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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시대 품질 인정받은 ‘몰도바 와인’
  • 이주현 와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1-03-01 16:28:30
  • 수정 2021-06-28 08: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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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부터 포도 경작한 와인 강국 … 세계 최대 와이너리까지 보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양조한 곳은 8000년전에 시작한 구소련국가연합(CIS)의 한 지역인 조지아(Georgia)로 알려져 있다. 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동남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둘러싸인 몰도바(Moldova)도 고고학 사료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양조 사업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위도 46~47도에 위치한 와인 산지는 질 좋은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하다. 온화한 대륙성 기후와 비옥한 토지가 갖춰진 천혜의 자연 환경 덕분에 양질의 와인 생산이 가능했다. 

중세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주요 수출품으로 삼았다. 이렇게 깊은 역사와 와인에 대한 강한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몰도바 와인이 빛을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몰도바는 안타깝게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많은 침략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다가, 1991년에야 가까스로 독립을 했다. 유구한 와인 역사를 지닌 몰도바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몰도바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피노 블랑, 뮈스카(muscat) 등 프랑스 품종도 생산되지만,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역시 몰도바의 전통 품종이다. 페테아스카 알바(Feteasca Alba), 페테아스카 네아그라(Feteasca Neagra), 라라 네아그라(Rară Neagră 또는 Băbească neagră) 등으로 만든 와인은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영국과 덴마크 왕실에도 납품되고 있을 정도이다. 

푸카리 와이너리는 1827년 프랑스와 독일 와인 생산자가 자본을 투자해 설립됐다.

몰도바의 대표 와인 산지인 푸카리(Purcari)에서 생산한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와인은 1847년 파리 국제박람회 금상을 받으며, 세계 시장에 몰도바 와인의 품질을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1인당 포도나무 그루수가 가장 많은 나라 … 와인 종사자가 전체 경제인구의 15% 차지

몰도바의 정식 명칭은 ‘몰도바공화국(Republic of Moldova)’이다. 국토 크기는 약 3만3700㎢로 남한의 약 1/3에 해당한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와 비슷하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국가의 인구는 약 400만명 정도인데 이 중 무려 30만명이다. 전체 경제인구의 15%가량이 와인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 포도원 면적은 11만2000ha로 몰도바 전체 면적의 4%, 전체 경작지의 7%를 차지한다.  

전체 땅 크기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작지만, 포도원 밀도 자체로만 따져 보면 유럽의 최고 상위권에 속한다. 우리가 시골길을 가다 보면 배추, 무밭이 수시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몰도바에서는 포도 농장을 그만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몰도바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실제로 몰도바의 전체 수출액 중 와인이 25%,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한다. 2014년 기준으로 몰도바는 전세계 12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대부분의 와인은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약 7000만병이 넘는 수출물량의 수출량의 95%는 러시아로 빠지는데 스탠더드 와인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을 받는다. 한국에서 몰도바 와인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몰도바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도 조지아와 함께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손꼽혔다.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영국 등의 서방 국가로도 원활하게 수출했다. 구소련 시절 수출품 다수에 러시아어 라벨을 붙이면서도 영어권 국가 수출용에는 일부러 영어 라벨을 붙였다.

와인을 사랑하는 나라, 국가가 지정한 National Wine Day

일찍부터 와인 문화가 꽃피운 국가라 그런지 몰도바는 세계에서 술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이 1인당 연간 10리터 이상 술을 마시며 높은 알코올 소비량을 보이지만, 몰도바는 연간 15리터 정도로 훨씬 많다. 그야말로 음주 강국 중 하나다.

매년 10월의 두 번째 일요일은 몰도바 정부가 지정한 ‘National Wine Day’라는 국경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품종에 관계없이 와인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든 기념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음껏 와인을 음미한다. 

몰도바 사람들에게 와인이 없는 축제는 팥 앙금이 없는 붕어빵과 같다. 모든 가정에 와인잔이 갖춰져 있는 것은 물론이며, 집집마다 자신의 와인 경작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포도를 오랫동안 경작해 온 민족답게 다진 고기 등을 포도나무 잎으로 감싼 요리인 ‘사르말레(sarmale)’를 즐겨 먹는다.

유럽에서 포도가 맛있기로 유명한 몰도바 … 천혜의 자연환경

몰도바는 평평한 초원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대부분 포도원인데  여름철이면 해바라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동유럽 끝 쪽에 위치한 몰도바는 흑해의 영향을 받아 겨울이 짧고 여름은 긴 기후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적절한 일조량까지 더해져 유럽에서 가장 농업 생산률이 높으며, 농축된 맛을 내는 포도로 유명하다.

몰도바는 대부분 비옥한 토양을 지니고 있는데, 대표 와인 산지인 푸카리 지역의 토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카리의 포도밭은 흑해에서 비교적 가까운 드네스트르강(Dniester River)의 서쪽 언덕에 위치해 있다. 

푸카리 토양은 ‘체르노젬(Chernozem)’이라고 불리는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르노젬은 농업에 최적화된 토양으로 부엽토 성분, 인, 인산, 암모니아 성분이 함유돼 있다. 포도 재배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한 토지 특성 덕분에 몰도바 와인의 향미가 더욱 깊다. 이런 천혜의 환경 덕분에 몰도바의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맛이 넉넉하고 향미가 진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특징을 보인다.

몰도바 와인 슬로건 … 황새가 물어다준 포도알, A Legend Alive

몰도바 와인 슬로건. 출처 몰도바 관광청

몰도바는 기원전 7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해왔다. 와인 양조는 기원전 3000년에 시작됐다. 2013년에 설립된 몰도바와인협회(National Office for Vine and Wine, NOVW)의 로고를 보면 포도송이 모양의 몰도바 지도를 황새가 둘러싸고 있다. 몰도바 사람들은 자국의 영토가 한 송이의 포도를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The Grape Country’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포도송이를 물고 있는 황새 또한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5세기 때, 몰도바 군대가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황새가 날아오더니 입에 포도송이를 물고 와서 병사들에게 떨어뜨려 주었다. 달콤한 포도를 먹은 병사들은 다시 힘을 내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런 전설에서 유래된 황새는 와인 강국 몰도바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최근 다시 부활하는 몰도바 와인 산업(A Legend Alive)을 상징한다고 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지정한 와이너리, 샤토 푸카리

몰도바 와인 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품이 ‘푸카리(Purcari)’이다. 지역이자 와이너리 이름인 푸카리는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Chisinau)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무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푸카리는 1827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몰도바 최초의 특별 와이너리로 지정하면서 그 긴 역사를 시작했다.

마치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푸카리는 18세기에 수도사들이 건설한 곳이다. 지금 건물은 2003년에 새로 첨단시설로 지었다. 원래는 와인을 생산하고 보관하던 수도원이 있던 자리였다. 푸카리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비옥한 토양 덕분에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12세기부터 명품 와인 산지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인들이 찾아와 수도원과 협력해 와인을 생산하기도 했다. 

유명한 일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서는 푸카리 와인을 이르러 “영국 왕실에서 사랑하는 몰도바공화국의 숨은 명주”라고 표현했다. 이 숨은 명주가 바로 ‘네그루 드 푸카리(Negru de Purcari)’ 와인이다. 네그루 드 푸카리는 국제품종, 코카서스품종, 토착품종을 블렌딩하여 프렌치 오크통에서 18개월 동안 숙성시킨 와인이다. 그 뛰어난 품질은 콧대 높은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마저 인정했다. 1827년 파리 엑스포에서 블라인드 테스팅을 한 결과,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 푸카리 와인을 보르도 와인으로 착각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이후 네그루 드 푸카리는 보르도, 부르고뉴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와인대회에서 금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샤토 푸카리는 몰도바가 소비에트 연방에 흡수되면서 잠시 명맥이 끊기고 만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후, 2003년 현재의 샤토 푸카리 건물이 새로 건설되고 네그루 드 푸카리도 생산도 재개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에도 이 와인이쓰였다. 현재는 푸틴 대통령까지 즐겨 마셔 ‘왕의 포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특히 네그루 드 푸카리 1990년산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좋아해 자주 주문을 받는다. 덕분에 몰도바 와인은 잘 몰라도 네그루 드 푸카리를 아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다. 

기네스북 등재 세계 최장(最長) 와이너리 ‘밀레스티 미치’ 

총 70km에 달하는 크리로바 와이너리

몰도바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코드루(Codru), 스테판보다(Stefan Voda), 발룰루이트라이안(Valul lui Traian) 등 세 곳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코드루는 사계절 내내 대체로 온화한 기후가 유지된다. 대표적인 품종으로 페테아스카 알바, 머스캣 오토넬(Muscat Ottonel),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를 꼽을 수 있다. 이 품종들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은 최근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코드루는 몰도바의 수도인 키시너우를 아우른다. 키시너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와이너리 두 군데가 있다. 바로 ‘크리로바(Cricova)’와 ‘밀레스티 미치(Milestii Mici)’다. 두 곳 모두 석회암을 채굴하던 광산을 개조해 만든 와이너리이다.

크리로바는 와이너리 터널의 총 길이가 70km이며, 밀레스티 미치는 무려 200km에 달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와이너리인 밀레스티 미치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매년 이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는 달리기 대회가 열릴 정도로 넓다고 한다. 전부 둘러보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니 하나의 지하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365일 내내 12~14도, 습도 97~98%를 유지하며 와인을 숙성 및 보관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스테판보다 지역은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한 코드루와 달리 레드와인이 대표 상품이다. 전통 품종인 라라 네그라, 페테아스카 네그라, 사페라비(Saperavi)를 비롯해 메를로, 피노누아, 피노그리, 샤르도네 품종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발룰루이트라이안은 생산 품목의 60%를 레드와인이 차지하지만, ‘파스토랄(Pastoral)’이라는 달콤한 강화와인 역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높은 해발 고도로 인해 당도와 산도가 적절한 밸런스를 이루는 게 특징이다.

몰도바 와이너리 투어의 간판, 카스텔 미미(Castel MiMi)

카스텔 미미 와이너리

몰도바 와이너리 중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곳이 바로 ‘카스텔 미미(Castel MiMi)’이다. 이곳은 몰도바 최초의 샤또식 와이너리로, 수도인 키시너우에서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893년 콘스탄틴 미미 총독이 와이너리 설립 사업을 시작하면서 1901년에 카스텔 미미 건물을 완공한다. 당시 그가 생산한 와인은 러시아 제국 전체에 판매됐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 군대에 납품될 정도였다.

크리코바, 밀레스티 미치가 아주 긴 셀러로 장관을 연출한다면, 카스텔 미미는 역사적인 와인 저장 시설과 함께 화려하고 웅장한 연회장, 수영장, 게스트 하우스 등을 자랑한다. 와인 기념 공식 행사의 주관기관으로서 오늘날 몰도바 와인 투어리즘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구대륙, 신대륙 와인을 넘어 떠오르는 와인 샛별, 동유럽 ‘제3세계 와인’

와인 주요 시장을 떠올리면 와인 종주국인 구대륙, 그 뒤를 바짝 쫒아가는 신대륙 와인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소한 이름의 국가들이 여기저기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명 ‘변방 와인’이다. 몰도바, 조지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생산된 제3세계 와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

몰도바는 최근 러시아 시장에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러시아가 소비하는 와인의 50%가 몰도바 산이다. 몰도바는 2018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3억3000만유로를 포도나무 재배지 확장과 와인 생산시설 향상에 투자했다. 한 번 맛보면 품질에 반하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반하는 몰도바 와인이 동유럽 와인의 대표주자로 비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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