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라미니다제 억제제, 증상 발현 48시간 이내 투여해야 … 신약 ‘조플루자’, 1회 경구투여로 복약편의성 높여
매년 가을은 독감(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증)의 계절이지만 올해는 독감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뜨겁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와 독감 유행이 겹치는 ‘트윈데믹’ 위험과 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고 등으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이후 독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진 상황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influenza)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호흡기질환이다. 갑작스러운 고열과 더불어 전신 근육통, 쇠약감 등 전신증상이 심한 게 특징으로 기침, 인후통, 가래 등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다. 전염성이 강하고 호흡기 합병증이나 기저 심폐질환을 악화시켜 국내에서 매년 약 2000명의 독감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항바이러스제의 일종인 ‘독감약’으로 치료하게 된다.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자나미비르(zanamivir), 페라미비르(Peramivir), 발록사비르(Baloxavir) 등이 대표적이며 경구제, 주사제, 흡입제 등 다양한 제형이 있다.
먹는 약 ‘오셀타미비르’, H1N1 치료했던 ‘타미플루’
오셀타미비르는 중국 약초인 팔각회향(八角茴香)에서 시킴산(shikimic acid)이라는 물질을 여러 단계에 걸쳐 합성한 것이다. 이 성분은 인플루엔자의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를 억제해 체내에 침입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증식한 다음 세포 표면으로 뚫고 나와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뉴라미니다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입자 외부에 위치한 거대한 당단백질이다. 바이러스 복제과정에서 복제를 마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입자를 세포로부터 방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뉴라미니다제가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과 시알릭산 잔기(sialic acid residue)의 결합을 끊어주면서 인플루엔자가 숙주세포를 떠나 주변세포를 감염시키도록 돕는다. 오셀타미비르는 시알릭산과 유사한 구조를 가져 뉴라미니다제의 기능을 저해한다.
오셀타미비르는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 신종플루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감의 일종인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가 돼지독감 바이러스의 일부 유전자를 받아 변이를 일으켜 생긴 새로운 바이러스(H1N1)에 의한 감염증을 말한다. 오셀타미비르라는 성분명보다 한국로슈의 ‘타미플루캡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미약품의 ‘한미플루캡슐’도 같은 성분의 치료제다.
오셀타미비르는 캡슐제와 건조시럽제가 있으며 생후 2주 이상의 소아 및 성인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및 B형 감염증의 치료와 예방에 사용한다. 감염 초기 증상이 발현되고 48시간 이내에 투여를 시작해야 하며 1일 2회 5일간 투여한다. 예방요법으로는 1일 1회 10일간 투여한다.
이 성분은 부작용으로 환청, 환각, 공격성, 편집증, 짜증, 우울, 의식 저하 등이 드물게 나타나며 심한 경우 자살 시도까지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어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빅데이터 센터 교수와 허경민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타미플루 투약 후 30일 이내 신경정신과적 부작용(Neuropsychiatric adverse events)이 발생할 가능성은 타미플루 처방받은 군이 0.86%로 처방받지 않은 군은 1.16%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이나 자살 시도와 관련된 부작용은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군에서는 10만명당 4명, 타미플루를 처방받지 않은 군은 10만명 당 7명 수준으로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군이 더 적게 나타났다.
정재훈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에 보고됐던 타미플루로 인한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자살 등 부작용의 발생 근거가 미약함을 의미한다”면서도 “청소년기 인플루엔자 환자에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며 반드시 주의 깊게 투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흡입하는 약 ‘자나미비르’, 알레르기반응 나타날 수 있어
자나미비르도 뉴라미니다아제 기능을 억제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다. 7세 이상 소아 및 성인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및 B형 감염증을 예방·치료한다. 이 성분 역시 감염의 초기 증상 발현 48시간 이내에 투여를 시작해야 한다. 국내 유통되는 제품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리렌자로타디스크’(성분명 자나미비르)가 있다.
자나미비르는 약물 흡입기인 디스크할러를 이용해 입으로 약물을 빨아들여 호흡기에 침투시킨다. 1일 2회 매회 2번씩 흡입해 5일간 투여해 치료한다. 예방요법으로는 1일 1회 매회 2번씩 흡입해 10일간 투여한다. 만성 호흡기질환자는 흡입용 기관지확장제를 먼저 사용한 뒤에 자나미비를 투여하는 게 원칙이다.
투여 후 구인두 부종, 심한 피부발진 등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이밖에 일부 환자에서 발작, 섬망, 환각, 비정상적 행동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으므로 신경정신계 부작용이 나타나면 바로 병원에 알려야 한다.
주사제 ‘페라미비르’, 예방 목적으로 투여하지 않아
페라미비르도 뉴라미니다제 억제제에 속한다. 2세 이상 소아 및 성인의 인플루엔자 A 및 B 바이러스 감염증을 치료하며 감염 초기 증상이 발현되고 48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방목적 투여에 대한 유효성 및 안전성은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녹십자의 ‘페라미플루주’(성분명 페라미비르)는 이 회사가 2006년 미국 바이오크리스트로부터 도입한 제품이다.
페라미비르는 정맥주사로 15분 이상에 걸쳐 1회 투여한다. 성인에게는 300mg를 투여하며 합병증 위험이 있는 환자에게는 최대 600mg까지 증량할 수 있다. 2세 이상 소아에게는 10mg/kg을 투여한다.
페라미비르는 신속한 고열 해소 효과를 갖고 있다. 독감으로 인한 아이들의 고열을 빨리 내리고 싶어하는 부모를 겨냥해 주사를 권유하는 의사가 많다. 하지만 경구약이 있는 데도 굳이 아이들이 두려워하고 자칫 주사부위 통증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주사제를 놔주는 것은 과잉진료, 상업적 진료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1회 경구투여하는 신약 ‘발록사비르’
그동안 뉴라미니다아제 억제제 계열이 전부였던 국내 인플루엔자 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기전의 신약이 등장했다. 한국로슈의 ‘조플루자정’(성분명 발록사비르 마르복실, baloxavir marboxil)이다. 타미플루 이후 20년 만이다.
기존 뉴라미니다아제 억제제가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이었다면 조플루자는 이보다 앞선 단계에서 유전자 복제 자체를 막는 기전으로 복제 초기단계부터 작용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복제에 필수적인 중합효소 산성 엔도뉴클레아제(polymerase acidic endonuclease)를 억제해 바이러스의 복제 초기 단계부터 진행을 막고, 바이러스 증식을 미연에 방지한다.
합병증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CAPSTONE-1 연구에서 전체 이상반응 발생률은 조플루자 투여군이 20.7%로 위약(24.6%)과 타미플루르 투여군(24.8%) 대비 가장 낮았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CAPSTONE-2 연구에서도 조플루자를 투여한 고위험군 환자군의 증상 완화까지 소요시간 중간값은 73.2시간(약 3일)으로, 위약 투여군(102.3시간) 대비 약 29시간 단축됐다. 또 조플루자는 48시간(약 2일)만에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환자의 비율을 절반까지 줄여, 위약(96시간)과 오셀타미비르(96시간) 대비 약 50%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
단 1회 경구 투여로 복약순응도를 높인 것도 조플루자의 장점이다. 타미플루는 성인 기준 1일 2회씩 총 5일을 복용해야 하는 반면 조플루자는 단 1회만 복용하면 끝이다. 먹는 약으로 개발돼 주사제, 흡입제 타입의 기존 치료제들에 비하면 복약 편의성이 상당히 개선됐다.
조플루자는 ‘성인 및 만 12세 이상 청소년의 인플루엔자 A형 또는 B형 바이러스 감염증’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대상이 12세 이상으로 한정된 것은 12세 이하에서도 조플루자 투여를 허가한 일본에서 소아 내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가 조플루자 사용 환자에서 내성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으며 일본소아과학회도 조플루자의 사용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플루자의 복용법은 40~80kg이면 40mg 1회, 80kg 이상인 경우 80mg를 1회 투여한다. 철, 아연, 셀레늄, 칼슘, 마그네슘 등을 함유한 경구 보조제와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감소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