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이상 세대들이라면 젊은 시절 연인을 만나거나 축하해야 할 일이 있어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를 먹을 때 함께 나오던 녹색의 완두콩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키면 녹색 완두콩을 고명처럼 서너 알씩 올려 나왔던 것도 추억하고 있을 법 하다.
이들 음식에 왜 완두콩이 함께 나오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완두콩의 효능을 알고 나면 단지 장식용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완두콩은 더부룩하고 울렁거리거나 설사 날 때 섭취하면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일종의 ‘천연 소화제’ 역할로 음식과 함께 올렸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완두콩은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 식재료다. 짧은 세대·많은 후손·크기·콩알 모양· 색상 등 대립 형질이 뚜렷해 유전 연구에 적합하다. 1860년대 멘델이 우열·분리·독립 등 3대 유전 법칙을 발견해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생물학의 근간을 이루는데 공헌할 수 있었던 것도 완두콩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식재료인 완두콩은 최근에는 함유된 각종 유익성분과 이에 따른 질병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완두콩을 이용한 음식의 종류와 함유된 각종 영양성분, 질병 예방 효과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식재료 … 완두콩 밥·스프·전 구수한 풍미 더해
완두콩(학명 Pisum sativum)은 쌍떡잎식물 콩과(Leguminosae/Fabaceae)의 한·두해살이풀로 높이는 2m 정도이고 잎은 겹잎이며 잎 끝은 덩굴손으로 되어 지주를 감아 올라가면서 자란다.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1∼2개씩의 접형화가 핀다. 꽃은 흰색·붉은색·자주색 등이며 늦은 봄에 핀다. 꼬투리에는 5∼6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미 재배됐다. 중국에는 5세기경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에서의 재배 역사는 오래지 않다. 다만 한방 고의서인 ‘동의보감’에 ‘완두는 성질이 평이하고 영양 성분이 매우 좋아 오장육부를 이롭게 하고 기운 순환을 조절하여 몸이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다’고 기록돼 있어 적어도 조선시대에 완두콩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속이 더부룩하고 울렁거리거나 설사 날 때 완두콩죽을 권하고 기운이 허약한 이들을 위한 보약으로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식재료로서는 물론 약용으로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완두콩은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식재료로 완두콩을 활용한 대표적인 요리는 구수한 맛을 지닌 완두콩밥을 들 수 있다. 완두콩을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세척한 후 밥을 지으면 된다. 완두콩 스프도 완두콩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음식이다. 끓는 물에 완두콩을 삶은 후 팬에 버터와 양파 그리고 삶은 완두콩을 넣고 볶고 재료들이 적당하게 익으면 믹서에 갈아준다. 냄비에 갈린 재료들을 넣고 저어 소금으로 간을 하면 완성된다.
완두콩전도 맛있는 완두콩 요리다. 삶은 완두콩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믹서에 간 뒤 빵가루와 감자전분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 식용유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구워내면 맛있는 완두콩 전을 맛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완두콩은 샐러드 또는 각종 요리에 부재료로 쓰이고 있으며 특히 스테이크나 포크 커틀렛 등 서양요리에 곁들여져 나오는 식재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완두콩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함유하고 있는 각종 영양성분과 이들 성분에 의한 질병예방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네랄·비타민·오메가3 다량 함유 … 항산화·항염증 효능도 검증돼
완두콩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내 환경을 유지하고 내장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다른 콩들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낮고 전분의 함량이 높아서 단맛이 강하지만 정제된 설탕과는 다르게 인체에 흡수되는 속도가 느리다.
완두콩은 함유된 풍부한 섬유질과 단백질, 혈당을 올리는 속도를 수치화한 글리세믹 지수가 낮아 당뇨병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마그네슘과 칼륨, 칼슘 등의 미네랄도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들은 심장 질환의 주요 원인인 고혈압을 예방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완두콩은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이소플라본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은 태양광선 노출로 발생한 유해산소를 없애줘 콜라겐을 보호해 준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과 성분이 유사한데 골다공증 감소·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유방암 및 전립선암 예방 등에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두뇌 건강과 관련한 완두콩의 효능이 주목받고 있다. 우선 완두콩에 풍부한 오메가3 성분이 그중 하나다. 오메가3은 뇌 건강에 필요한 성분으로 이미 공인을 받았다. 완두콩에는 알파리놀렌산(ALA)의 형태로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이 함유돼 있다. ALA는 체내에서 EPA와 DHA로 전환돼 기억력과 집중력 등 뇌 기능을 향상시킨다.
또 완두콩에 풍부한 비타민 C와 비타민 B6, 판토텐산 등도 뇌 기능 활성화를 돕는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일조하며 뇌의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비타민 C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 생성을 촉진하며 기억력 증강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B6도 노르에피네프린 생성에 관여하며 세로토닌 등 기분조절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 낸다. 판토텐산 역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합성을 촉진하는데 이 물질은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개선해 준다.
완두콩의 비타민 K 성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비타민 K가 뇌 안에서 신경 손상을 방지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치료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러한 효능 덕분에 완두콩은 건망증이나 집중력 저하 등의 인지기능장애는 물론 과잉행동장애·약물중독·섭식장애 등에 좋은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편 완두콩은 건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혈관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 호모시스테인인데 이 호모시스테인을 몸에서 제거해 주는 엽산이 완두콩에는 풍부하다.
완두콩의 항산화·항염증 효능도 얼마 전부터 잇달아 검증되고 있다. 완두콩에는 카테킨 등의 각종 플라보노이드와 인체에서 비타민 A로 합성되는 베타카로틴 등이 풍부해 노화 방지와 주름 예방 등의 피부미용에도 유익하게 작용한다. 또 항염증 효능을 지닌 사포닌 성분도 콩과 식물에서는 유일하게 함유하고 있다.
이처럼 완두콩은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가진 최상의 그린푸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완두콩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완두콩에는 ‘청산배당체’라는 천연 식물 독성 물질이 소량 함유돼 있어 일반적으로 성인 기준 하루 40g 이상 섭취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0g은 종이컵 한 컵 정도의 양이다. 또한 완두콩에는 퓨린 화합물이 들어있어 통풍이나 신장 질환 등이 있는 사람들은 섭취를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