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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학창시절 나보다 못한 친구가 잘 나간다면 …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등록 2021-10-02 00:43:57
  • 수정 2021-10-06 16: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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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 지위를 성공의 잣대로 올인하면 ‘피곤한 삶’ 자처하는 일 … 우리는 모두 ‘위너’이자 ‘루저’

얼마 전 한 취업준비생이 이메일로 상담을 청해온 적이 있었다. 간단히 상담내용을 요약하자면 중·고교 시절 성적도 별로였고 외모나 성격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어 언제나 자신이 격려와 응원을 해주던 친구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 업종은 아무나 스카우트 하나봐”라는 말로 친구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얘기였다. 


덧붙여 자신은 요즘 취업이 안 돼 헤매고 있는데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나보다 못하다 여겼던 친구가 잘 나간다 하니 질투하고 깎아내리기 바쁘고 친구가 예전 나보다 못했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게 자신만의 욕심이냐고 되물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을 영어로 말하면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가 된다. 직역하자면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몰려 다닌다는 뜻이다. 참새는 참새끼리, 독수리는 독수리끼리 무리지어 지낸다는 의미다. 


원래 유유상종이란 단어는 같은 성격이나 성품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따르고 좇고 사귄다는 좋은 의미다. 즉 서로 훌륭한 점을 닮아가서 상호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였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순우곤에게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지시했다. 며칠 뒤에 순우곤이 일곱 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나자 선왕이 “귀한 인재를 한번에 일곱 명씩이나 데려 오다니, 너무 많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순우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며 “같은 종의 새가 무리지어 살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입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구인하는 입장에서 유유상종은 한 명의 인재를 구하면 같이 사귀는 여러 인재를 동시에 영입할 수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유유상종은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려 지낸다는, 속칭 ‘끼리끼리 논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배타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열등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을 비꼬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변질됐다. 


각종 동호회 활동을 하다보면 단 하루를 만났어도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서로 공유하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 관심사를 넘어 그 친밀도가 개인적인 부분까지 접근하게 되면 동호회는 해체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너무도 다른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 탓이다.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있을 때 편하다. 특히 우리가 사는 속물적 경쟁사회에서는 세상에서의 내 지위, 타이틀에 민감한 탓에 비슷한 사회적 지위끼리 유유상종할 때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격려와 응원을 해주며 이끌던 친구가 지금은 나보다 더 잘나간다니 복잡한 심경이 드는 것은 질투 또는 자격지심일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기본적 심리반응일 수 있다. 사실 웬만한 도인이 아니고서야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신없이 매기는 등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혹자는 경쟁이야말로 더 나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도대체 경쟁 자체가 무엇을 위한 발전인지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피곤한 인생, 인간관계에서는 진정한 위로와 쉼이 존재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한 번쯤 1960년대 미국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탈사회적 행동을 했던 히피족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히피족은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사랑과 자유에 더 관심을 가졌다. 어찌 보면 지금의 자본주의적 세태에서 일탈해 살아가던 그룹들이다.


인간은 관심을 받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다. 그 관심을 받기 위해 나만의 특징과 개성을 갖길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기를 원하는 기준이 소위 말하는 타이틀 또는 사회적 지위에 국한되는 탓에 문제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 중에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뤘지만 그것으로 인해 가족을 잃기도 하고 오랜 친구를 버리기도 한다. 


반대로 사회적 잣대로는 별스럽지 않아도 ‘진짜 친구’가 많은 사람들도 있다. 병원에서 상담하는 소위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 관점에서는 ‘위너’일지 몰라도 우정에 관한 한 완벽한 ‘루저’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해서 히피족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너무 극단적이며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 사이에서도 계층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아이러니가 성립했다. 다만 사람과의 관계와 만남에서 히피적 철학을 30%만이라도 적용한다면 어떨까 싶다. 


앞서 잘 나가는 친구 땜에 질투하며 상담했던 취준생의 경우 과한 욕심으로 친구를 자기 안에 가두려는 심보라고 할 수 있다. ‘역지사지’라는 말처럼 본인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학창시절 본인보다 더 공부를 잘했거나 똑똑했던 친구가 “넌 운이 참 좋구나! 학교 다닐 땐 그저 그랬는데”라고 말한다면 과연 본인은 어떤 기분을 느끼겠는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속으로 “지가 얼마나 잘났다고 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 그 타령이야. 나한테 질투하는 거네” 이런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며 파도타기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처지던 친구 또는 지인이 지금 잘 나갈 수 있는 것처럼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올라가는 정점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죽을 것 같이 떨어졌다가도 다시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타이틀이나 사회적 지위도 결국은 속성이 있다.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변화무쌍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인생의 기본적인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 상태가 전부인양 올인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고생해서 얻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지만 거기에만 매몰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결국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와 성공 등과 상관없이 소탈하고 담백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우정을, 교분을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진짜 친구’가 많다.


경쟁 위주의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지위와 타이틀 등 속물적인 경쟁은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잠시 놓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오래 전 휴대폰의 광고에 등장해 유명세를 치렀던 ‘놓치기 싫다면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스트레스의 해소요, 건강한 쾌락의 추구이며,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의 도(道)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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