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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태백 민초들의 삶 … 황지자유시장, 철암탄광역사촌, 상장동 벽화마을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08-22 08:43:54
  • 수정 2022-08-30 19: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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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춘섭집앞’ 정류장이 주는 훈훈하고도 쓸쓸한 정감

태백에는 권춘섭짚압이라는 버스정류장 이름이 있다.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상사미마을의 버스정류장을 말한다. 

 

버스승강장 인근에는 권상철씨가 사는 집밖에 없어서 과거에는 권상철집앞버스승강장이라고 불렀다. 정류장 인근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은 권상철 밖에 없었다.

 

처음 권상철집앞 승강장이 만들어진 것은 1999년이었다.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아내가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버스승강장이 멀어 걸어다녀야 하는 상황이어서 권상철씨가 당국에 지속적인 요청을 한 것.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권상철씨의 이름을 따서 권상철집앞이라는 버스승강장이 세워졌다.

 

권상철 옹이 2010년에 사망하자 지금은 집을 물려받은 장남 권춘섭 씨의 이름을 따 권춘섭집앞이라는 버스승강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곳에서 태백 시내로 가다보면 오른편 산길 끝에 나오는 샘물이 바로 한강의 시원이라는 검룡소.

 

개인의 이름을 따 명명한 정류소 이름은 왠지 훈훈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감자바우의 순박함이 느껴지는 황지자유시장 8월엔 감자·옥수수 지천

 

낙동강의 시원이라는 황지연못에서 100m 거리에는 태백 전통시장인 황지자유시장이 있다. 19704월에 개장한 이 시장은 해발 902m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시장이다.

 

태백시 황지자유시장 풍경/ 변영숙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느긋하게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자. ‘감자바우들의 순박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8월엔 갓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가 지천이다. 할머니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빚어 쪄낸 감자떡과 인절미도 맛볼 수 있다.

 

시장 안에는 각종 생활용품과 과일, 나물 등을 판매하며 태백 한우를 밤새 우려낸 소머리국밥 등 푸짐한 먹거리 상가가 있다.

 

고단한 시대의 잿빛 감성’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삼척이나 경상도 북쪽 사람들은 구문소 너머에 이상향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게 지금의 태백이고 1960년대 이후 20여년간 탄광촌으로 부와 사람이 몰린 역사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문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간이 멈추어 버린 철암역과 철암탄광역사촌이 있다. 옛 광부들의 생활 터전으로 그들의 고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태백시가 본격적인 탄광 사회가 된 것은 1936년 단일 탄광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장성 탄전의 석탄이 그 동쪽인 철암리’(현 철암동)로 운반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철암이란 지명은 마을 북쪽의 백산과 경계 부근의 철도변에 높이 20m, 너비 30m의 큰 바위가 쇠 성분을 많이 함유해 쇠바위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옛 마을 이름도 쇠바위마을이었다.

 

1940년 새뜨리(새터) 부근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본래 쇠바위마을을 웃철암(상철암)으로 부르고, 기차역과 그 부근을 철암, 철암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철암역은 석탄산업과 맥을 같이 한다. 장성에서 생산된 석탄은 철암역을 통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광부의 꿈을 안고 전국에서 몰려들던 사람도 철암역을 거쳤다. 강릉역 역무원이 28명이던 시절 철암역 역무원은 3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금은 아주 드물게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오갈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철암역은 한 시간이 지나도 이용객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한산하다. 매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매점 주인은 손님 응대보다는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삶느라 더 분주했다. 2013년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철암역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태백시 철암탄광역사촌 거리 모습/ 변영숙

철암역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철암탄광역사촌이 있다. 건너편 철암천변에는 낡은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당장 내일 허물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건물들에는 단란주점, 대성사, 현덕건설, 진주성, 대성식당, 제일당, 호남슈퍼 같은 온갖 간판들이 생기를 잃은 채 걸려 있다.

 

한때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상가에는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이방인들이 두리번거리며 분주하게 건물들 사이를 들락날락 할 뿐이다.

 

이곳은 과거 탄광촌이었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빈 건물만 남았다. 빈 건물을 두고 철거와 보존을 두고 의견들이 엇갈렸지만 결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 두기로 했다. 탄광촌이 역사촌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순대국밥과 소고기국밥을 팔던 경북식당 입구 벤치에는 광부가 혼자 앉아 있다. 갤러리가 된 호남슈퍼에서는 지역 화가의 전시회가 열린다. 자료와 전시품을 통해 애잔한 파독 광부들의 삶도 접할 수 있다.

 

채굴 작업을 마친 광부들은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와 술로 작업 중 들이 마신 탄가루를 씻어내고 다음날 또다시 수백m 땅속으로 들어가는 고단한 생활을 연속했다. 그 고달픔이 그림과 전시물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태백시 철암탄광역사촌 박물관/ 변영숙

당시 종교계에서는 탄광촌을 대낮부터 취한 주정뱅이 도시라고 꾸짖고 계몽하려 했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의 뭣 모르는 시선일 뿐이다. 오늘날 저질과 타락의 끝을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라고 하는데 막장의 어원이 탄광 갱도의 막다른 끝이라는 설이 유력하니 광산촌 민초의 실상을 폄훼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건물 뒤편 철암천변으로 가면 까치발건물을 볼 수 있다. 까치발건물은 천변 위에 바닥에 목재나 철재 지지대를 덧붙여 주거 공간을 넓힌 주거 형태를 말하는데 지지대 모양이 까치발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암 탄광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물 구조이다.

 

철암천 건너편 산등성이에도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폐광촌 허름한 집들에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탄광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다 아흔 살이 넘었다는 할머니를 만났다. 30대에 광부 남편을 만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고 있단다. 남편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등졌다. 왜 혼자 이곳에 남아 있냐는 필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떠나고 싶어도 어디로 가냐?’며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이곳은 60년 동안 뿌리를 내린 삶의 터전이다. 평생 애증이 얽힌 곳이다. 떠나려도 떠날 수 없는.

 

철암역두 선탄시설/ 출처 태백시청

전망대에 오르니 국가등록문화재 21호인 장성광업소의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太白鐵岩驛頭 選炭施設)이 훤히 보인다. 선탄시설은 탄광에서 채굴한 원탄을 1, 2, 3차로 선탄하고 이물질을 분리하고 가공 처리한다. 1935년에 철근 콘크리트와 강재를 이용해 만든 근대적 공법의 구조물이다. 지금도 가동 중이다. 시티투어를 신청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2024년 가동 중단이 예고돼 있다. 장성광업소가 멈추면 태백시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이다.

 

철암천과 맞은편 검은색 선탄시설에 노란색 햇살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근래에 만난 도시 중 가장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잿빛 탄광에 대비되는 총천연색 상장동 벽화마을

 

‘만원권 지폐를 문 탄광촌 강아지’가 그려진 상장동의 벽화/ 출처 한국관광공사

상장동 벽화마을은 15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광부 출신인 태백선 문곡역 뒤쪽의 마을이다. 상장동은 함태광업소 사택촌이었다. 2011년 잿빛 탄광촌에 하나 둘씩 벽화가 그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험난했던 기억을 지워버리느니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태백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 주민들이 벽화를 남기게 했다. 고단했으나 행복한 시절 일상이 그림에 담겨 있다. 채탄 작업을 하는 광부, 골목 모퉁이에서 광부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진폐증을 앓다 하늘로 간 할아버지(고 김병태) 무르팍에 앉은 손자, 광부 청년과 처녀의 사랑, 만원짜리를 입에 문 강아지, 고참 광부들에 골탕을 먹는 신입 광부(일명 햇돼지) 등이 그림에 살아 있다. 죄다 가슴먹먹한 이미지들이다.

 

똑같은 탄광촌이어도 철암동에는 잿빛의 침울함이 남아 있다면 상장동은 어두운 커튼을 걷도 빛을 맞아들이는 분위기다. 외지인에게는 동일 시간대에 상이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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