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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청양의 면암 최익현 사당 ‘모덕사’ … 이름만큼 예쁜 ‘고운식물원’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10-19 09:15:48
  • 수정 2022-10-19 2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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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년에 청양으로 이주, 항일의병 일으켜 … 200억 사재 들여 2003년 개원

충남 청양군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해 공주시와 붙어 있는 목면(木面) 송암리에는 구한말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모덕사(慕德祠)가 있다. 


면암 최익현은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의 태두로서, 최고령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18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군 가채리에서 태어난 면암은 동향 출신의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792년~1868년)의 제자로 문학과 유학을 익혔다. 


그는 송시열과 송준길-권상하-한원진, 이간-이항로를 잇는 노론의 정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고종 즉위 직후부터 나온 정도전, 남곤, 정인홍, 한효순, 윤휴, 이현일 등의 복권 여론을 친구 김평묵과 함께 여러 번 결사 반대해 좌절시켰다.


면암은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며 벼슬길에 올라 숭문원, 성균관, 사헌부, 사간원 등 주로 언관으로 지냈다. 언관의 미덕인 강직한 성품을 드러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반대하다가 눈밖에 났다. 1864년에는 흥선대원의 집권(1864~1873)과 개혁정책을 적극 지했지만 흥선대원군이 노론을 견제하기 위해 남인 북인을 등용하자 서인의 입장에서 비판적 시간을 갖게 됐다. 1868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서원철폐령에 반대하며 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려 관직을 삭탈당했다.


명성황후와 여흥민씨 세력은 최익현과 손을 잡으려 애썼다. 1873년 동부승지로 기용됐고 반(反) 흥선대원군 세력과 제휴해 서원철폐 등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 좌의정 강노와 우의정 한계원 등의 부실한 일처리를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과격한 상소 내용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면암을 호조참판에 제수했다. 이어 그 해 10월 돈녕부 도정(왕의 친족이나 외척에 대한 계보나 보첩을 관장하는 정3푼 벼슬)에 올라 고종이 성년이 됐으므로 대원군이 섭정할 필요가 없으며 서원철폐령은 철회돼야 한다는 계유상소를 올려 대원군 10년 집권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 측으로부터 왕의 아버지인 군부를 논박했다는 공격을 받고 형식상 제주도에 위리안치됐다가 1875년에 풀려났다. 


1876년 2월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그 해 12월 도끼를 메고 개항을 해서는 안 되는 5가지 이유를 적은 이른바 도끼상소(持斧伏闕斥和議疏, 개항오불가 병자척화소)를 올렸다. 여러 척화소 중에서도 가장 논리정연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자신의 머리를 도끼로 쳐내야 개항이 가능하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지만 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4년간 흑산도로 위리안치됐다가 1879년에 석방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면암은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과 친일 집권세력의 갑오개혁(갑오경장)에 반발했다. 이듬해인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항일척사 운동에 앞장섰다. 유림 거두들이 단발령에 집단 반발하자 조정은 그 배후로 면암을 지목했고 내부대신 유길준이 체포를 위한 순검 1개 부대를 경기도 포천에 보내 투옥시켰다. 유길준은 직접 가위를 들고 최익현의 머리를 자르려했으나 완강하게 몸부림치자 끝내 삭발 기도에 실패하고 만다.


면암은 1898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를 혹세무민하는 민당(民黨)이라 지적하며 제거(해산)할 것을 고종에 건의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할 것과 망국 조약에 참여한 박제순,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등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임병찬과 함께 전북 태인(정읍)에서 의병을 모집해 일본군에 대항하다 전북 순창에서 체포돼 대마도로 이송다. 대마도로 이송된 면암은 일본군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며 단식 투쟁을 하다 1907년 1월 1일 순국했다. 


면암이 말년에 기거하던 모덕사 내 고택(중화당) /변영숙 제공

면암 최익현이 청양 모덕사에 모셔진 이유는 그가 비록 포천에서 태어났으나 1900년 충남 정산(현 청양군 목면)으로 이주해 모덕사 내 ‘중화당’고택에서 기거했기 때문이다. 


고택은 면암이 1900년부터 1906년 의병 봉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유물 전시관인 ‘대의관’에는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피혁류, 필기구 등 총 9종 128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서책과 서간문 등은 ‘춘추각’에 보관돼 있다.


면암 최익현의 제형을 모시는 모덕사 본당 /변영숙 제공

모덕사는 1914년 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건립했다. 고종이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모자와 덕자를 취해 ‘모덕사’라 이름지었다. 매년 9월 16일 유림 주관으로 제향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와 해공 신익희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모덕사를 찾아 고유제를 지냈다. 1946년에는 김구가 환국고유제를 올렸다. 1953년 3월 13일에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6.25전쟁 중 북한군으로부터 수도 서울을 수복한 기념으로 환도고유제를 지내고 잣나무를 심었다. 당시 심은 잣나무가 지금도 모덕사 담장 너머 시원하게 자라고 있다.


‘성충대의’라는 현판 걸린 모덕사의 영당 /변영숙 제공

모덕사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성된 영당에는 ‘성충대의’라는 현판과 함께 면암 선생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영정은 면암이 73세 되던 해인 1905년 정산 현감으로 있던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현재 봉안돼 있는 영정은 서울대 이종상 교수가 모사한 작품이다. 매년 4월 13일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해 제향을 봉행한다.


면암을 기리는 사당은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모덕사를 비롯해 경기도 포천의 채산사, 가평의 삼충단, 전북 군산의 현충단, 진안의 이산묘, 진안 마령의 영곡사, 순창의 지산사, 정읍의 시산사, 정읍칠보의 무성서원, 고창 도동사, 광주광역시 광산의 대산사, 전남 함평의 월악사, 곡성의 오강사, 구례 봉산사, 보성 모충사, 무안 평산사, 화순 춘산사, 유배지였던 제주도와 흑산도 등에 선생의 영장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에 순국에 일본의 이등박문과 중국의 원세개도 만사를 보내왔다고 하니 선비의 절개와 우국충정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것이다. 


청양읍의 숨은 보석, 고운식물원 … 11만평 규모, 8600종 식물


청양군 청양읍의 자연생태 고운식물원의 튤립원 전경/ 출처 식물원 홈페이지

청양읍의 고운식물원은 1990년에 조성되기 시작해 2003년에 정식 개원한 친환경 자연생태식물원이다. 일반인에게는 자연휴식공간, 학생들에게는 생태학습장, 조경인에게는 실습장이 됐다. 


11만3000평 규모로 사계정원, 튤립원, 단풍나무원 등 주제별 정원 33개이 꾸려졌으며 금낭화 하늘매발톱 땅나리 백작약 무릇 병꽃나무 생강나무 등 8600여종의 꽃과 나무, 희귀식물과 열대식물이 식재돼 있다. 2010년에는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 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1급 보호지정 식물인 광릉요강꽃을 비롯한 진노랑상사화, 노랑붓꽃, 독미나리 등 50여종에 달하는 국내 희귀식물과 식물 유전자원을 보전관리 하고 있다. 희귀야생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된 신안새우난초를 비롯한 국내 자생새우난초와 중국, 대만, 일본에서 수집된 희귀한 새우난초 120여종을 보유하고 있다. 


숲 속 꽃과 수목들을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와 스토리가 있는 11가지의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와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아기들에게 인기 많은 습지원과 반딧불이 관찰장, 식물원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팔각정 전망대 등이 있다. 자갈길, 흙길, 잔디밭길을 맨발로 걸을수 있다. 숙박시설인 방갈로와 자체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원예학을 전공한 청양 출신의 이주호 원장이 평생 모은 200억원의 사재를 털어 야산을 일구고, 세계 91개국을 다니며 식물원 운영 노하우 및 희귀식물을 수렴해 만들었다.


입장료는 성인 8000원, 학생과 노인은 5000원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로 1시간 단축된다. 


매년 8월말~9월초엔 청양 고추·구기자 축제


청양고추를 상징하는 청양군 천장호 출렁다리 주탑/ 변영숙 제공

청양은 청양고추와 구기자, 산나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칠갑산을 중심으로 계곡과 분지 형태를 이루는 경작지는 부식질이 많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과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을 갖춰 고추와 구기자 재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매해 8월 말에서 9월 초에 청양 고추·구기자 축제가 열린다.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의 유일웅 박사가 경북 청송과 영양의 고추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간 연구 및 시험재배한 끝에 개발됐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청양군은 “1968년 중앙종묘가 청양에서 고추가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양군 농촌지도소 소장에게 품종을 골라줄 것을 부탁하고 좋은 종자가 선정되면 그 고추에 청양고추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며 기원이 청양임을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청양고추는 매운 맛을 나타내는 스코빌지수(Scoville scale, 캡사이신의 농도를 계량화)가 4000~1만2000에 달한다.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약 1300정도이니 3배 이상 맵다. 청양고추는 보통 잘게 썰어 음식에 매운맛을 더하거나 육수에 칼칼함을 추가하기 위해 사용한다.


전국 구기자 생산량의 67%가 청양에서 생산된다. 구기자는 예로부터 복분자, 오미자, 사상자, 토사자와 함께 5자로 불리는 약재다. 진시황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면역증강, 뇌세포 활성화, 간기능 개선, 성인병 예방, 노화 방지, 피부 미용 등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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