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품절 대란에 환자들 볼멘소리, 의사‧약사도 난감 … 입항 하역에 코로나 이전보다 많은 시간 소요
정치권 보건당국서 원료의약품 수입선 다변화 및 원료 국산화 주문 … 업계 ‘시큰둥’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여파로 본의 아니게 의약품 품절 이슈가 지속되고 있다. 상당수 원료가 인도나 중국에서 들어와 현지에서 생산 자체가 미뤄지는 사례가 많고, 선박 수급에도 지장이 생겨 도착 일정이 조금씩 미뤄지고 있는 까닭이다.
업계에 따르면 완제품 또는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사노피아벤티스의 항혈전제 ‘플라빅스75mg’, 바이엘코리아의 혈액응고 억제제 ‘자렐토정’, 한독이 사노피에서 수입하는 불임증 진단약 ‘렐레팍트 LH-RH’, GC녹십자가 판매 중인 LG화학 ‘유박스비플프리필드주(1.0ml)’, 코오롱제약의 접촉성 피부염 두드러기 ‘토피덤로션 0.05%’, 새한제약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아크로날CR정 30T’, 오스틴제약의 순환개선제 ‘카리나제정’ 등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가장 보편적인 소염진통제 ‘나프록센’와 심근경색을 경험했거나 고위험에 노출된 환자들이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는 ‘플라빅스정’ 등도 원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있다. 이에 약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볼멘소리를 내고 이에 응대하는 의사나 약사들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 6월에도 선적에 문제가 생겨 건일제약 고혈압약 ‘아미로정(100T, 1000T)’, 하원제약 부정맥치료제 ‘프로페논정 150mg’ 의약품 품절 사태가 일어났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이유를 두고 “원료 수급이 안 돼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의약품 원료는 벌크 상태로 무거운 중량 때문에 선박으로 들여온다. 여러 국가를 경유하다 보면 입항이나 출항을 하게 되는데 입항 시 코로나19 검사로 예정보다 며칠씩 지연되는 상황이 생긴다.
이 때문에 국내에 입항해도 물건을 내리기까지 자그마치 7~15일의 시간이 걸린다. 배가 도착하면 선원들 중 확진자가 있는지 검사를 하는데 3~4일 정도 걸리고 검사 후 선원들이 코로나19 음성으로 확인돼야 이상 없이 물건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하역 작업에 2~3일이 소요되는 것은 기본이다. 화물선은 여러 항구를 순차적으로 들르기 때문에 매번 이런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도 개선 필요성 대두 … 식약처 “관리체계 방안 강구”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도’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원료의약품의 자급도는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연도별로 살펴 보면 2014년 31.8%, 2015년 24.5%, 2016년 27.6%, 2017년 35.5%, 2018년 26.4%다. 원료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중간체(intermediates)와 API(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s, 활성의약품원료)는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인도 등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2018년 기준으로 33%를 중국에서, 9.5%를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길어지면 원료의 약 74%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공급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원료의약품 공급처의 다양화나 필수 원료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유도하는 방향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향후 감염병 등의 사태가 재차 발생하면 원료의약품 수급 문제로 완제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어 원활한 공급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의약품 공급에 대한 현안이 다뤄졌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비상사태 시 국가 간 교역이 중단되면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생겨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 펜데믹이 증명했다며 보건당국에 대비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식약처는 원료의약품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국산 원료의약품 생산 기반 확대 및 사용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관련 기관‧국회서 ‘원료의약품 자급화’ 한 목소리에도 제약업계 시큰둥
원료의약품 국산 자급화를 위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에서는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원료 국산화를 통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 이득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만 해외 원료 수출이 활발한 국내 기업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수요만 표적해 원료 의약품을 생산하기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선진국에 준한다고 하지만 의약품으로 따지면 전세계 의약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국내 의약품 시장규모는 23조원(2018년 기준)으로 세계 12위, 1.6%를 차지한다. 인도나 중국은 규모로 밀어붙여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은 그렇지 못해 이들 국가와 가격 차이가 커 원료 수출국으로 자리잡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료를 생산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라며 “약가는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고 규제는 늘어가는 상황에서 원료까지 생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