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돔’으로 표현되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과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해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 때 쯤이면 무더운 여름에 우리의 몸에 변화가 생긴 경우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몸이 허해진 것 같다’며 보약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약, 특히 보약을 짓는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약재가 있다. 바로 사슴의 뿔인 녹용이다.
보약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녹용(학명 Cervi Parvum Cornu)은 사슴과(Cervus nippon) 속한 매화록(C.nippon Temminck)과 마록(C.elaphus L.) 또는 대록(C.canadensis Erxleben)의 숫사슴의 털이 밀생되고 아직 골질화되지 않았거나 약간 골질화된 어린 뿔을 자른 다음 말린 것이다.
녹용은 이들 숫사슴의 어린 뿔을 채취해 가공한 약재로 초목이 자라나는 모습에 비유하여 녹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사슴뿔의 채취시기에 따라 녹용과 녹각으로 분류된다. 녹용은 어린 뿔을 채취한 것이고 녹각은 완전히 자란 뿔이 탈모하여 자연 탈락한 것을 말한다.
녹용은 부위에 따라 가장 끝부터 분골·상대·중대·하대로 분류한다. 전통적으로 녹용의 끝 부분인 분골의 효과가 가장 크다고 여겨졌고 실제 성분 연구에서도 아미노산을 비롯해 단백질·성장인자·당류 등 다수의 성분이 분골에 가장 많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다.
녹용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한약재로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한방에서도 각종 질환의 치료 약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방 고의서인 ‘동의보감’에서는 녹용의 효능에 대해 “녹용의 효능은 성질이 온하고 맛은 달며 신장의 양기를 보해주는 보원양(補元陽), 기혈을 보해주는 보기혈(補氣血), 정과 수를 도와주는 익정수(益精髓), 근육과 골격을 강하게 해주는 강근골(强筋骨)의 효능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녹용의 효능은 성장호르몬 생성과 뇌수·척수·골수 등을 보강해주고 조혈 기능을 활발하게 하며 양기를 보충해주는 한편 근육과 인대·힘줄·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노소 모두에 효과 … 뇌 기능 향상 연구결과도 나와
녹용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수한 효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어린이에게는 발육촉진과 저항력을 강화하는데 효과가 있다. 체질이 허약한 어린이가 발육이 느리거나 연골병에 걸려 있을 경우 또는 이가 늦게 나거나 정문이 좀처럼 폐합하지 않을 때 녹용을 복용시키면 발육을 촉진하고 골격을 튼튼하게 도울 뿐만 아니라 지능을 발달시키고 위장의 소화흡수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물론 청·장년층의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며 특히 중년층에게는 강장증진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 녹용에는 많은 양의 호르몬과 발정호르몬이 함유되어 있어 성기능 감퇴에 대해 흥분장양작용이 있다. 연령은 아직 늙지 않았는데 남성의 경우 발기되지 않거나 발기가 되더라도 강도를 유지하지 멋할 때, 여성은 냉감증이 있는 경우 증상을 완하하고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 또한 녹용에는 장양의 효능이 있어 일부 만성질환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또 노인의 경우 신체의 약한 부분을 보강해주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효과가 있어 기력을 회복하고 건강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녹용은 특히 부인과 질환에 효과가 있다. 여성들의 체내호르몬이상은 월경과다와 월경기의 단축 또는 연장, 대량의 자궁출혈 등 각종 질병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로 인한 체력의 소모 또는 백대하의 과다로 냄새가 나는 등의 허약증상이 수반될 때에 도움이 된다. 또한 빈혈환자에게는 적혈구·헤모글로빈·망상적혈구의 신생을 촉진하는 작용이 있어 생리와 출산으로 체력의 소모나 중병 및 대수술 뒤에 복용하면 좋다.
이외에도 녹용은 산전산후의 자양강장제로서도 그 효과가 우수하다. 습관성 유산이 있는 임신부에 경우 유산방지에 도움이 된다. 평소 체질이 허약한 임신부의 경우 적당량의 녹용을 복용시키면 모체에 유익할 뿐 아니라 태아에 대하여도 영양을 주며 그 발육을 촉진시킨다.
녹용의 효능과 관련해 최근 발표된 연구 논문들에 따르면 녹용은 뇌세포도 활성화시켜 뇌의 기능을 좋게 하고 기억력과 집중력을 길러주는 데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의 경우 ‘녹용을 복용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든지 또는 ‘녹용을 복용하면 살이 찐다’는 등의 잘못된 상식으로 인해 녹용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의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에 불과할 뿐이며 녹용에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과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효능이 있다.
현재 국내의 한의원과 한방병원 등 한방의료기관에서 질병치료를 위해 약재로 처방하는 녹용은 원용(元茸)으로 불리는 러시아산 녹용과 뉴질랜드 녹용, 중국산 녹용 등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중 러시아산 녹용이 약효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토불이’라고 해서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과 약재가 우리 몸에 좋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녹용도 국내산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국내산 녹용의 경우도 한약재 제조업소에서 생산 유통되는 제품은 의약품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녹용, 즉 사슴의 뿔은 춥고 넓은 지역에서 성장해야 뿔의 골질화가 느려 크고 조직도 조밀해 약재로서의 효능이 좋다. 러시아산 녹용과 뉴질랜드 녹용이 약재로서의 품질과 효능이 우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한방의료기관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한방의료기관에서 국내산 녹용이 의약품으로 처방 사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식품원료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