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소재한 신경퇴행성질환 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아미릭스파마슈티컬스(Amylyx Pharmaceuticals, 나스닥 AMLX)가 개발한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치료제 ‘렐리브리오’(Relyvrio 성분명: 페닐부티르산 나트륨+타우루소디올, sodium phenylbutyrate + taurursodiol, 개발코드명 AMX0035)가 마침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 승인을 획득했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신경퇴행성 질환의 일종이다. 렐리브리오는 필수 단백질을 세포 안에 올바르게 삽입하는 소포체(endoplasmic reticulum, ER) 증강제인 소듐 페닐부티레이트(Sodium Phenylbutyrate)와 뉴런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해 세포사멸을 줄이는 타우루소디올(Taurusodiol)의 복합제다.
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 신경의학 치료제 관리국의 빌리 던(Billy Dunn) 국장은 “이번 승인으로 치유가 불가하고 치명적인 질환으로 꼽히는 ALS에 대한 또 하나의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29일(현지시각) 말했다.
ALS는 씹기, 걷기, 호흡하기, 말하기 등의 운동을 가능케 하는 수의근(隨意筋)을 조절하는 신경세포들을 공격해 사멸에 이르게 하는 희귀질환이다. 신경이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작용을 상실케 해 마비로 이어지게 한다. 진행성 질환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이 지속적으로 악화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전체 환자들의 90% 이상이 산발성 질환으로 가족력과는 무관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처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 3~5년 이내에 호흡부전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 미국에선 매년 5000명 가까운 환자들이 ALS를 진단받고 2만명 정도가 투병 중이다.
렐리브리오는 한 팩(packet)을 상온의 8온스(1온스는 29.57ml) 물과 함께 경구 복용제다. 필요에 따라 경관(feeding tube) 삽입을 통해 투여된다.
처음 3주 동안 렐리브리오의 권고용량은 하루 한 팩(페닐부티르산 나트륨 3g+타우루소디올 1g)이며, 3주 후부터 하루 2번, 총 2팩으로 증량한다. 식사나 간식에 앞서 복용할 수도 있다.
렐리브리오의 유효성은 137명의 루게릭병 환자들이 참여해 24주 동안 진행한 2상 ‘CENTAUR’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됐다. 다의료기관, 피험자 무작위 배정, 이중맹검법, 위약 대조, 병렬군 방식으로 진행된 임상이다.
임상 결과 렐리브리오 복용군은 걷고, 옷을 입고, 먹는 일상 기능을 측정하는 개정 근위축성측삭경화증기능평가척도(Revised ALS Functional Rating Scale, ALSFRS-R)에서 점수 감소폭이 위약 대비 적었다. 신체기능 감퇴 속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할 만하게 지연된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장기분석에서 도출된 전체생존기간은 렐리브리오 투여군이 위약 대조군에 비해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렐리브리오 복용군의 15% 이상에서 나타나고 위약대조군보다 5%p 높게 나타난 부작용은 설사, 복통, 구역, 상기도감염증 등이었다. 렐리브리오는 담즙산의 일종인 타우루소디올을 함유해 설사를 초래할 수 잇다. 약물 투여 후 초기 3주간 설사 증상이 더 심하다.
렐리브리오는 2020년 11월 27일 희귀의약품 지정을 거쳐 2021년 12월 29일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됐다. 올해 3월 30일 FDA 산하 말초‧중추신경계약물 자문위원회(PCNSDAC)는 단일군, 무작위 배정, 위약대조, 표지개방, 기간연장 방식으로 진행된 2상 CENTAUR 임상시험의 데이터가 AMX0035가 ALS 치료제로서 효과적인지 묻는 설문에 찬성 4표, 반대 6표로 허가를 권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FDA는 당초 올 6월 29일로 예정된 승인 결정일을 9월 29일로 3개월 연장했다. 아미릭스가 5월에 CENTAUR 임상연구에서 나온 새로운 장기 생존 분석 결과를 공개하면서 FDA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아미릭스는 위약 교차를 설명하기 위해 종양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RPSFTM(rank-preserving structural failure time model)을 사용한 사후 분석 결과 위약교차 투여 시 참가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이 6.9개월에서 10.6~18.8개월로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지난 9월 7일 재소집된 자문위는 찬성 7표, 반대 2표로 표결해 추가로 제시된 아미릭스 자료가 AMX0035의 유효성 증거가 승인을 뒷받침하는데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2020년 9월을 전후로 미국에서는 환자단체들이 왜 유효성이 높은 렐리브리오를 왜 빨리 심사하지 않느냐며 보건당국과 의회에 청원을 넣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한 차례 퇴짜를 맞은 끝에 두 번째 도전에 성공해 승인을 얻었다.
미국에서 승인받은 루게릭병 치료제는 단 두 개뿐이다. 1995년 첫 승인된 사노피 젠자임의 ‘리루텍정’(Rilutek 성분명 릴루졸 Riluzole)과 2017년에 허가받은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의 ‘라디컷주’(Radicut 성분명 에다라본 Edaravone, 미국 브랜드명은 라디카바 Radicava, 코드명 MCI-186)다.
리루텍은 글루타메이트의 방출을 차단함으로써 작용하며 너무 많은 양의 글루타메이트가 운동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것을 방어한다. 환영할 만한 발전이었지만 생존기간을 2~3개월 연장하는 이점을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에다라본은 하루 한 번 주사로 루게릭병의 발병 원인 중 하나인 자유라디칼(유해활성산소 등)을 제거한다. 자유라디칼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 손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라디컷은 리루졸의 협소한 용도를 넓혀줄 새로운 치료 옵션이지만 약값도 비싸고 정맥주사로 한달(4주) 중 2주 간 매일 1시간씩 투여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두 약은 ALS를 멈추거나 치료하지는 못하며 초기 ALS 환자에서 진행을 완만하게 늦추는 데 그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렐리브리오는 라디컷주 이후 5년 만에 승인을 얻었다. 대다수 루게릭병 환자들은 이 약 또한 획기적으로 수명을 연장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약물 선택의 폭이 협소한 까닭에 이번 승인을 대거 환영하고 있다. 그나마 3개월 이상 수명을 연장한 것도 렐리브리오에 불과하다. 아울러 일상기능 감퇴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는 렐리브리오의 역할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아미릭스는 6주 이내에 렐리브리오를 출시할 예정이며 약가를 연간 18만달러 이상이 드는 ‘라디카바’보다 낮게 책정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에서는 지난 6월 ‘알브리오자’(Albrioza)라는 제품명으로 허가됐다. 이에 일부 미국 환자는 캐나다로 원장 가 처방을 받기도 하고, 페닐부티르산나트륨과 타우르소디올을 따로 구입해 함께 복용하기도 한다. 두 가지 세부 성분은 합성하기 어렵거나 구하기 어려운 물질은 아니다. 다만 의약품이란 명목으로 합법적으로 구하는 게 힘들 뿐이다. 페닐부티르산나트륨의 경우 미국 민간보험사들이 급여를 거부하고 있다. 전문약국에서 자가 지불로 구입하면 월 8400달러가 소요되지만 저렴한 조제전문약국을 수소문하며 1050달러로 낮출 수 있다. 타우르소디올은 저렴한 식이보충제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인간의 목숨을 구한다는 게 제약사의 사명이지만 실제는 생명을 대가로 돈 장사를 하는 씁쓸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