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감정이 섞인 걸까, 진정 효과가 없어서일까. 세계보건기구(WHO)가 12일(현지시각) ‘미국내과학회지’(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 항바이러스제인 ‘베클루리주사’(Veklury 성분명 렘데시비르 remdesivir)가 효과가 없다는 논문을 올려 길리어드를 당황케 하고 있다.
WHO는 앞서 2020년 3~10월에 1만1200명의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길리어드사이언스의 항바이러스제인 ‘베클루리주사’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을 입원한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해도 인공호흡의 필요성, 병원 입원기간, 전체적인 사망률 등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작년 10월 15일에 medRxiv라는 논문 게재 사이트에 올렸다. 당시에는 동료(학자) 검증이 안 된 학술지에 게재돼 무게감이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인용영향지수(IF)가 25.391에 이르는 저널에 올려 작년 연구결과를 확증하는 듯한 느낌이다.
NOR-Solidarity로 명명된 이번 임상연구는 작년 10월에 논문화된 Solidarity 연구에 이어 추가로 시행된 독립적인 무작위 연구다.
미국내과학회지에는 베클루리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모두 입원 중인 코로나19 환자의 체내의 바이러스를 크게 제거하거나, 투여 10일 후 호흡곤란과 염증 정도를 크게 개선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추가된 임상적 및 생화학 자료가 수집되고 추적 기간이 긴 NOR-Solidarity 임상연구는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노르웨이에서 23개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 181명을 평가했다.
이 중 52명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경구 복용했고 49명은 베클루리를 정맥주사로 투여했다. 87명은 기준 치료제를 받았다. 의사들은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자 결국 6월에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10월에 베클루리를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것을 중단했다. 이번 연구의 경우 기준 치료제는 XXXX였다. 논문 본문에도 XXXX로 표기돼 있다.
길리어드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엄혹한” 검토가 아니라며 신속히 대응했다. 동료 심사 연구 중 3개가 베클루리의 장점을 개략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베클루리 비판론자들은 이 약이 주는 혜택이 그다지 크지 않다(modest)고 주장했다. 작년 10월 상당수 과학자들 렘데시비르가 사망률 감소나 입원기간 단축에는 기여한 바가 없고 회복시간을 약간 줄이는 데 그쳤다며 미국과 유럽의 보건당국이 비정상적으로 렘데시비를 승인했다고 비판했다. 작년 9월 23일 길리어드는 임상시험에 실패한 자료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유럽연합(EU)은 이를 모른 채 그 1주일 전에 베클루리의 약가를 책정했다. 따라서 이번 WHO의 소규모 연구는 비판론자들의 견해에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됐다.
베클루리는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중증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반적 치료제가 돼 길리어드 매출 증대에 크게 공헌했다. 길리어드는 2020년 베클루리로 28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연말에 입원 건수가 급증하면서 대부분의 매출을 이 기간에 거둬들였다. 올해 베클루리 판매액은 20억~3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길리어드는 지금보다 편리한 치료법을 만들기 위해 병원 밖에서 자가 링거주사 형태로 놓을 수 있는 신 제형을 개발하려다 백지화했고 현재는 흡입제 형태만 개발 중이다.
연구원들에 따르면 NOR-Solidarity의 결과에서만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2차적 연구 성과는 환자 인후부의 바이러스 부하량이었다. 전체 집단에 걸쳐 그 양은 초진 치료 후 일주일 만에 감소했고 열흘 뒤에도 감소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치료 집단군 사이에 바이러스 양 감소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굳이 차이를 둬야 한다면 “매우 조금이지만” 기준 치료제의 감소량이 더 컸다고 썼다. 연구자들은 병원 입원 시 존재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항체의 존재 여부나 바이러스 부하량의 많고 적음은 “이러한 약물의 잠재적 항바이러스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썼다.
베클루리는 기준 치료제보다 1주 후 호흡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10일째에는 아무런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베클루리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모두 “전임상 동물모델 실험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는 강력한 항바이러스 작용을 했다”는 초기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약물들이 입원한 환자들에게서 어떠한 항바이러스 효과도 주지 못했다”고 연구원들은 썼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언론 브리핑에서 자주 추천한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연구 결과는 놀랄 만한 게 없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6월 말라리아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판단 하에 긴급사용승인을 취소했다.
반면 베클루리는 길리어드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초기 연구 후 베클루리는 작년 5월에 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았고 10월에는 정식승인을 얻었다. 미국 의사들은 별 수 없이 이 약을 선택했고, 입원 환자들의 절반을 베클루리로 치료했다고 길리어드 임원들은 설명해왔다. 과연 이번 WHO의 임상연구에도 길리어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베클루리를 지금처럼 잘 팔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