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먹어도 구수하고 담백한 맛에 물리지 않는 된장은 한국인에게 밥·김치와 더불어 식탁의 삼총사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각종 연구 등을 통해 다양한 영양성분의 보고(寶庫)로, 항암효과가 있는 웰빙식품으로 알려지면서 한층 각광받고 있다.
한 때 실속도 없으면서 허영심에 사로잡혀 비싼 명품 등 트렌드를 쫒아가는 여성들을 ‘된장녀’라고 비하했다. 이로 인해 된장은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했지만 된장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소울 푸드’이자 스테디셀러라는데 이견이 없다.
오랜 세월 민족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건강까지 지켜준 된장을 담그는 과학적인 원리와 된장의 풍부한 영양성분, 지역별로 다양한 된장의 종류, 된장을 이용한 음식들에 대해 알아본다. 이경자 홍주발효식품 대표가 도움말을 줬다.
장 담그기·발효의 과학과 정성·손맛이 어우러진 맛의 결정체
된장은 콩을 삶아 띄운 메주와 소금물을 옹기 독에 넣어 장기간 숙성시킨 후 우러난 간장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를 계속 숙성시켜 만든, 예로부터 전해진 우리나라의 조미식품(調味食品)이다.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데 기본이 되는 발효식품이다.
쌀과 보리 등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 우리 전통식단에서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을 비롯해 필수아미노산·지방산·유기산·미네랄·비타민 등을 보충해주는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특히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풍부하다. 리신은 곡류에는 거의 없어 균형잡힌 식생활을 위해 된장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된장이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로 자리잡은 데는 장 담그기와 발효과정에서의 과학과 손맛이 어우러진 맛의 결정체라는 사실이 한 몫하고 있다.
된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먼저 신선한 콩을 센 불에 40분 쯤 삶고 다시 약한 불로 4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콩이 누렇게 잘 뜨고 잘 무른다. 당연히 화력 조절은 필수다. 불이 너무 세면 콩이 타 장에서 탄내가 나고 약하면 덜 삶아진다.
콩이 잘 익었으면 실내온도 5∼10도, 습도 30∼40%의 조건에서 30∼40일 정도 짚이 깔린 나무 건조대 등에서 1차로 말린다. 메주의 겉은 단단하지만 속을 말랑말랑한 상태가 가장 좋다. 단단한 부분이 2cm 정도가 되면 이상적이다.
메주가 굳으면 실온 25도, 습도 60%의 조건에서 2∼3일마다 위치를 바꿔가며 30∼40일 정도 말린다. 이 때 메주의 발효가 시작되는데 15~20일 정도 지나면 하얀 곰팡이가 핀다. 검은색 또는 푸른색이 도는 곰팡이는 좋지 않다. 메주가 붉은빛 또는 황색을 띠면 제대로 뜬 것이다.
메주가 잘 떴으면 물로 깨끗이 씻어 소독한 장독에 넣고 소금과 물을 넣는다. 계란을 소금물에 띄웠을 때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떠오르면 알맞은 농도다. 이 상태에서 50∼60일 정도 지나면 된장을 푼다. 된장을 퍼내고 나면 간장이 남게 되는데 된장만 따로 옹기에 담아 숙성을 시킨다. 날씨가 맑으면 장독 뚜껑을 열어 햇빛을 직접 쐬게 하고 장마가 지난 후엔 뚜껑을 열어 습기가 빠져나가게 한다. 6개월 정도 숙성과정이 지나면 제대로 맛을 내는 된장이 완성된다.
이러한 장 담그기와 발효과정은 말 그대로 과학적이다. 하나하나 과정마다 정성스레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 민족 대표 먹거리인 된장이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을 낼 수밖에 없고 손쉽게 만드는 일본의 미소된장이 우리나라 된장의 깊은 맛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이유다.
신라 신문왕 혼인 예물로 준비, 고려시대 굶주린 백성 구휼식품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장을 잘 담그는 민족으로 정평이 났다. 중국 진나라 때 쓰여진 역사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에서 장양(醬釀)을 잘한다’고 기록돼 있다. 장양은 장과 술빚기 등을 말하는 것으로 고구려에서는 장 담그기를 잘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다. 신라 신문왕이 혼인할 때 납채품(納采品) 가운데 ‘장시(醬豉)’가 있었다. 장시는 된장에 해당하며 필수적인 부식이자, 의례용 물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049년 개성에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휼하는 데 된장을 배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된장이 계층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먹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된장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폭넓게 쓰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에 따르면 된장은 하사품·구휼품·야인(野人)들의 요구품 이면서 지급품·귀화인과 유민(流民)의 정착 지원물품·군사들의 기본 부식 등으로 널리 사용됐다. 이를 통해 된장이 당시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널리 먹은 부식임을 알 수 있다.
또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醬)은 ‘장수 장(將)’이니 모든 맛의 으뜸”이며 여러 음식에 간을 쳐서 맛을 내는 것이므로 음식 중에 제일이고 그래서 때를 잃지 않고 담가야 하며 장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고 고기반찬이 없어도 여러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걱정이 없다“고 기록돼 예부터 장을 잘 담그는 일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단백질·칼슘·비타민 등 영양의 보고(寶庫), 항암·고혈압 예방에도 도움
이처럼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한 된장은 예로부터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손꼽혔다. 한의학 고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된장이 두통한열(頭痛寒熱)을 다스리고 땀을 내게 하며 메주는 식체(食滯)를 지우고 천식(喘息)에도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된장이 숙성되면 맛과 풍미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콩의 주요 성분이 잘 흡수된다. 콩에는 단백질이 38%, 리놀산·리놀렌산 등 불포화지방산 등 지방이 18% 함유돼 영양상으로 우수하다. 이 콩을 이용해 만든 된장은 영양이 풍부하다. 100g당 열량이 128cal이고 단백질 12g, 지방 4.1g, 탄수화물 14.5g, 회분 17.9g, 칼슘 122㎎, 인 141㎎, 철분 5.1㎎ 등이 함유돼 있다. 비타민 B1과 B2도 0.04㎎, 0.2㎎씩 함유돼 있다.
이와 같이 영양이 풍부한 된장은 영양학적 가치 외에도 항비만·고혈압 예방·항암·항산화·항혈전·간기능 강화·치매예방 등 생리활성이 알려져 있다. 콩에 포함된 생리활성 물질들은 된장에서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생체 내 흡수율이 증가된다.
된장의 생리활성 유효물질로는 콩에서 유래한 사포닌(saponin)·피틴산(phyticacid)·렉틴(lectin)·올리고당(oligosaccharide)·이소플라본(isoflavone) 외에 발효를 통해 생성된 펩타이드 등이 있다. 된장에 의한 발암 억제와 암세포 전이 억제 활성은 된장의 숙성 기간이 증가할수록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어 전통 된장의 발효 숙성 기간이 된장의 생리활성 강화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확인됐다.
청국장·막장·담북장 … 지역마다 맛 다르고 색 다른 된장 다양
된장은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역사만큼이나 집집마다, 지역마다 장맛이 특색을 갖는다. 청국장(전국장)·막장·담북장·즙장·토장·빰장·빠개장·가루장·보리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장은 지역에 따라 독특한 제법을 형성하고 있다.
청국장은 전국장이라고도 한다. 단기 숙성으로 단기간에 먹을 수 있게 만든다. 보통 콩을 삶아 60도 정도로 온도를 낮춘 후 나무상자나 소쿠리에 담아 볏짚을 덮고 따뜻한 곳에 덮어두어 45도를 유지시키면서 2∼3일간 띄워 점질이 생기도록 한다. 잘 뜬 콩이 식기 전 소금·마늘·고춧가루·파를 넣고 찧어서 단지에 담는다.
막장은 메주를 가루로 빻아 소금물로 질척하게 말아 익히는 장으로 담근 지 15일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는 속성 장이다. 메주를 빻아 가루로 만들어 담갔다고 해서 지역에 따라 ‘빠개장’ 또는 ‘가루장’이라고도 부른다. 처음부터 메줏가루로 된장을 만들기 때문에 간장을 빼고 남은 건더기로 만든 재래식 된장보다 맛이 좋고 영양가도 높은 편으로 주로 쌈장이나 양념으로 쓰인다.
콩으로만 메주를 쑨 재래식 된장과 달리 소금을 조금 넣고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는 메주에 밀, 쌀, 보리 등의 전분질이 들어가면서 당분이 분해되어 발효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른 된장에 비해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중부 이북에서는 거의 담그지 않고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특히 잘 담근다. 충청도에서는 보리밥에 메줏가루·고춧가루를 섞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담그고, 경상도에서는 콩과 멥쌀을 섞어 만든 메주로 담근다.
담북장은 새로 담근 햇장이 나오기 전 만들어 먹는 장으로 메주를 곱게 빻아서 소금물에 버무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을 섞어 1주일 정도 삭혀 먹는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 따뜻한 물에 소금으로 싱겁게 간하여 숙성시키거나 무나 배추와 같은 채소를 넣어 숙성시키기도 한다. 담북장과 청국장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충청도에서는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를 두부의 순물에 풀고, 황해도에서는 보리밥을 죽처럼 쑤어서 메줏가루·고춧가루·소금을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즙장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많이 담가 먹는 장으로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만드는 속성 장이다. ‘집장’이라고도 한다. 막장과 비슷하지만 수분이 막장보다 많다. 즙장은 채소를 많이 넣어서 만들기 때문에 ‘채장’, 숙성된 후에 색이 검게 변해 ‘검정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통밀이나 보리에 콩을 섞어 만든 즙장용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 무, 오이, 가지, 배추, 고추 등의 채소 썬 것과 함께 소금물에 넣고 걸쭉하게 담아 햇볕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만든다.밀, 보리와 같은 전분질이 들어 있어 발효가 빠르고 채소를 많이 넣어 만들기 때문에 다른 장에 비해 약간의 신맛과 감칠맛이 난다. 숙성 시간이 오래될수록 신맛이 강해져 오래 보관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조금씩 만들어 먹는다.
토장은 막된장에 메줏가루와 소금물을 섞거나, 막된장을 넣지 않고 메줏가루에 소금물만을 넣고 담가 2~3개월 숙성시킨 된장이다. 일반적으로 간장을 뜨지 않은 된장을 말한다. 빰장은 된장만을 목적으로 메주를 굵직하게 빻아서 소금물을 끓여서 식힌 물로 담근 장으로 주로 경상도에서 담근다.
빠개장은 메줏가루에 콩 삶은 물, 고춧가루 및 소금을 섞어서 담근 장으로 충청도에서 많이 담근다. 가루장은 보리쌀을 갈아 찐 것에 메줏가루를 버무려 끓여 식힌 소금물을 부어 간을 맞춘 장으로 강원도에서 주로 담근다. 보리장은 보리쌀을 삶아 띄운 다음 가루로 빻은 것과 콩메줏가루를 반반씩 섞어서 담근 장으로 제주도에서 담근다.
구수한 된장찌개는 기본, 나물무침·양념된장 등 된장요리 다양
오랜 세월 우리네 식탁을 지켜온 된장은 그 역사만큼이나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구수한 풍미를 뽐내는 된장찌개를 들 수 있다. 잘 우러난 멸치 육수에 호박과 두부·고추·양파·감자 등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맛과 영양가를 고스란히 살린 식탁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다. 차돌박이 또는 해산물 등을 넣고 끓인 된장찌개의 맛도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맛깔스럽다.
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시금치나물을 무칠 때 된장을 사용해도 한층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때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넣으면 된장과 향이 더욱 잘 어울린다. 이밖에 삶은 배추·취나물·호박나물 등을 만들 때도 된장을 조미료로 이용하면 아주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된장에 다진 파와 청주, 통깨, 다진 마늘, 물엿 또는 설탕 등을 넣은 후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된장을 만들어 놓아도 여러가지 요리에 응용이 가능하다. 삼치 또는 고등어처럼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을 구울 때 소금 대신 양념된장을 발라 구우면 비린내도 잡히고 된장 맛이 배어 생선구이가 한결 맛있다.
최근에는 된장을 푼 된장칼국수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메뉴 중 하나다. 바지락 또는 조개를 삶은 국물에 된장을 풀어 육수를 만든 후 양파와 고추 등을 썰어 넣고 끓는 물에 삶은 칼국수를 건져 넣으면 맛과 영양 만점인 된장칼국수가 된다. 기호에 따라 다진 마늘과 후춧가루를 넣어 먹으면 그 맛이 더욱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