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인공호흡기 의료기기가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가 단기간에 개발되기 어렵다는 전망에 바이러스로 인한 폐기능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공호흡기 수요량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폭증한 까닭이다.
코로나19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국제 통계 사이트 ‘코로나 나우’에 따르면 전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6일 현재 3573만1425명, 사망자는 105명1167명으로 집계됐다. 국내는 열흘 넘게 100명대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다가 현재는 두자리로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전세계적으로 의료용품과 의료기기가 ‘부족 사태’를 맞이했고, 그중에서도 감염자의 폐 손상을 예방하는 인공호흡기는 수요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잘나가는 인공호흡기 … 국내 유일 개발‧제조사 멕아이씨에스 올들어 주가 840%↑ 고공행진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의 인공호흡기 총 수출금액은 약 3100만달러(약360억원)로, 작년 수출 규모인 540만달러(약63억원)를 훌쩍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4월부터는 수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5월 수출 규모는 약 560만달러(약6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7.31% 증가했다. 한 달 수출 물량이 한 해 규모를 넘어선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관련 종목에 가려져 있던 인공호흡기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조사 대상 기업은 국내 유일의 인공호흡기 개발·제조사인 멕아이씨에스를 포함해 파버나인, 루트로닉, 씨유메디칼까지 총 4곳이다. 멕아이씨에스 외 나머지 3개 기업은 최근 호흡기 수요가 폭증하며 멕아이씨에스가 공동 생산 협약을 체결한 국내 의료기기 생산업체들이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곳은 멕아이씨에스다. 증권업계는 상장 후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멕아이씨에스는 영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멕시코, 러시아 등 30여 개국에 인공호흡기를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 수출은 올 1월 18만달러에서 6월 1005만달러로 늘었다. 상반기 누적 1838만달러로, 작년 수출 실적의 4배 이상을 달성했다. 수출 비중도 작년 말 49%에서 올 1분기 62%로 올랐다.
인공호흡기 공급 부족으로 하반기에도 멕아이씨에스의 수혜가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인공호흡기 자체 생산 시설을 보유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12개국, 15개 업체에 불과하다.
코로나19가 길어지자 미국·독일·프랑스 등 인공호흡기 제조업체를 보유한 국가는 인공호흡기 수출 금지령을 내렸고, 미국 등은 포드나 GM 등 자동차 제조업체에 생산라인 전환을 통해 생산을 위탁한 상황이다.
김상표 키움증권 연구원은 “인공호흡기는 높은 기술력과 지속적인 품질관리가 필요한 고급 의료기기”라며 “자동차 회사 등에서 생산하는 인공호흡기는 적극적인 호흡치료가 필요한 의료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가도 반응했다. 상장 후 작년까지 줄곧 5000~7000원 선에 머물렀던 주가는 올들어 842.08%, 이달 들어서만 42.41% 올랐다. 28일엔 3.17% 내린 3만6600원에 마감했다. 강동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실적 성장세를 감안할 경우 밸류에이션 부담은 없다”며 “올해는 실적 ‘퀀텀점프’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버나인은 의료기기 전문 제조기업으로 탈바꿈하며 성장성이 열려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가전제품 부품 제조사로 시작한 이 회사는 알루미늄 표면처리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비중은 TV관련 제품 51%, 의료기기 22.2%, 가전제품 내외장재 약 20.8% 등이다. 최근에는 맥아이씨에스의 인공호흡기 외주 생산을 맡으면서 주목받고 있다.
오병용 한양증권 연구원은 지난 8월 “인공호흡기 제조사업 추가로 올해 의료기기 사업에서만 500억원 수준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이라고 분석했다.
파버나인은 2019년 매출액 1036억원, 영업이익 50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 662억원, 영업이익 17억원을 기록하며 기존 사업도 턴어라운드를 시작했다. 인공호흡기 판매는 지난 7월부터 본격화했다.
2001년부터 심장제세동기 및 멸균기·소독기 등 의료기기 부문에서 20년가량 업력을 쌓은 응급 의료기기 전문업체 씨유메디칼도 멕아이씨에스와 인공호흡기 생산량 증대를 위한 공동생산 협약을 지난 4월 7일 체결했다.
씨유메디칼은 심장제세동기 제조에 필요한 각종 원천기술 뿐 아니라 인공 심폐소생기 제조 기술도 보유하고 있어 이번 전세계적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에 대응해 멕아이씨에스와의 협업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멕아이씨에스와의 협약으로 씨유메디칼의 주가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車업체도 ‘인공호흡기’ 생산 … “흡‧배기 시스템 작동원리 닮은꼴”
중증 환자는 급증하는데 ‘마지막 생명줄’인 인공호흡기는 턱없이 부족해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GM·테슬라·포드, 이탈리아 피아트 등이 인공호흡기 제작에 나섰다. 차량 환기 시스템을 응용해 인공호흡기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을 멈춘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 의료기기 및 의료소모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지난 4월 22일 IT 매체 ‘더버지(The Verge)’는 “GM이 일부 시설에서 인공호흡기 자체 생산을 시작했다. 6월 말까지 1만5000개의 인공호흡기를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드 역시 자동차에 사용하는 환풍기와 배터리 등 다른 부품을 활용해 생산에 들어갔다. 포드는 지난 9월 6일 이미 4500만장의 마스크, 2000만장의 페이스 실드(face shields), 5만개의 인공호흡기, 3만2000개의 공기정화기 등을 생산했고 향후 1억장의 마스크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공호흡기 생산도 계속한다.
인공호흡기는 폐렴 증상을 겪는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한 의료기기지만, 생산 과정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물품이다. 자동차 업체는 인공호흡기의 원리가 자동차와 상당히 유사해서 비교적 쉽게 양산에 성공했다.
자동차는 크고 작은 모터, 펌프가 통합돼 연료의 공급과 배기를 진행하는 시스템이다. 폐 안팎에서 공기를 강제로 주입하는 기계 환기 방식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전문가들은 같은 원리를 이용하는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다면 인공호흡기 생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AFP 통신은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개조해 인공호흡기를 만드는 모습은 2차대전 때 자동차 공장이 탱크를 제작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비유했다.
그러나 안전성 관련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호흡기인 만큼 전문 업체가 생산하는 게 위생적으로도 더 낫다는 의견이다.
인공호흡기 제조사인 해밀턴 메디컬의 젠 헬릭 대표는 “인공호흡기 제조는 재료나 부품 사용부터 매우 구체적이고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전체가 가동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는 “일반적으로 인공호흡기는 설계 유형에 따라 부품이 달라지는데, 부품 제작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전직 국방부 관계자도 워싱턴포스트(WP)에 “완성차 업체나 우주항공 업체가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려면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에 완성차 업체들은 인공호흡기 제작과 관련해서는 의료기기 업체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포드는 3월 24일 GE헬스케어‧3M과 합작해 인공호흡기와 산소호흡기 디자인 개량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포드는 이렇게 개량된 제품 생산 과정에 환풍기와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을 활용할 계획이다. 포드에 앞서 GM은 벤텍라이프시스템과, 테슬라는 메드트로닉과 각각 협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