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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산 어지럽고 싸늘하다는 ‘양평’ … 산나물 맛 좋은 ‘용문산’에 기댄 살기 좋은 곳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9-30 20:26:19
  • 수정 2021-10-01 0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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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1157m 용문산 제대로 등산하려면 ‘각오 단단히’ … 천년 넘은 용문사와 은행나무

경기도 양평은 동쪽으로 원주, 횡성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 여주와 붙어 있으며 북으로는 가평, 홍천으로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남양주, 하남, 광주와 연접해 있다.  


양평에 관해 이중환의 택리지는 “산이 어지럽게 솟아 있고 골이 깊어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되며, 기후도 싸늘하고 시내 또한 메말라 낙토가 아니다”고 적었다. 그러나 강원도 지방과 한양을 오가는 가장 길목에 위치한 남한강변의 양평 양근나루(양평읍 양근리)는 수량이 풍부해 1930년대까지도 강원도에서 서울로 들어가기 전의 가장 큰 포구로 번영을 누렸다.


칡미 또는 칙미포구로 불렸던 양근나루를 통해 강원도 일대에서 나는 메밀, 콩, 수수, 감자, 옥수수 같은 밭작물 곡류와 나무그릇, 꿀 등이 남한강을 따라 내려와 서울 마포나루로 실려 나갔다. 그러나 산업철도인 중앙선이 깔리고 신작로가 놓이는 등 육로 교통이 발전하면서 포구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용문산, ‘경기도의 금강산’ ‘양평이 의지하는 산’ 


양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용문산(龍門山) 관광단지와 용문사이다. 해발 1157m의 용문산은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많아 예부터 ‘경기도의 금강산’이라 불리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양평이 용문에 의지한다고 표현했다. 1971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용문산 일대는 거듭된 정비를 통해 잔디광장과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이 들어선 휴식과 문화 공간으로서 연중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용문산은 예나 지금이나 산나물이 유명하다. 봄이면 용문산 일대에서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안국은 용문의 산나물을 선물 받고 답례로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고 한다. 


산나물 향기롭고 연하긴 용문이 그만인데

그것으로 손님 대접하면 후의 있음을 알리라

방장(方丈)의 고량진미를 어찌 부러워하리요

한 바구니 속에 부귀영화도 저버리라 하였다. 


방장은 절의 살림을 맡는 책임자 승려를 말한다. 산나물이 얼마나 맛있으면 잘 차려진 사찰음식보다 낫고, 부귀영화도 저버린다고 하였을까.


용문사 입구에는 용문산 지구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한국군 6사단(철원 주둔 청성부대)은 중공군 제63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방어선을 지켜냈다. 이 용문산 전투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가장 큰 성과를 올린 대접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발 1000m 넘는 큰 산, 아름다운 용문사 숲길과 천불천탑 탑곡


용문사 돌탑계곡(탑곡). 자료 경기관광공사

용문사 들머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숲길은 아름답다. 일주문을 지나 주 통행로에서 계곡쪽으로 내려서면 ‘탑곡’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돌탑들이 가득한 계곡의 모습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진심을 담아 하나씩 올려 놓아 쌓은 돌탑이 계곡에 지천이다. 천 가지의 마음이 이룬 천불천탑이다. 


자연스럽게 전남 화순의 운주사나 전북 진안 마이산의 돌탑을 떠올리게 된다. 용문사 탑곡의 탑들은 저마다 바라는 것이 다른 듯 탑의 모양도 2층탑, 3층탑, 다층탑, 모전석탑 등 각양각색이다. 사람의 모습을 닮기도 하였고, 석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탑도 보였다. 한 사람이 돌 하나를 올리고 뒤에 오는 이가 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또 돌 하나를 얹어 이루어진 탑곡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오르는 길은 저절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이다. 


용문사의 자랑, 천년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호)


탑곡이 끝나면 이번에는 천 년 넘은 은행나무가 기염을 토한다. 한눈에 봐도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나무 끝가지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이 대단한 은행나무는 높이가 60m, 가슴높이 둘레는 12m에 달하며 수령은 1100~1300년으로 추정된다. 동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돼 있다. 가을날 은행나무가 노랗게 단풍이 들면 일대는 일순 황금산으로 변하고 나무 아래에는 은행나무 열매가 수북하게 쌓인다. 더 이상 무거운 가지를 지탱할 수 없어 여기저기 지지대를 세워 놓았다. 또 벼락이 맞지 않도록 90m 철탑을 세우고 피뢰침을 박아놨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으며 내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625~702)가 지나다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이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었다는 설도 전한다. 개경에서 숨을 거둔 경순왕은 시신마저도 고향산천 경주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낯선 임진강변에 묻혀 있다. 일설에는 경순왕의 아들이자 신라 마지막 세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그 때문일까. 가지마다 이파리마다 멸망한 왕조의 한과 비통함이 서려 있는 듯하다. 나라를 잃고 왕궁에서 쫓겨나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마의태자는 무슨 마음으로 은행나무를 심었을까. 마의태자는 금강산에서 베옷을 입고 초근으로 연명하다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조성 세종 때 정3품 이상 벼슬인 당상 직첩을 하사받아 벼슬을 하기도 했다. 1907년 군대해산에 저항해 일어난 정미년 의병봉기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울 때에도 은행나무는 화를 면했다고 하여 천왕목(天王木)으로도 불린다. 누군가 나뭇가지를 자르려 하자 나무에서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쳤다고 한다. 이외에도 나라에 변고가 생길 때에는 어김없이 ‘윙’하는 소리를 내며 길흉을 알려 주었다. 고종황제가 승하했을 때에는 멀쩡했던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도 하니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참으로 신묘스러운 나무다. 


용문사 스님들이 나무를 대하는 태도도 각별하다. 아침마다 부처님께 문안하듯 은행나무 주변을 쓸고 그 아래에서 기도를 드린다. 용문사 은행나무의 단풍을 보려면 10월 말에서 11월 첫 주 정도에 첫 서리가 내리기 전에 방문해야 한다. 


천년산사 용문사,  ‘마테호른’ 백운봉 조망이 최고, 용문산 풀코스는 12km에 7시간 


용문사 전경. 자료 양평군

용문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4) 때 원효대사 창건설, 신라 신덕왕(912~917) 때 대경대사 창건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 창건설 등이 전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1907년(순종 원년)에 의병의 은거지로 사용되다가 일본군에 의해 전소된 것을 1909년 주지 김취운 스님이 재건했다. 다시 6.25 전쟁으로 크게 소실된 것을 1982년 주지 이선걸 스님이 대웅전, 범종각, 지장전 등을 조성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4세기 제작된 용문사 금동 관음보살좌상이 보물 제1790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본 떠 판각한 것이다. 추사의 또 다른 호인 ‘완당’이란 낙관이 찍혀 있다. 


용문사는 은행나무 잎과 나무 모양을 새겨 넣은 종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울리고 있다. 사찰 내 전통찻집과 템플 스테이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으로 인기다. 템플스테이에서는 양평의 특산물인 연잎, 연실, 팽이버섯, 도토리가루, 두부 등을 활용한 친환경 자연음식을 만드는 체험행사도 한다. 


등산을 위해 용문사 은행나무에서 조금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서쪽)길은 능선을 따라 상원사에 이르는 다소 평탄한 능선길이다. 오른쪽(북쪽)길은 계곡을 올라 마당바위를 지나 용문산 정상(가섭봉)에 이르는 용문사 기준 4.4km 코스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탄다. 마당바위는 스무 명 정도가 편히 쉴 수 있는 평범한 너럭바위다. 마당바위에서 가섭봉까지는 경사가 급해 일부는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서 동쪽과 남쪽 전망은 강과 산으로 볼 만하지만 서쪽과 북쪽은 황량하다. 


용문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장군봉-함왕산성(함왕봉)-백운봉-백운암을 거쳐 연안마을(용문면 연수리)로 내려오는 코스는 용문사 기준 장장 12.1km에 7시간이나 걸린다.  백운봉에서 세수골(양평읍 백안리)로 직선으로 내려오는 다소 편한 코스도 있다. 또 장군봉에서 상원사, 연안마을로 내려가는 절충적인 코스도 있다. 산행에 욕심을 부리면 몸이 고달프고 자칫 사고도 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백운봉은 양평군 옥천면과 양평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40m로 남쪽 능선에서 가장 높다. 하늘을 향해 솟은 듯한 모습이어서 ‘용문산의 마테호른’으로 불린다. 경치는 가섭봉보다 한길 위다. 남으로는 남한강 줄기, 서쪽으로는 유명산과 청계산(양평군 양서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험악한 용문산 사나사, 조계종 정립한 원증국사 보우스님의 탑과 묘비 


용문사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옥천면 용천리 용문산 자락에는 고려시대 사찰 사나사(舍那寺)가 있다. 대한 조계종 제25교구인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서 923년(고려 태조 6년)에 왕건으로부터 국정자문을 받은 대경국사(大鏡國師) 여엄(麗嚴, 862~929)이 제자 융천(融闡)과 함께 세웠다고 전해진다. 1367년(공민왕 16년)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에 의해 중건됐으나 임진왜란과 정미년 의병운동, 6.25전쟁으로 인해 모두 불타 없어지고 1990년 이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주문을 지나 석조여래상을 지나면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삼성각, 조사전, 석조여래상 등이 일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각들은 최근에 지어졌으나 의외로 고즈넉한 멋을 풍긴다. 


곳곳에 한국 전쟁 당시 생긴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특히 원증국사승탑과 승탑비, 고려시대 삼층석탑에 유난히 총탄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 사실 사나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원증국사승탑과 승탑비 등이 있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우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종조로 선종구산(禪宗九山)을 통합하고 고려 후기 타락한 불교의 개혁을 위해 애썼던 고려 말의 승려다. 


원증국사(圓證國師)는 보우가 입적한 뒤 고려 우왕이 내린 시호다. 충남 홍성(옛 홍주)에서 태어나 13세 때에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한 보우 스님은 1346년(충목왕 2년)에 원나라에 가서 청공의 법을 이어 임제종의 19대 법손이 됐다. 4년 후 귀국하여 충목왕, 우왕 등의 왕사, 국사가 되었으며 사나사를 중건하고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소설암(小雪庵)에서 입적했다.


사나사의 보우 대사를 모신 원증국사탑과 석종비(石鐘碑, 廟塔碑)

경기도 유형문화재제 제72호로 지정돼 있는 원증국사탑은 커다란 종 모양의 탑으로 4각 기단 위에 탑신과 탑정을 얹은 모습이며, 탑신의 표면에는 아무런 조각이나 문양도 없이 검박한 모양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石鐘碑, 廟塔碑)는 화강암으로 된 지대석을 파서 비 몸을 끼워 세운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원증국사탑과 석종비는 모두 제자 달심이 세웠다. 사나사는 작고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인 보우대사의 탑비와 영정이 모셔져 있으니 한번 들러볼 만하다. 


중미산과 유명산, 중원계곡 천문대, 휴양림, 야영장, 물놀이에 그만

 

양평에는 용문산 외에 중미산과 유명산이 손꼽히는 산이다. 중미산(仲美山)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서종면과 가평군 설악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용문산이 양평의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면 중미산은 양평의 북서쪽 경계에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중미산 천문대

중미산 정상(해발 834m)과 인근의 천문대는 옥천면 신복리에 속한다. 천문대는 19993월에 개관했으며 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서울 근교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중미산 정상은 양수리로 흘러가는 남한강 줄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며, 울창한 숲과 계곡의 맑은 물이 발길을 이끈다. 주계곡 3단 폭포는 시원함을 더해준다. 번잡한 용문산 관광단지와 달리 상가도 별로 없고 휴양림과 야영장이 조성돼 가족 단위 캠핑에 적합하다.

 

중미산에서 선어치(서너치)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남동쪽에 위치한 게 유명산(有明山 해발 862m)이다. 양평군 옥천면과 가평군 설악면 경계에 있다. 두 산은 차로 10분 거리다. 유명산은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로 우리나라 자연휴양림 1호로 지정됐다. 잣나무와 낙엽송이 빼곡하다. 유명산-중미산-선어치고개-용대산-서종면 정배리-서종면 문호리로 이어지는 북한강변길은 아름다운 드라이브로 코스로 유명하다.

 

용문면 중원리 중원계곡.자료 경기관광공사

용문면 중원리(中元里), 용문산 동쪽의 중원산(780m)과 도일봉(842m) 사이에 있는 중원계곡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6에 이르는 계곡 곳곳에 폭포와 소(() 등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계곡 입구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마주하는 첫 번째 폭포가 계곡을 대표하는 중원폭포로서 높이 약 10m3단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경관이 빼어나다. 중원폭포를 지나 울창한 숲길 아래에는 치마폭포가 있다.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하얀 포말이 치마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아래에 맑은 소가 천연 수영장을 이루고 있다. 계곡길을 걷다 보면 매와 독수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매둥치봉과 수리봉이 나온다.

 

중원계곡으로 들어가는 용문면 조현리 길목에는 양평군이 운영하는 야영장 겸 휴식처가 있다. 넓은 개울가에서 물놀이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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