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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보령 성주사지, 폐사지의 광대함과 덧없음 … 백제 오합사에서 출발, 임란 후 쇠퇴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7-30 11:32:48
  • 수정 2021-07-30 12: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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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의 무창포해수욕장 … 국내 최대의 대천해수욕장,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진 고운 모래

충남 보령(保寧)은 일찍이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의 산천 중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했던 고장이다. 보령은 서해안의 아름다운 해안산과 보령호라는 호수, 자연휴양림으로도 유명한 오서산과 성주산까지 산과 호수와 바다까지 두루 갖춘 전망이 탁 트인 명승지이다.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이자 학자 박은(朴誾 1479~1504)은 보령을 일컬어 ‘땅의 형세는 탁탁 치며 곧 날려는 날개와 같고 누정(樓亭)의 모양은 한들한들 매여 있지 않은 돛대와도 같다’고 했다.


보령시 미산면의 보령호는 성주산(성주면)과 부여의 최고봉이자 진산인 성태산(부여, 청양, 보령의 경계)에서 발원해 보령 웅천읍으로 흘러나가며 인근 충남지역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자료 보령시

보령군의 백제시대 이름은 신촌현(新村縣)이었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결성군(結城郡,  홍성군 결성면을 중심으로 홍성군 남부에 있던 군)의 속현인 신읍현(新邑縣)이 됐다. 고려시대부터 보령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 주로 보령현으로 불리었다가 1895년 홍주부 소속의 보령군이 됐다. 이어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오천군, 남포군, 보령군이 합해져 보령군이 되었다. 


보령군의 동북쪽에는 충남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오서산(烏棲山 789m)이 자리잡고 있다. 오서산은 보령, 청양, 홍성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 맥이 아래로 내려와 성주산이 됐다. 성주산 남쪽 기슭에는 9산선문 중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 도량이었던 성주사(聖住寺)의 옛 터가 남아 있다. 


성주사지, 옛 영화는 어디 가고 개망초만 무성할까


폐사지 여행에서는 늘 ‘시간’ ‘영속성’ ‘덧없음’ ‘실존’이라는 단어들을 두서없이 떠올리게 된다. 작은 절들은 흔적도 없이 스러져가서 터조차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성주사지처럼 당당하게 존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진행된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을 통해서 이 절터가 성주사터이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법왕 때 창건된 오합사(烏合寺)가 바로 성주사임이 밝혀졌다. 


뜨거운 햇살 아래 성주사지로 들어서니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개망초들이 아우성이다. 간간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반가워 그리도 아우성인가 싶다. 망초 사이를 걸어 들어가면 광활한 터에 미끈하게 빠진 4기의 탑이 반긴다. 


성주사지는 완전 폐사지라기보다는 막 완성된 절처럼 말끔히 정리돼 있다. 절터에는 금당터가 복원되고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4기의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낙네의 고운 미소처럼 푸근한 성주산(聖住山, 680m, 미산면과 성주면의 경계)을 비롯해 멀리 오서산이 켜켜이 둘러싼 모습이다. 참으로 다정다감해 보이는 산천이다. 


짙은 구름 속에 가려진 오후의 저무는 해는 금방이라도 반대편 산등성으로 똑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데 넓디넓은 성주사지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으니 문득 쓸쓸함과 슬픔이 밀려온다. 과거의 그 영화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이렇듯 뜨거운 여름 햇살과 풀만 무성한 것일까. 하얀 개망초가 마치 시간의 강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백제시대의 오합사는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에 적마(赤馬)가 나타나 밤이고 낮이고 절 주변을 돌면서 백제의 멸망을 예견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백제의 패망과 함께 폐허가 된 오합사를 다시 중창한 것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신라의 무염대사(無染大師)였다. 무염대사가 오합사터에 머물며 절을 크게 일으켜 세우니 신라 문성왕이 ‘성주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전한다. 성주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성주산문의 중심 도량이었으니 그 규모와 위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승암산 성주사 사적’에는 성주사가 불전 80칸에 행랑채 800여 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의 규모라고 기록돼 있다. 또 많게는 25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쌀뜨물이 성주천을 따라 10리를 흘렀다고 한다. 성주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며 쇠퇴하다 17세기 이후 폐사됐다.


성주사지에는 석등과 5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과 대불좌 및 3층석탑 3기가 남아 있다. 중앙삼층석탑은 보물 제20호, 서삼층석탑은 보물 제49호, 동삼층석탑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들은 화려하지 않으며 반듯한 균형미와 간결한 세련미가 돋보인다. 위쪽의 상륜부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지만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밖에 석불입상 등의 유적이 있다. 


금당터로 오르는 계단 양쪽 소맷돌에는 원래 사자상이 있었으나 1986년 도난당했다. 지금은 모형 사자상이 만들어져 있다. 문화재 보존에 경각심을 울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전문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당해 누군가의 정원석으로 사용되거나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당국의 안이한 문화재 관리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높이가 4.5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주사지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자료 보령시

탑에서 조금 떨어진 전각 안에는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가 세워져 있다. 신라 진성왕 4년에 세워진 ‘낭혜화상보광탑비’는 높이가 4.5m에 달하며 신라는 물론이고 고려, 조선 시대 탑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귀부에 약간 손상이 있을 뿐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 


낭혜화상탑의 비문은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동생 최인곤이 휘호했다. 낭혜화상의 행적과 업적을 적은 비문의 글자수가 5000자가 넘는다. 낭혜화상비문은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부도비, 경주 초월산의 대승국사비,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부도비와 함께 사산비명(四山碑銘)으로 일컬어진다. 


낭혜화상탑비는 보령 남포오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비석 재료로 인정받는 화강암 재료다. 파고다공원의 3.1독립선언비도 남포오석으로 제작됐다. 낭혜화상탑비가 이토록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남포오석을 쓴 덕분이라고 한다.  


매달 두번 바닷길 열리는 무창포 … 백사장 길이 3.5km, 수심 얕고 평평한 대천해수욕장


보령 무창포해수욕장의 한가로운 정경

보령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수심이 얕고 고운 모래로 유명한 보령의 해변에는 머드 축제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과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해수욕장을 비롯해 용두해변, 삽시도거멀너머해수욕장, 삽시도진너머해수욕장, 독산해수욕장, 호도해수욕장, 원산도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오봉도해수욕장 등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10개도 넘는다. 


무창포해수욕장 입구에는 방역 요원들이 일일이 차문을 열고 방문객들의 열을 체크하고 손에 스티커를 부착해 주고 있다. 열이 나는 경우 부착된 스티커의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해변 풍속도이다. 


보령 무창포해수욕장의 석양

손등에 스티커를 부착하고 바로 해변으로 향한다. 탁 트인 해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코로나로 쌓인 묵은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듯하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인 무창포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직도 물속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 물놀이를 마치고 나와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해변가에 텐트를 치고 앉아 낙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숙소에는 들려오는 즐거운 말소리들 … . 아주 오랜만에 마주하는 삶의 풍경이다. 비록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지만 실로 오랫만에 보는 일상의 모습에 뭉클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느새 바다 위 구름 사이로 서서히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가고 있다. 붉은 노을은 순식간에 천지를 붉게 물들여 놓는다. 해지는 풍경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지 모를 일이다. 


1928년 개장한 무창포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 1.5km 폭은 50m에 달한다. 수심도 1~2m로 얕고 수온도 평균 섭씨 20도 안팎이어서 최고의 물놀이 장소로 꼽힌다. 그런가 하면 매월 보름과 그믐을 전후해 하루 2번씩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닷길이 열리면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석대도까지 걸어서 다녀올 수 있고 갈라진 바다 속 땅에서 조개며 게도 잡을 수 있다. 


국내 최대의 모래가 고운 대천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에서 10여 분 거리에는 보령의 최대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이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3.5km에 달하는 대천해수욕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다. 백사장의 폭 역시 무창포의 두 배에 달한다. ‘대천바다도 짚어보고 건너라’라는 말이 있듯 바닷물이 얕고 바다 밑이 고르고 수온도 적당하여 국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대천해수욕장의 모래질은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으로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지면서 모래로 변모한 것으로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세계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는 보령 해안가의 진흙을 이용한 보령머드축제는 이미 국제적인 축제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올해는 축제가 7월 23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다. 인근에는 머드박물관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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