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산하 항암제자문위원회(ODAC)가 미국에서 가속승인을 받은 적이 있고, 유럽에서도 지난 8월 시판허가를 얻은 스웨덴 생명공학기업 온코펩타이즈(Oncopeptides)의 ‘페팩스토’(Pepaxto, 성분명 멜팔란 플루페나마이드 또는 멜플루펜, melphalan flufenamide or melflufen)의 재발매를 권고하지 않기로 했다.
온코펩타이즈는 23일(현지시각) ODAC이 페팩스토의 유익성-위해성 프로파일에 대한 논의한 결과 당초 허가된 재발성 또는 불응성 다발성골수종(RRMM) 적응증 관련 OCEAN 임상시험 데이터가 위험성 대비 유익성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FDA는 자문위에 잠재적인 전체생존기간(OS)의 유해한 성향(detriment)과 무진행생존기간(PFS) 연장 혜택 입증 실패, 적절한 용량의 부족 등을 고려해 환자군에서 페팩스토의 유익성 위험성 프로파일이 긍정적인지를 물었는데 자문위원회의 표결 결과는 반대 14표와 찬성 2표로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페팩스토는 2021년 2월 26일 미국에서 임상 2상 ‘HORIZON’ 결과를 바탕으로 ‘최소 4가지 이상으로 치료한 경험이 있고,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 면역조절제, 항-CD38 단일클론항체 계열마다 적어도 1가지 이상에 불응성을 보이는 성인 재발성 또는 삼중 불응성 다발성골수종을 치료하기 위해 덱사메타손과 병용하는 약물로 FDA 가속승인을 얻었다.
그러나 가속승인 후 8개월이 지나 3상 OCEAN 확증 임상시험에서 유익성보다 위험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승인을 철회했다. 전체 생존기간 개선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2021년 10월에 자발적으로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러다 온코펩타이즈는 임상 3상 OCEAN 시험과 다른 연구의 전체 생존기간 데이터를 추가로 검토 및 분석했고 일부 하위집단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발견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2022년 1월 시장 철수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지난 8월 18일 ‘페팩스티’(Pepaxti)라는 브랜드로 재발 불응성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온코펩타이즈는 올해 4분기에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발매에 들어갈 계획이다.
온코펩타이즈의 야콥 린드베리(Jakob Lindberg) CEO는 “여전히 우리의 과학과 데이터에 확신을 갖고 있다. ODAC 논의의 핵심은 OCEAN에서 전체 환자군에서 나타난 이질적인 생존 결과와 치료의향(ITT)이 있는 환자군의 하위군의 OS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OCEAN 임상시험이 OS의 이질성과 PFS와 OS 간 불협화음 (dissociation)의 주요 원인이 면역조절제(페팩스토)이고 고령의 RRMM 환자에게 페팩스토가 의미 있는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는 ‘탄광의 카나리아’(canary in the coal mine)로 인식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카나리아는 유독한 갱내 일산화탄소에 민감해 위험성을 미리 감지, 광부에게 조기에 알려주는 새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ODAC의 전임 위원장(현재는 평위원)이자 마이애미대 의대 교수인 미카엘 세이커스(Mikkael Sakeres) 교수는 “어떻게 내가 이 약을 받으려는(치료의향) 환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느냐”며 자문위 회의 도중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FDA 항암제 담당 국장인 리처드 파즈더(Richard Pazdur) 박사도 온코펩타이즈의 사후분석(post hoc)에 대해 비난했다. 그는 “데이터를 다시 제출하고 분석 방식을 변경하면 연구 수행 및 연구 무결성에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며 “온코펩타이즈는 실질적인 증거와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무언가를 반증(아니라고 입증)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온코펩타이즈의 린드버그 CEO는 자문위 결과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규제 환경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과학은 과학이다. 중력은 연못(대서양)의 양측면(유럽과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온코펩타이즈에 따르면 Ocean-3 시험에서 패팩스토의 사망률은 47.6%였고, 대조군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포말리스트’(Pomalyst 성분명 포말리도마이드 pomalidomide)는 43.4%였다. 생존기간 중앙값은 각각 19.7개월, 25개월이었다.
그러나 지난 3년 이내에 조혈모세포 줄기세포이식을 받은 주요 환자군을 배제하고 하위 분석을 한 결과 페팩스토는 가치가 있는 것을 보여줬다. 즉 포말리스트는 줄기세포이식이 필요한 젊은 환자에게 더 잘 듣는 반면 페팩스토는 노인에게 더 나온 치료옵션이라는 주장이다.
린드버그는 “놀랍도록 이질적인 생존 결과가 나왔다”며 “노인에서 멜플루펜의 생존율이 포말리도마이드와 비교해 거의 2배인 반면 젊은이에선 포말리도마이의 생존율의 멜플루펜의 거의 2배”라고 말했다.
그러나 FDA 심사국의 지적에 따라 자문위는 14대 2로 이같은 하위군 분석 결과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린드버그는 “온코펩타이즈와 FDA가 협력하고 좋은 과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DA 자문위에는 거의 나쁜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이번 사례는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애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 aducanumab)이 FDA의 잘못된 승인에 이어 가속승인에 대한 혹독한 조사가 이뤄진 것과 비슷하다. 애듀헬름은 당초 승인 거절된 임상 데이터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2021년 6월 7일 가까스로 가속승인을 얻었으나 그 데이터의 무용성 논란에 빠져 의회와 시민단체로부터 비난받고 미국 보건복지부 감사 등을 거쳤다. 아직 승인이 살아 있지만 지난해 처방 성적은 300만달러로 저조했다. 올해는 9억달러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속승인은 유망한 약물을 시장에 빠르게 출시하고, 위급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페팩스토는 알려진 것보다 저조한 유효성을 보인다는 게 FDA 실무자의 견해다. FDA 임상시험 검토자인 알렉산드리아 슈워신(Alexandria Schwarsin) 박사는 “현재 알려진 바를 감안할 때 멜플루펜이 기존 치료법에 비해 의미 있는 이점을 제공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가속승인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FDA는 자문의 이견을 검토한 이후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FDA가 페팩스토의 승인을 거절할 경우 새로운 임상시험 데이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페팩스토의 유럽 승인으로 잿더미에서 기사회생한 온코펩타이즈는 다시 미국에서 늪에 빠질 수 있다.
린드버그는 또 다른 임상을 수행하려면 3~4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페팩스토의 인허가 이력을 쓴다면 흥미로울 것”이라며 “동일한 임상시험 데이터가 유럽에서는 완전 승인으로 이어진 반면 미국에서는 안전성 문제로 가속승인마저 철회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불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