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피하려 임의로 복용 중단하면 세균은 내성 획득 쉬워져 … 오래 복용하면 ‘소아비만 유발’
인류의 역사는 항생제 발견으로 수명연장의 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생제 발견 이전 인간 평균수명은 40~50년 정도였다. 암이라는 질병이 생기기도 전에 감염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항생제는 세균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약으로 세균성 감염질환에 사용된다. 심한 상처·화상·화농성 염증·호흡기감염증·수술후 감염 등의 예방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한국은 유독 항생제를 사랑하는 국가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항생제 사용률이 높아 부작용이나 내성 발생에 취약하다. 항생제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과잉 처방은 여전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항생제 처방량은 26.5일일상용량(defined daily dose, DDD)로 OECD 31개국 평균 18.3(DDD)을 크게 웃돌았다. DDD는 국민 1000명 중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수다. 국민 1000명중 매일 26.5명이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항생제 오남용이 널리 인식되면서 극단적으로 이를 피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등 항생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늘어났다. 항생제 내성을 피하려면 무조건 먹지 않는 게 좋다고 믿는 사람도 꽤 있다. 세간에 알려진 항생제에 대한 오해에 대해 알아본다.
1. 항생제를 먹어야 감기가 빨리 낫는다?
항생제는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약으로 세균성 감염질환에 사용된다. 호흡기 감염증, 심한 상처나 화상, 화농성 염증, 수술 후 감염 예방 등에 사용된다.
한국은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편이다. 2019년 급성상기도감염(감기)에 대한 국내 항생제 처방률은 38.3%에 이른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상기도 감염이다. 항생제 치료는 세균질환에 국한되므로 바이러스에 의한 대부분의 감기에는 항생제를 투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감기로 인해 인체조직의 변성 즉, 부어오르거나 점막에서 염증물질· 가래 등의 분비가 증가한다면 2차적인 박테리아 감염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감기로 2차적인 감염이 초래되면 필요에 따라 항생제를 투여할 수 있다. 세균성 중이염이나 세균성 인두염에 항생제를 쓰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감염을 조기에 치료하면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에 따라 항생제 투여 시기와 용량에 다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감기에 통상적으로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은 부작용과 내성을 유발한다. 항생제는 흔히 설사를 유발한다. 특히 소아 연령이 낮을수록 설사 빈도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뿐만 아니라 장내 유익균까지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유산균을 함께 처방하기도 한다. 유산균은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항생제 복용 후 1~2시간 뒤에 섭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설사 증상이 심하면 다른 항생제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피부발진·가려움증 등 알레르기반응도 항생제의 흔한 부작용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2. 증상이 호전되면 처방된 항생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
항생제 복용을 꺼리는 환자 일부는 내성을 걱정해 최대한 짧게 복용하려고 한다. 증상이 조금 호전되면 처방받은 약 중에서 항생제를 빼고 복용하기도 한다. 덜 복용할수록 항생제 내성에 적게 노출된다고 오해해서다. 하지만 약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걸러 먹으면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항생제 내성을 유발할 수 있다. 항생제를 처방받으면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용법, 용량, 기간을 지켜 복용해야 한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항생제의 용량과 치료 기간이 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살아남은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기 쉬워진다.
이밖에 증상이 같거나 비슷하다고 해서 형제나 자매가 처방 받은 항생제를 복용한다거나 이전에 쓰던 항생제를 재사용하는 것도 위험하다.
3. 항생제를 많이 복용해서 내성이 생긴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항생제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체 방어능력이다. 세균은 자신에 독이 되는 물질(항생제)를 만나면 살아남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자신을 변형시키거나 자체 방어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균끼리 접합(conjugation)을 통해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질 DNA 조각인 플라스미드(Plasmid)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항생제 내성을 형성하고 강화한다. 한번 내성이 생기면 다음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항생제를 만나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생기므로 항생제 효과가 빛을 잃게 된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는 주된 요인은 감염을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는데도 치료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내성을 가진 균이 증식하면 과거엔 잘 들었던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에만 투여하도록 권장하는 이유다. 이를 잘못 받아들여 항생제를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고 믿는 것 역시 오해다.
4. 항생제 복용하면 뚱뚱해진다?
최근 항생제 투여가 소아비만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상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2008~2012년 영유아건강검진을 받은 3만1733명을 대상으로 생후 24개월 이내 항생제 투여가 소아비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 14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투여한 항생제 종류가 많을수록, 투여한 기간이 길수록 비만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를 5가지 계열 이상 사용하면 1가지만 투여했을 때보다 비만 가능성이 약 42% 높았다. 180일 이상 항생제를 사용한 경우 30일 이내로 사용했을 때보다 비만 위험은 40% 높았다.
최초 항생제 투여 시기도 중요했다. 생후 6개월 이내 처음 항생제를 처음 맞으면 생후 18~24개월에 맞은 경우보다 비만 위험이 33% 높았다.
연구팀은 장에 존재하는 장내미생물균총이 항생제로 손상을 입어 비만을 유도한다고 추정했다. 짧은사슬지방산을 만들고 지방연소를 촉진하는 장내균이 상대적으로 먆이 소실되면 소아비만이 유도된다는 가설이다. 박상민 교수는 “항생제 사용에 따른 득실을 고려해 신중하게 처방하고, 무분별한 처방은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 우유에는 항생제가 들어 있어서 몸에 해롭다?
우유 속에는 항생제 성분이 들어있다. 젖소에서 대장균증(설사, 패혈증, E. coli), 마이코플라즈마증(Mycoplasma bovis), 살모넬라증(Salmonella typhimurium), 파스튜렐라성 폐렴(Pasteurella multocida, Pasteurella haemolytica) 발생을 막기 위해 투여하는 항생제인 엔로플록사신(enrofloxacin) 제제를 투여하면 소의 체내에서 대사 과정을 거쳐 우유에서는 씨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이란 성분으로 검출된다. 그러나 인체에 해로울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우유에서 기준치를 넘는 항생제가 검출됐다는 보도에 대해 집유 단계에서 항생제 검사를 실시해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전량 폐기하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항생제 잔류 허용 기준을 도입해 수치를 관리하고 있다. 검사 과정에서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 전량 폐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