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 갈천동 삼척해변
맹방해변은 삼척 시청에서 남쪽으로 약 12㎞ 떨어져 있다. 하맹방해변, 상맹방해변, 한재밑해변을 통칭하며 백사장의 길이가 4㎞에 달해 삼척 해변 중 가장 길다. 맹방해변 남쪽 끝 초당동굴에서 담수가 흘러나와 소한천에서 바닷물과 만난다. 담수목욕과 해수목욕을 동시에 즐길 만한 곳이다.
장호항과 용호 탑승장을 오가는 삼척해상케이블 카
삼척 장호항 해변 놀이터
용호탑승장 갈매기공원
초곡용굴 촛대바위길
장호항에서 울진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이 있다. 구렁이가 승천한 장소라는 전설을 가진 초곡 용굴 일대에는 촛대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 등 신기한 형상의 바위들이 즐비해 탄성을 자아낸다.
일찍이 해금강으로 불렸던 곳으로 과거에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으나 2019년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이 개장됨에 따라 걸어서도 신비로운 동해 바다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잔뜩 기대를 안고 갔건만 2022년 7월 안전성 검사에서 탈락해 올 말까지 통행이 금지된 상태라 초입에서 발걸음을 돌려야만했다. 그럼에도 동해 절벽길을 걸으며 동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휴가철 북적대는 해수욕장을 피해 한적한 초곡항 산책도 나쁘지 않다.
환선굴
덕항산 자락의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幻仙屈)은 장님굴새우 등 희귀동식물이 자라고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석이 있다. 오래 전 수도승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도 남아 있다.
굴피집, 너와집
신기면 대이리에는 굴피집과 너와집이 있다. 굴피집은 굴참나무껍질로, 너와집은 얇은 소나무 판으로 지붕을 올린 집이다. 굴피집(중요민속자료 223호)는 300년 전에 지어졌다. 너와 채취에 어려움을 겪자 1930년대 이후 굴피집이 주류를 이뤘다. 대이리 너와집(중요민속자료 221호)는 350년 전에 지어졌다.
척주동해비( 陟州東海碑)와 평수토찬비(平水土贊碑)
죽서루에서 정라진(汀羅津) 사이의 정상동에는 두 비석이 있다. 육향산이라는 작은 동산에 우암 송시열과 예송논쟁을 벌인 미수 허목이 쓴 글을 새긴 비석이다.
1661년(현종 2년) 삼척부사로 재직하던 당시 태풍과 해일이 잦자 동해를 예찬하는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만리도 바닷가에 세우니 풍랑이 진정됐다고 한다. 그래서 퇴조비(퇴조비)라고도 한다. 신라시대의 피리 ‘만파식적’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홍양호(洪良浩)는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큰 바다와 같고, 그 소리가 노도와 같아 만약 바다에 신령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질 것이니,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라고 감탄했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같은 내력을 지닌 비석으로 규모·양식은 같다. 허목이 중국 우제(禹帝)의 전자비(篆字碑)에서 48자의 글씨를 모아 거친 파도가 삼척부내에 미치지 말라는 내용을 담아 새겼다.
허목은 남인의 리더로 가장 과격하게 서인과 맞섰다. 젊어서 벌을 받아 과거를 치르지 못했으나 그러고도 정승 반열에 오른 신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선 수령을 맡아서는 백성과 함께 실질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부터 실학이 태동했다는 시각도 있다.
허목은 당시에 가장 전서(篆書)를 잘 쓴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의 글씨에는 신비주의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현 비석은 1710년(숙종 36년)에 삼척부사 박내정(朴來貞)이 유실된 비석의 탁본을 떠 옛 비석과 같은 비석으로 지금의 자리에 다시 만든 것이기에 진짜 허목의 글씨와는 차이가 있다. 풍랑에 의해 또는 정적에 의해 원래 비석이 훼손됐다는 설이 전한다.
삼척 공양왕릉
삼척 공양왕릉 전경, 자료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