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는 1980년 명주군의 묵호읍과 삼척군의 북평읍이 합쳐진 강원도 4번째 도시다. 춘천,원주, 강릉에 이어 인구가 네 번째로 많다. 그 다음 강원도 도시들이 속초, 삼척, 태백 등이다. 영동에서는 강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이름은 바로 접한 동해바다에서 따왔다.
묵호읍을 동해시에 뺏긴 명주군은 군세가 급격이 약화돼 1995년 지방자치제 본격화에 따라 강릉시에 통합돼 소멸됐다.
동해시는 동으로는 푸른 바다와 접하고 서쪽은 태백산맥에 기대고 있다. 바다와 산, 계곡, 천연동굴 등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1936년부터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묵호항은 1941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석탄 하역시설과 부두, 방파제 등이 보강됐고 쉼 없이 석탄과 무연탄, 수산물 등을 실어 날랐다. 석탄이 주요한 땔감이었던 시절, 묵호항은 석탄을 실어 나르는 배들과 선원들로 항상 붐비고 활기찼다. 그러나 석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묵호항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항만 기능은 노후화되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묵호 출신의 작가 심상대는 ‘묵호를 아는가’에서 묵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예전의 목호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판잣집이 이어졌고, 아랫도리를 드러낸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물고 뛰어다녔다. 그리고 붉은 언덕은 오징어 손수레가 흘린 바닷물로 언제나 질퍽하였다. 그때가 참다운 묵호였다.
가까운 바다에서도 풍성한 어획고를 올렸고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였다. 아낙네들은 오만 가지 사투리로 욕설을 해대며 오징어 가랑이에 겨릅대를 끼웠고 아이들은 수없이 끊어지는 백열전구를 사러 산등성이를 오르내렸다.
묵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한 오징어와 조미공장에서 흘러나온 오징어 다리를 빨아야 하였다. 지독하게도 물고기를 먹어대던 시절이었다. 어느 집 빨랫줄에나 한 축이 넘거나 두 축에서 조금 빠지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널려 있었고, 집집에서 피워 올린 꽁치 비늘 타는 냄새가 묵호의 하늘을 뒤덮었다. 후미진 구석마다 쌓여 있던 생선 내장의 악취, 비 온 다음 날 시뻘겋게 상한 오징어, 건조한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 수도의 아낙네들, 욕설과 부패,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묵호항 뒤편으로 산등성이를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오르면 작가가 묘사했던 묵호를 만날 수 있다.
비린내와 고단함 묻어나던 논골담길 … 이젠 벽화로 새 단장
2014년 겨울 처음 묵호를 찾았던 때 묵호에서는 소설 속 풍경처럼 비린내가 났다. 어쩌면 진짜 비린내가 아닌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비린내였을지도 모르겠다.
묵호(墨湖)의 바다는 심상대의 말처럼 소주처럼 투명한데 해저의 검은 바위가 다 드러나보이고 검은 물새떼들이 모여들어 묵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검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논골마을의 비좁은 골목들은 막다른 골목인 듯싶다가도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졌다. 골목 끝에는 어김없이 꽁꽁 닫힌 대문이 있다. 절대로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은 대문이지만 놀랍게도 그 문에서 사람이 나왔다.
묵호의 논골담길은 묵호항과 묵호등대를 연결하는 비좁은 골목길이다. 계단마다 절망과 퇴락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빈곤과 고단함과 비린내가 뒤섞인 삶의 우울한 풍경이었다. 피난민들과 전국에서 몰려온 가난한 사람들이 언덕배기에 하나둘씩 다닥다닥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만들어진 풍경이었다.
2018년 두 번째 찾은 묵호는 첫 방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여전히 논골담길을 구경삼아 어슬렁거리는 일은 불편했다. 비린내 진동하는 짐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 옆을 카메라를 들고 벽화가 그려진 가난한 집들을 기웃거리며 지나거나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은 생각보다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가끔 묵호가 궁금하고 찾아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2월의 꽃샘바람이 부는 날, 삶이 뒤엉켜 심하게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 그런 날들에는 오징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는 묵호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산등성이 논골담길 골목마다 푸근한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막걸리 한 잔에 녹여내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함과 바다에 나간 아버지와 자식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과 내 처지와 너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걱정해 주는 공동체의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2년 다시 찾은 묵호에서는 삶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과거의 묵호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논골담길의 벽화 속에서 과거의 묵호를 어렴풋이 만나볼 수 있을 뿐이다.
2010년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어르신생활문화전승사업’의 일환인 ‘논골담길’ 프로젝트의 결과, 지역주민들과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친 논골마을의 골목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2011년 하반기에는 묵호의 전성기를 표현한 벽화가 논골담길 마을에 그려졌다. 논골 1길에는 묵호를 밝혔던 일하는 사람들과 생업과 관련된 이미지가 풍부하며 논골 3길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화를 표현한 이미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논골마을 탐방은 한편으로는 골목마다 진솔하고 푸근한 삶의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는 최고의 감성여행이 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의 발전 과정을 만나볼 수 있는 역사탐방이 될 것이다.
묵호 등대공원 … 푸른 바다와 늦여름 오징어잡이배 불빛
묵호동 산 중턱에 위치한 논골담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길은 묵호등대로 향하게 된다. 묵호 등대에 서면 저 멀리 푸르디푸른 동해 바다와 묵호항 일대와 묵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절경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끈다.
등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등대공원’에는 등대의 역할과 역사를 알 수 있는 ‘등대 홍보관’과 휴게시설이 연중 개방돼 관광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묵호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상설 사진전과 전국의 아름다운 ‘등대 사진전’이 열리기도 한다.
바다가 어스름에 잠기는 여름날 저녁 묵호 등대에 올라 눈을 감고 앉아 있노라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또 저 멀리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불빛들 속에서 옛 묵호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논골마을 아래쪽 해안가에는 루프탑을 갖춘 세련된 카페들과 묵호의 명물 ‘도깨비빵’을 판매하는 소형 빵집, 온갖 도자기 공예품을 갖춘 개성 넘치는 카페 등이 늘어서 있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느긋하게 걸어볼 만하다.
동해 익스트림 1번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
최근 동해 관광에서 가장 핫한 곳은 단연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라고 할 수 있다(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 2021년 6월에 묵호등대와 월소택지(--宅地, 묵호동의 일부, 해발 50m의 구릉지) 사이 도째비골에 설치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전망 시설인 ‘하늘산책로’와 스카이 사이클(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자전거), 대형 미끄럼틀(자이언트 슬라이드) 등 각종 익스트림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다를 향해 난 ‘하늘산책로’는 주요 지점이 메쉬망과 투명 유리로 돼 있어 마치 바다를 향해 허공을 걷는 듯한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다.
‘해랑전망대’는 묵호 앞바다에 설치한 해상 교량 전망대로 동해 바다 위 파도 너울을 발아래서 느껴볼 수 있다.
묵호항의 역사와 묵호 마을의 정취를 가득 느끼고 싶다면 묵호 마을에서 하룻밤 숙박을 권한다. 민박집으로 개조한 묵호 마을 숙소들은 전망 하나만은 최고급 호텔 부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