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A, non-B’ 바이러스 존재 주장 … 유전자분석으로 바이러스 실체 확인 … 영장류 실험으로 신약개발 토대
202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은 C형간염바이러스(HCV)를 발견한 하비 올터(Harvey J. Alter)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 마이클 호턴(Michael Houghton)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 찰스 라이스(Charles M. Rice) 미국 록펠러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5일(현지시각)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HCV를 발견해 혈액으로 퍼지던 바이러스성 간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이들 바이러스 학자들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올터 부소장은 193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국 로체스터대를 다니고 1956년 예술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0년 로체스터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9년 선임연구원으로 NIH 임상센터에 입사했다. 입사한 지 51년차를 맞은 지금도 명예연구원 직함을 유지한 채 전염병 부문 책임자이자 수혈의학 연구 부소장으로 남아있다.
그는 ‘수혈 관련 간염’의 원인으로 기존에 알려진 A형간염이나 B형간염이 아닌 제3의 간염의 존재가 있다고 1975년에 학계에 보고하고 이를 ‘non-A, non-B’라고 명명했다.
호턴 교수는 195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앨버타대에 따르면 17세 때 루이 파스퇴르의 전기를 읽고 미생물학자의 꿈을 꿨다고 한다. 1972년 영국 이스트안젤리아(East Angelia)대에서 생명과학 학사학위를 받고 1977년 킹스칼리지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와 노바티스를 거쳐 미국 생명공학기업 카이론에 입사한 후 바이러스 유전자를 분석(클로닝)하던 1989년에 이르러 HCV의 존재를 규명했다.
이와 관련, 1967년에 B형간염바이러스를 발견하고 1969년에 백신까지 개발한 바룩 블룸버그(Baruch Blumberg 1925~2011)도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있다.
A형간염은 장기간에 걸쳐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다. 금세 낫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B형간염은 전세계 수억명에게 만성 간염을 일으키며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C형간염은 전세계에서 7100만명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혈, 오염된 주사기와 주삿바늘, 성교를 통해 혈액으로 감염된다. “모든 감염병의 치료가 그렇듯이 HCV의 존재을 알게 해준 게 질병 정복의 시작”이라고 크레이그 카메론(Craig Cameron) 노스캐롤라이나대 미생물 및 면역학 교수는 밝혔다.
호턴 교수는 생명과학자에게 주는 게이드너상(Canada Gairdner International Award, 1959년 제정)을 54년 만에 처음 거절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2013년 게이드너상은 올터 부소장과 호턴 교수, 호턴 교수와 함께 C형 간염을 연구한 대니얼 브래들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원에게 돌아갔다. 반면 호턴 교수는 카이론에서 C형 간염 바이러스를 함께 발견한 쿠이림 추(Qui-Lim Choo) 박사와 조지 쿠오(George Kuo) 박사와 함께 상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했다. 이들 3인은 1980년대에 처음으로 HCV를 검출해낸 사람이다.
호턴 교수 밑에서 박사후 과정을 지낸 안젤라 라스무센 콜럼비아대 교수는 “ 다루기에 까다로운 바이러스였다”며 HCV 연구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공로로 올터 박사와 호튼 박사는 2000년에 래스커상(Lasker Award)을 공동 수상했다.
찰스 라이스 미국 록펠러대 교수는 1952년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났다. 1974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학 학사학위를 받고 1981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생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워싱턴대 의대 조교수로 연구를 시작한 후 2001년부터 록펠러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현재도 국제학술지 ‘플로스 병원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0년데 분리한 HCV를 침팬지에 주입해 단독으로 감염되는 경로를 확인했다. 2005년에는 실험 동물모델을 확립해 C형간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신약개발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가 연구가 없었다면 HCV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카메론 교수는 평가했다.
바이러스학자인 이들은 바이러스성 감염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에도 맞서 싸우고 있다.
호턴 교수는 HCV 백신을 개발 중이며 여기서 활용하던 서브유닛 백신을 코로나19에 적용하기 위해 캐나다 보건연구소에서 75만달러를 받아 연구 중이다. 라이스 교수도 올해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코로나19를 비롯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림프구 항원을 발견한 연구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노벨생리의학상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래스커상은 이번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터와 호턴은 2000년에 공동 수상했고, 라이스 교수도 2016년 C형간염 치료를 위한 약물전달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임상의학 부문 래스커상을 받았다.
같은 해인 2016년 기초의학 분야 래스커상 수상자들은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윌리엄 케일린 하버드대 의대 교수, 피터 랫클리프 옥스퍼드대 의대 교수, 그레그 세멘자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다. 이들은 세포가 산소농도에 적응하는 과정을 연구했는데 암세포의 경우 저산소 상태에서 항암제에 저항성을 띠게 된다고 규명했다. 특히 세포가 저산소 농도에 적응하는 과정에 'HIF-1‘이라는 유전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혀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기초의학 부문 래스커상을 수상한 학자 중 50% 정도가 노벨 생리의학상 또는 화학상을 수상했다.
제갈동욱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호턴은 수혈 받은 환자에서 HCV 항체를 발견해 수혈 전 검사법 개발로 이어졌고, HCV가 간암 발병으로 연관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며 “HCV 백신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제갈 교수는 “라이스 교수는 분자생물학적으로 활성 HCV를 발견했고,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분석을 통하여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많은 것을 알아냈다”며 “이를 통해 활성 있는 바이러스와 활성 없는 바이러스를 구분했고 활성형 바이러스를 영장류에 주입해 간염의 단독 원인임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최종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HIV), 바이러스성간염 등은 4대 감염질환으로 꼽힌다”며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HCV를 규명함으로써 현재 95% 이상의 C형간염 환자가 치료 가능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원석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인류가 박멸할 수 있는 감염질환은 몇 개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C형간염”이라며 “국내 인구의 1~2%가 C형간염에 감염된 상태인데 대부분 증상이 없어서 감염 사실을 모르는 채로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진을 통해 HCV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8주~12주간 항바이러스제 알약을 복용해 C형간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