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칼럼
생리 전 감정변화 … 딸꾹질이라 생각하라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21-11-05 15:57:38
  • 수정 2021-12-19 23:13:00
기사수정
  • 생리전 증후군은 호르몬 문제 … 내 자신의 탓이 아니다

최근 진료실에 20대 여성이 찾아왔다. 사연인즉 매달 13∼20일이면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데 그 때가 생리 전 주라고 했다. 신기한 게 그 때만 되면 백화점이 날 위해 세일하는 것 같고 디자이너들이 자신을 위해 신상’(신상품)을 내놓는 것 같아 ‘뭐라도 사야겠다’라는 강박증까지 생긴다고 했다. 엄마한테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화장해서 백화점 정문에 뿌려라. 그래야 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지 않겠니?”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했다. 


그러나 막상 생리가 시작되면 식탐이나 쇼핑욕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모든 여자들이 생리 전이라고 해서 자신처럼 사고를 치는 건 아닌 것 같고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지 궁금하다며 어떻게 하면 사고를 덜 칠 수 있겠냐는 하소연을 했다.


생리 전 감정 변화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가임 인구의 3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호르몬에 민감한 감성시스템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의 성호르몬은 사춘기 때 증가해 성인기에 일정 레벨을 유지하다 나이가 들면 떨어지는 간단한 변화를 보인다. 반면 여성의 성호르몬은 생리를 시작하면 매달 출렁거리고 출산 전후에 크게 흔들리고 폐경기에 또 큰 변화를 맞는다. 여성의 뇌, 특히 감성시스템은 남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호른몬의 진폭에 일생 동안 영향을 받는다.


성호르몬은 생물학적 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인군자 수준의 여성 철학자도 호르몬의 난폭한 자극에는 깡패처럼 반응 할 수 있다.


얼마 전 4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푸근하고 사람 좋게 생긴 인상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사회봉사를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경스러운 여성이었다. 한데 이 여성을 괴롭히는 증상이 있었으니 생리 시작 일주일 전쯤에 자기도 모르게 황당하게도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이 나오고 칼 같은 흉기를 보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었다. 수녀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니 당황스러움과 죄책감, 두려움에 클리닉을 찾아온 것이었다.


필자는 이 여성에게 “이것은 인격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물학적 뇌의 감성시스템이 예민해져서 과민하게 반응하면 이처럼 원초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위험 시그널이 발생할 수 있다. 감성 뇌의 경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반응한 탓이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본인을 탓하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이 여성은 큰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감성시스템의 과민성을 낮춰주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은 점차 줄어들었고 몇 개월 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여성은 이를 계기로 상담심리에 관심이 많아져 2년 정도 그룹 정신치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더욱 성숙해졌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상담을 통해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상담심리학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이 여성이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시죠?” 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당황스럽고 자괴감에 빠진 얼굴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혹시 약을 안 드셨나요?” 물으니 한 달 전에 끊어봤다고 했다. “이 정도 노력했으니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자괴감에 빠진 이 여성에게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 과도한 반응회로가 이미 생물학적으로 뇌에 만들어진터라 평생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 자극이 오면 그 회로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거다. 이건 인격과 상관없는 일로 딸꾹질 잘하는 사람이 때만 되면 고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원초적 용어가 나오는 경고 시스템이 활성화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평생 약을 복용해라. 그럼 편하지 않느냐”고 말해줬다. 이후 환자는 약을 다시 복용해 증상이 사라졌고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나가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밤에 했던 행동을 아침에 일어나 왜 그랬는지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에는 이성 시스템이 피로해지고 약화되는데다 밤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이성 시스템이 가동되면 밤에 한 행동이 후회스럽다. 


생리전증후군은 생물학적인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이를 심리적인 방법으로 누르고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이다. 생리전증후군 말고도 산후우울증, 폐경기증후군 등이 여성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 호르몬은 심리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 친구와 잘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여서 타인과 갈등을 빚을 때 먼저 남에게 문제가 있다는 논리적 추론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상대방에게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편하고 자기애적 상처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성숙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한다. 이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성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다. 우리의 감성시스템은 생각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훨씬 영향을 많이 받는 탓이다.


생리전증후군은 사실 쑥쓰러울 게 없다. 딸꾹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 전이면 쇼핑백을 10개 정도 들고 다녀야 하는 폭풍쇼핑병도 성호르몬에 의한 것이다. 딸꾹질이라 생각하고 빨리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부광약품
동화약품
존슨앤드존슨
탁센
동아ST
한국다케다제약
사노피
동국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차병원
신풍제약주식회사
정관장몰
한국화이자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휴온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