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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평창, 월정사 600년 전나무숲과 상원사 불교성지 순례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7-01 21:26:11
  • 수정 2021-07-01 2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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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肉山이자 德山인 오대산의 푸근함 … 求道의 ‘선재길’ 4시간 卍行하면 세속이 淨化

가지와 나뭇잎이 하늘을 가리고 고개를 한껏 쳐올려도 그 끝이 보이지 않게 시원스럽게 쭉쭉 뻗은 나무들. 그런 나무들이 1000m 가량 이어진 멋진 숲을 만나고 싶다면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을 찾을 일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km 정도 이어진다. 숲은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싱그러움과 그윽함이 가득하지만 이른 새벽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숲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새들조차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고요함과 적막감이 지배하는 시간 마침내 빛은 어둠을 뚫고 하늘을 뒤덮고 있던 나무 잎새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다. 어두운 숲 속에 서서히 빛이 퍼져나가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벽 숲에는 나뭇가지 위로 햇빛이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들고 나는 바람소리,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 숲의 주인들이 내는 소리만이 있다. 숲 속에서는 그 누구라도 숲의 고요함을 배울 일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을 이루는 전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85년 정도다.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은 450년 혹은 350년이다. 월정사 숲은 애초 전나무 숲이 아니라 소나무 숲이었다. 후에 전나무 숲으로 바뀌었는데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님에게 바칠 공양에 소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졌다. 눈을 떨어 뜨려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산신령이 소나무를 꾸짖고 대신 전나무 아홉 그루가 절을 지키게 했다고 한다. 아홉 그루의 전나무가 소나무 숲과 자리를 바꾸어 지금은 1700여 그루의 울창한 전나무 숲이 된 것이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은 단원의 ‘금강사군첩’ 권1에서도 찾을 수 있다. 220년 전 관동 9개군의 명승지를 편력하며 그림을 그려 정조 임금에게 바쳐야 했던 단원 김홍도의 이 화첩에는 중대사와 상원사와 더불어 울창한 전나무 숲에 파묻힌 월정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렇게 봤을 때 월정사 전나무 숲의 역사는 600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늠름하게 서 있던 나무도 벼락 한방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진 모습에서 자연의 경외스러움에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중간쯤에는 2006년 벼락을 맞고 한 순간에 힘없이 쓰러진 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보면 ‘나무처럼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에 백번도 넘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은 나무의 희생을 이 길에서 배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이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의 무차별적인 벌채와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월정사 전나무 숲에는 수령 40~135년의 가슴 높이 직경 20㎝ 이상의 전나무가 977그루 자라고 있으며, 직경이 1m 이상인 대경목도 8그루가 자라고 있다. 가장 큰 전나무는 직경 175cm, 수고 31m이다. 이 땅 어느 곳에서도 이런 전나무 숲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경기 포천 광릉 수목원 전나무 숲과 전북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적광전의 아름다움을 찾아


월정사 전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 오대산(五臺山 1563.4m) 월정사(月精寺)가 있다. 태백산맥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차령산맥이 뻗어나가는 지점에 우뚝 솟은 봉우리마다  상원사, 월정사 외에 다섯 암자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이른바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성산으로 추앙되고 있다.


오대산은 산도 높고 골도 깊지만 흙길이 넉넉한 육산(肉山)이자 덕산(德山)이다. 후덕하고도 푸근한 느낌을 준다. 골산으로서 장쾌함을 뽐내는 설악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또 7개 절과 암자가 있는 불법(佛法)의 산이며, 울창한 숲을 이룬 거목의 산이다.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 12년) 중국의 오대산에서 우리나라 오대산에 만 명의 문수보살이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돌아온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지금의 월정사 터에 초암을 짓고 머무른 게 시발이 됐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 친견에 실패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자장율사가 상원사를 창건한 다음 전망과 위치가 좋은 다섯 대(臺)를 골라 암자를 지은 게 오대산이라는 이름의 배경이 됐다.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이 그것이다. 


수정암은 그저 너와집으로 고즈넉한 정취가 쓸쓸하다. 조선시대 한강의 시원이 수정암에서 가까운 서대 장령(長嶺) 아래 샘물인 우통수(于筒水)다. 지금은 시원을 태백시 대덕산과 함백산 사이의 금대봉(金臺峰 해발 1418m) 검룡소(儉龍沼)로 잡고 있지만 말이다. 


오대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남서쪽), 상왕봉(북서쪽), 두로봉(상왕봉보다 북서쪽), 동대산(동남쪽)) 등 다섯 봉우리가 두툼하게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월정사는 한국 전쟁 중 1.4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국군에 의해 전소됐다가 1964년 이후 탄허(呑虛 1913~1983), 만화, 현해 스님 등에 의해 중창됐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월정사 적광전 앞에 서 있는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다. 


월정사 적광전과 그 앞의 팔각구층석탑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꼽히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층층의 모서리마다 달려 있는 청동 풍경, 금동장식의 상륜부, 기단 위의 조각, 모서리의 휘어진 모양새 등이 무척 화려하다. 1970년과 1971년에 해체 복원되었으며 현재 국보 제48호로 지정돼 있다. 석탑 앞에 두 손을 모아 쥐고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석조보살좌상은 보물 제139호다. 


월정사 적광전은 남향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근대에 신축된 건물 중 으뜸으로 꼽힌다. 원래 이 자리에는 칠불보전이 있었으나 전소되었고 1969년 만화스님에 의해 중건됐다. 자재는 모두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를 사용했다. 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통례를 깨고 석굴암 불상의 형태를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그럼에도 적광전이라 부르는 까닭은 오대산이 화엄·문수도량이며 한엄, 탄허 선사가 주석(駐錫)하면서 불교 최고 경전인 화엄사상을 널리 퍼뜨렸는데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5대 적멸보궁의 상원사 … 문수보살, 청량선원의 성지


상원사 문수전과 5층석탑

상원사(上院寺)는 신라 성덕왕 4년에 오대산에서 수행하던 보천과 효명 두 왕자에 의해 창건됐다. 창건 당시에는 진여원(眞如院)으로 불렸으나 후에 상원사로 바뀌었다. 


상원사에는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전한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는 치료를 위해 방문한 상원사에서 두 차례의 이적을 경험하게 된다. 참배를 마치고 물이 맑은 계곡에서 목욕을 하던 세조는 마침 가까운 숲에서 놀고 있던 동자승을 발견하고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하며 “사람들에게 왕의 몸을 씻겨 주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일렀다. 동자승은 “알겠습니다. 임금께서도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하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로 신기하게도 세조의 피부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세조는 감격에 겨워 화공을 불러들여 기억을 더듬어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이 그림을 토대로 보살상을 조각하게 했다. 그 보살상이 상원사 법당 청량선원에 모셔진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 221호)이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할 때 옷을 벗어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가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듬해에는 세조가 예불을 드리기 위해 상원사 법당에 오르려 하자 고양이가 세조의 옷을 붙들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을 샅샅이 뒤지게 하니 법당 안에 자객이 숨어 있었다.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 준 고양이를 잡아 죽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사찰에 전답을 내려 치하하였다. 이를 묘전(고양이 밭)이라고 불렀다.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높이 167cm, 지름 91cm크기로 조성된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신라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 에밀레종, 봉덕사종)과 수원 용주사 범종(국보 제1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완전한 형태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 안동부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상원사 영산전(靈山殿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다는 데서 유래)은 오대산에서 가장 오래된 영산전이다. 영산전 안에는 석가 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이 봉안돼 있다. 영산전 앞마당에는 조성 시기가 확실하지 않은 투박한 석탑 한 기가 세워져 있다. 상원사 계곡에서 폐탑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영산전 옆에서 출토되었다고도 한다. 기단부와 탑신부의 마모도 심하긴 하지만 탑신부 옆면을 장식한 불상과 복련(覆蓮 아래를 향해 엎드린 연꽃) 조각으로 화려한 멋을 풍긴다. 


상원사가 유독 경건해 보이는 것은 상원사에 청량선원(淸凉禪院)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량선원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경허스님과 수얼, 운봉, 동산 스님이 수행했다. 1982년 이후에도 한암을 비롯해 탄허, 석주, 효봉 스님 등이  수행의 발길이 끊지 않았던 북방 제일 선원으로 명성을 날렸다. 오대산의 옛 이름이 청량산이어서 선원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  


한국전쟁 때 국군이 작전상의 이유로 오대산의 모든 절을 불태웠을 때에도 상원사는 문짝 밖에 타지 않았다. 30년 동안 상원사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참선에만 열중했던 한암(漢巖, 본명 方重遠, 1876~1951) 선사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덕이다. 선사는 고요히 앉은 자세로 입적하셨다. 


1983년 경제적인 이유로 닫혔던 선원은 2000년도에 접어들어 상원사 주지였던 퇴우 스님이 문수전 오른편에 150평 규모의 청량선원을 다시 건립하고 선객들을 맞이하면서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오대산 중대 사자암

상원사에서 약간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중대 사자암이 나온다. 오대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 중턱에 위치한 중대사자암은 문수보살이 타고 다녔다는 사자를 암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태종은 1401년(태종 1)에 상원사의 중건을 명하고 불상을 봉안하고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할 3칸의 집과 2칸의 목욕소를 만들었다 한다. 그해 겨울 태종이 직접 상원사 사자암에 왕림해 성대한 법요식과 낙성식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다시 중대사자암에서 계단과 오르막 흙길을 600m가량 오르면 마침내 상원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나온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이 봉안된 사찰을 말한다. 


상원사 적멸보궁

우리나라에는 자장율사(590~658)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진신사리와 정골이 봉안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정선 정암사,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 상원사 적멸보궁이다. 


상원사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정골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리 안치 장소는 불명확해서 뒷산 어딘가에 모셔져 있다는 설만이 전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 뒤편에 바위가 드러난 작은 언덕에 높이 50cm 정도 되는 세존진신탑묘를 세워 놓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깨달음의 옛길 ‘선재길’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

9.5km에 달하는 월정사와 상원사를 연결하는 옛길이 복원됐다. 이 길은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상원사로 올랐던 길이다. 1960년대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446번 지방국도가 생기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2013년 국립공원공단은 옛길을 복원하고 화엄경에 등장하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깨달음을 좆던 동자승 선재스님의 이름을 따서 ‘선재길’이라 명명했다. 선재동자는 53명의 현인을 만나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선재길은 곧 ‘지혜의 길’인 것이다. 고려말 나옹선사(1320~1376), 한암, 탄허 스님도 만행했던 오솔길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탐방객들이 선재스님이 되어 문수보살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의 길 걷는다. 


선재길은 여름이면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가 아름답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불탄다. 다만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여러 차례 건너야 하기에 장마철이나 폭우가 쏟아질 때에는 통제된다. 


길은 평탄해 느릿하게 걸어도 4시간이면 상원사에 도착하다. 다시 월정사로 돌아올 때에는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상원사 발 마지막 버스가 5시 20분에 출발하므로 만약에 여행 일정상 오후 늦게 도착했다면 먼저 버스를 타고 상원사에 갔다가 월정사로 느긋하게 돌아오는 것도 방법이다. 


선재길에는 진입로 부근이나 길이 좋지 않은 곳에 나무데크길이 설치돼 있을 뿐 인공조형물이 거의 없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숲 속의 오솔길이 있을 뿐이다. 오대천을 따라 소와 연못, 괴석들이 어우러지는 계곡과 작은 오솔길이 번갈아 나타나며 감탄을 자아낸다. 바닥은 모두 흙길이거나 울퉁불퉁 자갈길이다. 옛날 나무를 베어내고 화전을 일구며 살던 화전민이 살던 집터도 만난다. 


걷다 보면 어느새 처음 길을 시작했을 때의 잡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상원사에 도착해 있다. 선재길은 상원사에서 끝나지만 탐방길은 중대사자암과 적멸보궁으로 이어진다. 


선재길에서 나옹선사의 선시를 읇어보자. 법정 스님이 전파해 더욱 귀에 익숙한 선시다. 절로 참선이 될 것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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