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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여행의 중심, 중공군 3만명이 수장된 ‘파로호’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10-13 23:21:01
  • 수정 2021-10-13 23: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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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엔 물놀이·자전거 여행, 겨울엔 산천어 축제 … 붕어섬, 꺼먹다리, 사랑나무 등 강변따라 도열

경기도 가평을 지나면서 산세는 현저하게 달라진다. 산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높고 서로 겹쳐진 듯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산이 높아 계곡도 깊고 산그늘도 깊다. 남쪽의 산들이 방실방실 웃으며 여행객을 반기는 듯한 반면 강원도 화천 지역의 산들은 철갑을 두르고 방문객에게 길을 내주지 않으려는 듯 삼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강원도 서북부에 위치한 화천은 대부분 지역이 산이다. 북한 금강산 비로봉에서 발원한 물은 금강산댐을 지나 28선을 넘고 화천 파로호를 거쳐 춘천호, 의암호에 이르며 북녘의 다른 줄기에서 출발하는 인북천의 물줄기를 이어받은 소양강과 합류한다. 서울에서 132 km, 휴전선에서 22km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경기도 포천군, 가평군, 강원도 철원군과 맞붙어 있고 동쪽으로는 양구군, 남쪽으로는 춘천시와 옆 동네처럼 가깝다.


화천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통한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산의 나무를 베어 화전을 일구고, 땔감을 팔아 먹고 살았고, 산속의 약초나 나물 등을 깨서 연명했다. 6.25전쟁 때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채 여기저기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떠나와서도 안쓰러움이 오래도록 남는 곳이다.


파로호 100리 산소길과 낭만적인 수변데크 ‘숲으로 다리’


화천군의 최대 명소인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인공 호수로 주변의 높은 산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광복 이후 북한 지역에 속했다가 6.25전쟁 이후 수복지구가 되었다.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유엔군과 중공군 간의 전투에서 중공군 3만여 명이 전사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남진이 저지됐다. 1955년 11월 이곳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크게 무찔렀다는 의미로 ‘파로호’(破虜湖)’라 이름 붙였다. 파로호로 불리기 전 일제강점기 때에는 ‘대붕호’(大鵬湖)로 불렸고, 북한 영토에 속했을 때는 ‘화천호’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파로호를 자꾸 대붕호로 바꿔 부르라고 우리 정부에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주민이나 민족정기를 중시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굳이 익숙해진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다며 난색을 피하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길로 유명한 파로호 100리 산소길

화천 북한강을 따라 파로호 100리 산소길이 조성되어 있다.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산소길이라 명명했다. 북한강변을 따라 약 42km에 걸쳐 조성된 파로호 산소 100리 길은 최고의 자전거 라이딩길로 꼽힌다. 


붕어섬의 연인 동상

자전거길은 본격적인 북한강이 시작되는 지점인 화천읍 붕어섬에서 시작된다. 붕어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입구에서는 연인들의 동상이 방문객을 반기고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 붕어섬 일대에서 7월 중순에는 붕어섬 일대에서 쪽배 축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산천어 축제가 열린다. 카약 체험장과 대규모 강변 물놀이장 등이 있다. 붕어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면 축구장, 족구장, 테니스장, 수변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레포츠와 자연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겨울 산천어 축제는 세계적으로 이름값을 얻었다. 산천어는 1급수에만 사는 연어과 청정어종이다. 수온이 2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깊은 계곡에 산다. 연어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깊은 산 계곡물에 적응해 변화된 어종이라 한다. 유선형의 잘 빠진 몸매, 등과 옆구리의 점 모양의 파마크(par mark), 회로 먹어도 굽거나 훈제로 먹어도 담백하면서도 흙냄새가 나는 맛 등이 낚시꾼을 당긴다. 


붕어섬에서 동쪽으로 약 6km 떨어진 간동면 구만리에 ‘숲으로 다리’가 있고 그 중간쯤에 대이리 ‘미륵바위’가 있다. 미륵바위 주변에는 식당과 펜션 및 정자 쉼터가 갖춰져 있어 자전거 라이딩을 하거나 차량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갈 만하다. 도로변에 정자와 함께 5개의 화강암으로 된 미륵바위 5개가 나란히 서 있다. 과거에 절이 있었다고만 전할 뿐 미륵바위의 내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대이리 주민들은 미륵바위에 소원을 빌고 매년 9월 9일에 미륵바위에서 정성껏 제를 올린다.


‘숲으로 다리’는 물 위에 설치된 1.2km 수변데크로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이 지어준 이름이다. 수변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전거가 아닌 차량으로 ‘숲으로 다리’를 방문할 때에도 미륵바위 쉼터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 다리는 지난해 8월 700㎜의 폭우가 쏟아지고, 화천댐이 수문 16개를 모두 열면서 유속이 거세져 유실됐는데 오는 11월 다시 개통한다고 한다. 


숲으로 다리 개설에 맞춰 인도교도 개통한다. 이 다리는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 사이 북한강을 가로지른다. 총 길이 290m, 폭 3m로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2018년 설계용역에 착수한 후 교량 디자인과 공법 선정, 각종 인허가 절차를 거쳐 3년 만에 준공하는 것이다.


나무상판에 타르칠을 한 꺼먹다리 … 6.25전쟁 때 서로 차지하려 격전


2009년 개설된 화천 산소길은 북한강을 따라 원시림과 북한강의 물줄기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산소길 구간을 따라 여러 볼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꺼먹다리와 구만교이다.


구만교는 일제강점기에 다리의 기초가 놓이고 소련과 북한이 교각을 놓았다.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6.25전쟁이 터져 다리는 완성되지 못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화천군이 남한 영토로 수복된 이후 화천군이 상판을 올려 완성했다. 민족 분단의 애환이 서린 다리이다.


구만교에서 북한강 상류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인가도 없고 인적도 드문 곳에 상판이 까만다리가 외로이 놓여 있다. 1945년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화천댐을 가동하기 위해 세운 화천읍 대이리의 ‘꺼먹다리’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 철제와 나무 상판을 올려놓은 꺼먹다리는 부식을 막기 위해 검은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라고 부른다.


꺼먹다리는 분단의 상처의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다리다. 6.25전쟁 당시 꺼먹다리 인근은 중동부 전선을 연결하는 꺼먹다리와 화천 수력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교각에는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전우’와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꺼먹다리는 구만교가 놓이면서 1981년 폐쇄된 후 침목이 훼손되는 등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7년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복원됐고 현재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차에서 내려 다리 위로 걸어가 보았다. 꺼먹다리 한가운데 서니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강물이 흐르고 산 밖에 없다. 물새들만 북한강을 온통 독차지하고 유유자적 물놀이하다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시 강 속에 쌓인 모래톱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따금 차량이 지날 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앞뒤로 꽉 막힌 시커먼 산이 답답해서 이내 다리를 건너왔다.


꺼먹다리에는 누가 만든 것인지 이야기 하나가 전한다. 입대를 앞둔 연인이 양 끝에서 걸어와 가운데서 만나면 남자가 군에 있는 동안 여자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는다고 한다.


불쑥 떨어져 여름에는 물놀이 캠핌장이 되는 ‘딴산’ 


여름철 물놀이 시즌에 명소가 되는 딴산유원지

꺼먹다리에서 멀지 않는 곳에 화천의 또 다른 명소인 간동면 구만리에 ‘딴산’이 있다.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딴산이라 불린다. 마치 커다란 산에서 한 귀퉁이가 떨어져 물에 쓸려 내려온 것처럼 물가에 불쑥 솟아 있다. 산 아래로는 작은 하천들이 흐르고 여름에는 물놀이와 오토캠핑장으로 변한다.


화천 거례리 북한강 사랑나무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의 사랑나무와 가을 코스모스

화천군 간동면 및 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 경계에 있는 해발 877.8m의 용화산에서 화천 읍내로 진입하는 초입에는 북한강변에 하남면 거례리가 있다. 거례리는 춘천에서 지방도 407번 도로로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북한강 줄기와 자전거 도로가 연계돼 있다. 


화천군은 거례리 화천강변(동안)에 철마다 꽃밭을 조성해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7~8월에는 온통 노란 해바라기로 뒤덮이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가을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인근에 아를테마수목공원과 파크 골프장이 조성돼 있다. 


수목원 강가에는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특별한 풍광을 선사한다. 일명 ‘화천 사랑나무’로 불리면서 이 일대가 관광명소가 되는데 기여했다. 동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골프장을 조성할 때 서울 사는 사람이 사랑나무를 옮겨 가 심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나무뿌리 너무 깊고 넓게 퍼져서 나무를 파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북한강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골프장 관리하는 분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나무 아래에서 땀방울을 식히며 감자떡으로 참을 즐기는 풍광이 더없이 정겹다.


해산령 구불구불 길 넘어 ‘평화의 댐’ 


딴산에 조성된 인공폭포를 지나 계속 북쪽으로 달리면 평화의 댐이 나온다. 거리상으로 27km이지만 해발 1140m의 해산령을 넘어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화천 읍내 카페의 젊은 여사장이 평화의 댐 여행에서 ‘구토가 나올 정도로 꼬불꼬불했던 산길’만 기억에 남는다고 할 정도로 가파른 고개를 숨 가쁘게 넘어야 한다. 


가다 보면 육지 속의 섬 ‘비수구미’ 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비수구미 마을은 한국 전쟁 직후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한때 100가구가 넘었지만 지금은 몇 가구만 남아 있다. 해산터널 앞에서 비수구미까지 6km 길이의 트레킹 코스가 유명하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청정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고 원시림과 계곡에 싸여 있는 비수구미 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기념하기 위해 1986m로 만들었단 해산터널을 지나면 해산 전망대가 나온다. 해가 다른 곳보다 먼저 떠올라 일출 풍경이 아름다워 해산이라고 불린다. 민간통제구역이었던 만큼 숲이 울창해 호랑이가 출몰하기도 하여 호랑이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전망대 조형물도 호랑이 형상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전두환 정권이 북한의 금강산댐 폭파를 통한 수공에 대비한다며 국민을 속여 준공한 평화의 댐

평화의 댐은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와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에 걸쳐 있는 댐으로 길이 601m, 높이 125m, 총 저수량이 26억3000만t에 이른다. 1987년 2월 착공, 1989년에 1차, 2002년에 2차 준공했다.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됐다. 북한의 금강산댐(임남댐)이 방류할 경우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고 하여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다. 어린아이들이 돼지 저금통까지 깨서 성금을 낼 정도로 전 국민의 지지와 성금으로 완공됐다. 


그러나 정부의 금강산 댐 관련 발표는 거짓과 과장으로 드러나고 전두환 정권의 정권 안정을 위한 대국민 사기임이 밝혀졌다. 현재는 건천(乾川) 댐으로 운영되며, 홍수 조절 전용 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평화의 댐 저수량은 소양강댐과 충주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으며, 금강산댐보다 1000만t이 많다.


평화의 댐 인근에는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을 비롯해 비목공원, 물문화관, 상설 야외공연장 등이 조성돼 있다. 비목공원은 6.25전쟁 당시 희생된 젊은 용사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가곡 ‘비목’의 탄생 비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작사가 한명희는 1960년대 중반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군 복무를 하다가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돌무덤이 자신과 같은 또래라는 생각에 그를 위로하는 노랫말을 짓게 된다. 그 후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여 국민가요 비목이 탄생하게 된다.


필자가 평화의 댐을 찾았을 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시설이 운영 중단된 상태라 둘러볼 수 없어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댐 위로는 460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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