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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숲멍 때리기’ 좋은 곡성 태안사 … 암반 위 우아한 ‘능파각’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12-17 10:08:51
  • 수정 2021-12-17 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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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머리 초입 비포장 등산로서 가을의 정취 … 고려초엔 송광사, 화엄사보다 번성

곡성의 침실습지와 퐁퐁다리가 물을 바라보며 멍때리기에 좋은 ‘물멍’ 명소라면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桐裏山) 자락의 태안사(泰安寺)로 향하는 약 2km의 킬로미터의 들머리 길은 ‘숲멍’하기에 좋은 명품 숲길이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단연코 차를 버리고 약 30분 걸려 두 다리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요즘 절집마다 탄탄한 시멘트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태안사 들머리 길은 울툴불퉁 자갈투성이 흙길이다. 차의 덜컹거림이 너무 심해 운전대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태안사 숲은 초록이 무성한 여름날도 좋지만 낙엽이 떨어져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 늦가을 정취도 그만이다.


태안사로 가는 길목에는 경찰충혼탑이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 당시 약 300명에 달하는 곡성 경찰들은 이곳 태안사에 작전지휘본부를 설치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1950년 8월 6일 이곳에서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곡성 경찰 48명이 사망했다. 이때 전사한 경찰들을 위한 위령시설로 1985년 세워졌다.”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질곡의 현대사 흔적이 우리 땅 곳곳에 새겨져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런 안내판을 만나면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역사는 시간이 지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반드시 어딘가에 흔적을 남겨두어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후세에 그 사실을 명징하게 각인시킨다. 역사가 준엄한 이유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남 곡성군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다 순직한 경찰 48명을 기리는 경찰충혼탑(뒤)과 충의문. 변영숙 제공

충의문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계곡에 하늘로 날아갈 듯한 날렵한 누각을 만나게 된다. 깊은 계곡 속 자연암반 위에 지은 태안사 능파각(凌波閣)은 절의  금강문이자 교량 역할을 겸한다. 능파각은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한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24년)에 무명의 세 신승(神僧)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문성왕 9년(847년) 혜철국사가 개산조로서 태안사에 선문구산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열었다. 경문왕 4년(864년)에 태어나 고려 혜종 2년(945년)에 입적한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는 8세에 출가해 이 곳에서 수도했고, 그 뒤 가야갑사(迦耶岬寺)에서 계(戒)를 받고 다시 돌아와 132간의 당우를 지어 대사찰을 이룩했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사세가 컸으나 고려 중기에 순천 송광사가 수선(修禪)의 본사로 독립됨에 따라 위축됐다. 조선시대에 배불정책으로 쇠퇴했고, 한국전쟁 당시 대웅전 등 15채의 전각이 불탔다.


한국전쟁 때 전소된 것을 1969년에 복원한 태안사 대웅전. 변영숙 제공

태안사 능파각. 곡성군청 제공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약사전·만세루(萬歲樓)·해회당(海會堂)·선원(禪院)·능파각(凌波閣)·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해회당은 네모꼴로 이어진 큰 건물이고, 선원 역시 전국 굴지의 규모이며, 대웅전은 6·25전쟁 때 불탄 것을 곡성군의 보조로 1969년에 재건했다. 능파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일주문은 제83호로 지정돼 있다.


태안사에는 혜철국사의 부도인 보물 제273호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을 비롯해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 275호), 동종(보물 1349호) 등 다수의 보물이 존재한다. 태안사 초입에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도 있다.


태안사는 찾을 때마다 매번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동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절 마당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태안사의 적막감을 새삼 일깨운다.


“수많은 봉우리, 맑은 물줄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들이 오는 경우가 드물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하다.”라고 적인선사의 부도비에 적혀 있다. 태안사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아득했는지를 새삼 되새긴다. 동리산에 포근하게 안긴 듯한 태안사는 애써 찾아간 수고를 보상받고도 남게 해주는 절이다. 


넓은 계곡과 반석이 아름다운 도림사 


“날카롭지 않은 산,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 시골마을이 그대로 곡성의 모습”이라는 곡성 군수의 말대로 곡성의 산세는 부드럽다. 태안사를 둘러싸고 있던 동리산도 그러하고, 도림사가 안겨 있는 동악산의 산봉우리도 그러하다.


도림사 여름 계곡 풍경. 변영숙 제공

동악산(動樂山) 줄기인 성출봉 중턱에 자리 잡은 곡성읍 도림사(道林寺)는 신라 무열왕 7년(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도림사는 사찰보다 계곡이 더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계곡이 멋진 곳이다. 노송에 둘러싸인 너른 계곡과 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너른 반석들이 가히 무릉계곡을 연상케 한다.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도림사 계곡을 놓칠 리 없다. 반석마다 이름난 묵객들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여름철 오토캠핑장 캠핑족들과 물놀이 인파로 북적거렸던 계곡은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한적해진다. 계곡이 끝날 즈음 도림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지만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전소됐고 전각들은 모두 현대에 와서 새로 지어졌다. 보광전, 약사전, 응진당, 명부전 등이 있고 일주문에 걸린 ‘도림사’ 현판은 허백련 화백이 썼다. 보물 제1341호로 지정된 괘불이 소장돼 있다. 


섬진강변의 수려한 풍광 ‘함허정’ 


곡성군 섬진강변의 제월섬이 바라다 보이는 함허정. 곡성군청 제공

입면 제월리의 함허정(涵虛亭)도 지나치면 아쉬운 곳이다. 조선 중종 38년(1543년) 심광형이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로 조선 시대 땐 호남 4대 정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건축미가 뛰어나다. 남동쪽의 천마봉, 한강의 여의도 같은 제월섬, 정자 밑의 섬진강과 강변의 구릉, 서편의 평야 등 주변 풍광도 수려하다. 


함허정에 서면 가까이 제월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한때 방치돼 ‘똥섬’이라 불리기도 했다던 제월섬은 숲 놀이터로 변신했다. 평일에 찾는다면 메타세쿼이아 군락지 등 섬 전체를 전세 낸 듯 ‘황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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