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반찬으로 흔히 오르는 고사리는 한의학적으로 열을 내리고 기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고 칼륨과 무기질이 많아 피를 맑게 해준다. 뇌 건강, 탈모개선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최근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이 발견됐다는 연구가 나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통사 ‘사기’에 실린 고사리
고사리는 옛날부터 아시아권에서 많이 먹는 산채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형제 선비였던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가 망하면서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지조를 잃는 일이라며 수양산에 들어가 충절을 지키며 고사리만 먹다가 결국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사리는 예부터 제사상 등 집안 대소사의 주요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번식력이 하도 강해 송두리째 꺾어도 일주일만 지나면 끝내 새순을 피워 기어이 종자를 남기니,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후사가 길이길이 이어지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양치식물인 고사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과 섬유질이 많이 함유돼 지금도 웰빙식품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본초강목에 고사리는 음력 2~3월에 싹이나 어린이의 주먹 모양과 비슷한데 펴지면 봉황새의 꼬리와 같다고 기록돼 있다.
고사리는 원래 한자 이름인 곡사리(曲絲里)에서 ‘ㄱ’이 탈락돼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고사리의 새순이 나올 때 줄기가 말린 모양(曲)과 실같이 하얀 것(絲)이 식물체에 붙어있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피들헤드(fiddlehead)’로 불리는데 고사리의 어린순은 갈색의 꼬불꼬불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1만2000종 분포해 있는 고사리 … 국내 248종 서식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약용자원연구소 정충렬 박사에 따르면 고사리류는 양치식물(Pteridophyte)로 남극대륙이나 사막과 같이 너무 춥거나 더운 지방을 제외하고 약 1만2000종이 지구상에 분포한다. 주로 열대지방에서 아열대지방에 걸쳐 있으며 종 다양성이 높지만 한대나 아한대지역에선 종 다양성은 낮은 편이다.
국내 자생 고사리의 종류는 고란초과, 고비고사리과, 고사리삼과, 관중과, 꼬리고사리과, 꿩고사리과, 넉줄고사리과, 물고사리과, 봉의꼬리과, 비고사리과, 새깃아재비과, 실고사리과, 용비늘고사리과, 일엽아재비과, 잔고사리과, 처녀교사리과, 풀고사리과 등 17과 53속 248종으로
기재돼 있다.
이 중 식용 가능한 고사리는 8종으로 고사리(전국), 개톱날고사리(제주), 넉줄고사리(전북·경기), 섬고사리(울릉), 참새발고사리(충북·강원·함북), 개고사리(충남·경기), 뱀고사리(경남· 경기·함북), 청나래고사리(강원·함북)이다. 대체로 식용이 불가능한 고사리일수록 가지에 솜털이 많이 달려 있다.
고비고사리는 식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 말이 많은데 아주 어렸을 때 4월경 새순이 올라올 때까지만 채취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엔 억세지고 독성이 올라와 식용으로는 금물이다. 고비고사리는 인터넷에서 공기정화용 관상식물로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국내산, 단면 고르지 않고 줄기 연해 vs 중국산, 단면 깔끔하고 질겨
고사리는 현세를 사는 우리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추석 명절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나물이다. 조상님께 올리는 음식이라 우리 농산물을 올리고 싶은 것이 후손의 마음이다.
수입 농수산물과의 구별법을 살펴보면 우선 국내산 고사리는 주로 산이나 숲에 자라는 것을 손으로 꺾고 채취하기 때문에 잘린 단면이 고르지 않고 먹을 때 줄기가 연하게 느껴진다. 반면 중국산은 노지에서 대량 재배하고 낫으로 베어 채취하기 때문에 단면이 깔끔하고 매끈하며 질긴 식감을 나타낸다.
국내산 고사리는 연한 갈색빛을 띠지만 중국산 고사리는 붉고 진한 갈색빛이 돈다. 줄기 윗부분에 싹이 많이 붙어있는 국내산 고사리와 달리 중국산 고사리는 줄기 윗부분에 싹이 적게 붙어있다.
고사리, 섬유질‧비타민 풍부 … 아스트라갈린 등 다량 함유 고영양 식품
뿌리는 약용으로 해열·이뇨·설사‧시력보호‧숙변제거 등에 사용된다. 식용하는 부위는 당질과 섬유질이 많고 무기물과 비타민(B1·B2·C)이 풍부하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Asparagine)과 글루타민산(Glutaminic acid), 플라보노이드(Flavonoid)의 일종인 아스트라갈린(Astragalin) 등이 다량 함유돼 고영양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지만, 매일 220kg을 80일간 계속 먹지 않으면 발암의 위험성이 없다는 보고가 있다. 청나래고사리(Ostrich fern, Matteuccia struthiopteris)가 발암성이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아직 어떤 독성물질인지는 확증이 되지 않았다.
땅속줄기(지하경)에 전분이 풍부해 뽑아낸 전분을 궐분(蕨粉)이라 하고 식용과 풀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궐채(蕨菜 중국명이기도 함), 궐기근(蕨其根)이라 해 약재로 사용했으며 해열·이뇨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설사·황달·대하증 치료제로도 사용했다.
고사리 치매‧코로나19에 효과적인 성분 함유
최근엔 치매와 코로나19에 효과적인 성분이 들어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박길홍 고려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팀은 지난달 14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지에이치팜과 공동 연구를 통해 천연 고사리에서 코로나19 치료 활성 성분을 발견해 국내 특허출원했다.
연구팀은 고사리 뿌리줄기 추출액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식 억제 성분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성분의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원숭이 신장세포인 베로(Vero) 세포를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L타입에 감염시킨 뒤 고사리 추출물을 투여하고 항바이러스 효과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감염된 세포에서 바이러스의 증식이 억제됐다. 이 활성 성분의 바이러스 증식 억제 효능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약물보다 강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팀은 앞서 청정지역 지리산에서 자란 고사리에 치매치료에 효과적인 ‘프테로신(Pterosin) A, B, C, D, N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메가3 및 오메가6 지방산도 풍부하다. 프테로신 성분이 가장 주목받는 영역은 뇌 건강과 관련된 부분이다. 뇌의 가장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은 바로 치매이며, 기존의 일시적인 인지기능 향상을 돕는 치료제와는 차별화된 효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프테로신은 치매를 유발하며,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β아밀로이드 생성 효소와 인지기능을 저하시키는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2종의 활성을 모두 억제해 모든 치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뇌의 인지기능 관련 단백질을 생산하는 중추적인 전사인자(cAMP response element-binding protein, CREB)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프테로신은 또 매우 우수한 뇌혈관장벽 투과성을 가지고 있어 뇌세포에 직접 작용한다. 고사리는 인체 독성이 없고 안전성이 높아 장기 복용으로 치매 예방과 치료, 인지기능 증진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사리 과다섭취 시 설사 복통 유발 … 익히지 않은 고사리는 각기병 유발도
좋은 점도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법. 고사리는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몸이 차가운 사람이 과다 섭취하면 30분~12시간 내에 설사나 복통, 오심, 구토, 복부경련, 어지럼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 고사리에 함유된 프타퀼로사이드, 티아미나아제의 독소 성분 때문에 익혀 먹어야 한다. 티아미나제는 티아민(비타민B1)을 분해하는 효소로 익히지 않은 고사리를 섭취할 경우 티아미나제 활성으로 비타민 B1이 결핍되는 각기병에 걸릴 수 있다. 생고사리는 항인플루엔자바이러스 효과를 가지는 시키믹산(Shikimic acid)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익혀 먹는 게 추천된다.
[팩트체크] 고사리와 관련된 여러 낭설이 떠돌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약용자원연구소 정충렬 박사로부터 사실 여부를 들어봤다.
△생고사리는 독초다 (O)
생고사리에는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발암물질이 있다. 소가 풀을 뜯으며 지난 자리에는 고사리만 남는다는 말이 있는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생고사리를 많이 뜯어 먹은 소의 소장에선 궤양과 출혈이, 방광에는 종양이 확인된 것이다. 실제로 국제암연구소(IARC)에선 고사리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B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生고사리는 ‘양기를 빼앗는다’ (X)
결론적으로 아니다. 한의사 왕혜문은 한 방송에 출연해 “고사리는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마음 안정에 도움이 돼 스님들이 자주 먹다보니 정력 감퇴된다는 오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고사리는 서양의 역대 약전에 독초로 분류돼 있다. 300년 전 영국의 식물학자 글레퍼는 “고사리 줄기를 삶아 먹으면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으나 임산부가 고사리순을 먹으면 태아가 죽는다”고 독성을 경고했다. 또 동의보감에는 “고사리는 맛이 아주 좋지만 오래 계속해서 먹어서는 안 된다. 양기를 소멸시키며 다리 힘을 약하게 해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된다”고 기록돼 있다.
고사리는 건강식품이다. 독소를 빼낸 삶은 고사리는 정력을 쇠하게 한다는 속설과는 달리 나물류 중 높은 단백질 함유량으로 오히려 기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식이섬유가 풍부하며 칼로리가 낮아 영양 과잉 시대에 딱 맞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칼슘과 칼륨 등 미네랄이 풍부해 뼈 건강에도 도움이 되며, 아미노산 종류인 아스파라긴과 글루타민이 풍부하다. 아스파라긴은 숙취 해소에, 글루타민은 근육 생성에 도움이 된다.
한방에서는 고사리가 열을 내리고 담을 삭여주며 피를 맑게 하고 기를 가라앉힌다 해 성인병 예방에 좋고 치료제로도 사용한다. 칼로리가 낮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 감량 효과도 있다.
△고사리를 접착제로 사용한다 (O)
고사리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전분을 만들어 식용도 하는데 고사리 전분은 접착력이 강하고 습기에 대한 저항력도 크기 때문에 초롱 등을 접착하는 재료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