조기 승인을 얻기 위해 일본 의약품 및 의료기기관리청(PMDA) 사전평가 협의 시스템 하에 Clarity AD 데이터를 제외한 승인 신청 데이터 제출 절차를 시작했다.
이는 지난해 6월 7일 유효성 부족 논란, 임상 데이터 조작에 의한 해석 방법 변경 논란을 일으킨 끝에 FDA 허가를 받은 바이오젠의 항 베타-아밀로이드 알츠하이머병 신약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에 대한 의혹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됐다. FDA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약물의 개선효과를 직접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아밀로이드-베타 수준을 감소시키는 능력을 기반으로 애듀헬름을 가속승인해 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레카네맙 임상시험에서 한 80대 남성 환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레카네맙에 의한 것이라 판단했다.
릴리 ‘도나네맙’ 내년 2월 가속승인 여부 결정 … 광범위 처방 받으려면 3상 성공해야
릴리는 2022년 8월 4일,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인 항 베타-아밀로이드 항체 도나네맙(donanemab, 개발코드명 LY3002813)이 FDA 가속승인 심사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3년 2월 초까지 FDA의 심사 결과가 도출될 예정이다.
릴리는 2021년 가을부터 임상 데이터를 FDA에 순차 제출했지만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가 바이오젠의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에 대해 공적 의료보험 적용 범위를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로 제한하기로 2022년 1월 12일에 확정함에 따라 서류 제출 속도를 늦춰왔다.
릴리도 애듀헬름의 전례에 따라 가속승인으로 도나네맙이 시판허가를 얻을 경우 처방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릴리의 가속승인 신청은 애듀헬름과 마찬가지로 피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실질적으로 제거했음을 보여준 중간 단계(2상)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 연구 데이터는 도나네맙의 인지 및 기능적 이점을 시사했으며, 릴리는 현재 진행 중인 더 큰 규모의 3상 연구를 통해 이를 확증할 계획이다.
릴리의 신경과학 사업부 책임자인 앤 화이트(Anne White)는 ”단기적으로는 현 CMS 정책에 따라 도나네밤의 환자 접근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잠재적인 가속승인에 이어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가 할 일은 진단 생태계를 구축하고 참조 자료 제공과 정맥주사법 교육을 통해 의사를 돕는 데 그 시간(가속승인 후 정식승인이 나올 때까지 기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릴리가 3상 연구가 성공한다면 정식 승인을 얻어 잠재적으로 CMS 정책에 따라 더 유리한 보험 적용 범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는 “우리가 정통 FDA 승인을 얻는다면 CMS가 온-라벨(적응증대로 처방) 치료에 대한 보험 적용 범위를 계속 제한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릴리의 3상 결과는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그 사이 바이오젠의 레카네맙은 긍정적인 결과를, 로슈의 간테네루맙은 부정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릴리로서는 레카네맙의 성공에 도나네맙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간테네루맙의 낙마에 경쟁자가 하나 사라짐에 대한 시원섭섭함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레카네맙, 도나네맙, 간테네루맙은 모두 뇌의 끈적끈적한 플라크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다. 이를 표적으로 삼고 나온 항체 의약품은 실패 리스트가 아주 길다.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해 여느 치료제처럼 광범위하게 처방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