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접종분 독감백신 상온노출 사건의 여파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 등에서 백신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도매가격과 접종비가 동시에 치솟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병원 접종가가 도매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국민 건강을 담보로 지나친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에 소요될 독감백신 500만 도스의 유통을 맡은 신성약품이 일부인 17만 도스를 상온에서 유통한 게 확인됐다. 당국은 무료접종 일정을 미루고 품질 확인 및 유통과정을 점검 중이다.
당국은 최대 2주간의 확인 검사 기간 후 문제가 없으면 다시 무료접종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안전성이 확인되더라도 소비자 불신이 커짐에 따라 신성약품이 유통을 담당했던 500만 도스를 모두 폐기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30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법무부 대전지방교정청은 전국 교정 수용자 1만4454명과 직원 1256명등 접종을 위해 총 1만5710도스 백신을 구매하는 입찰 공고를 냈다. 이날 법무부가 책정한 1도스당 가격은 1만9000원으로 지금까지 지자체와 정부기관의 독감백신 입찰가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보다 앞서 전남 일부 지자체가 1도스당 1만6500원을 제시했지만 응하는 업체가 없어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하순 정부의 입찰공고에서 결정된 가격은 1도스당 8490원이었으므로 약 2.5배 상승했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독감백신의 도매가는 지난달 초 1만4000~1만6000원에서 2000~3000원이 올랐다. 현재 백신 제약사에서 약품 도매상에 납품하는 가격은 1만 7000원 내외, 수도권 1차 도매상(대도매)에서는 1만7000~2만원, 2차 도매(소도매)에서는 2만1000원~2만2500원선 가격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매상 간 거래 마진도 함께 올라 지난달 중순 도스당 1300원선이던 것이 지금은 1800원이다.
문제는 병원에서 맞는 소비자의 접종비용이다. 서울시를 기준으로 최근 일선 병의원에서 형성된 유료 독감백신의 접종비는 4만~4만7000원 사이에서 형성됐다. 지역 맘까페 등에서는 “지난달까지는 3만~3만5000원의 접종가도 보였으나 지금은 4만원 이하 가격은 찾아볼 수 없다”는 푸념과 함께 조금이라도 저렴한 접종가가 저렴한 병원 정보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서울지역 백신 접종가는 3만5000~4만원 사이였다. 5000~7000원가량 병원가가 높아진 것이다. 유통 도매상 등에서는 “유통과정에서의 가격 상승에 비해 병원의 접종비 인상은 지나치게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유료접종 백신은 비급여 항목이라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할 수 있는데, 병원에서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늘자 가격을 높여 마진을 크게 남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병원에서는 형평성을 들고 있다. 사당동의 모 병원장은 “들어오는 백신 물량은 한정돼 있는데, 12세 이하 소아에게 접종할 백신과 유료분 백신은 유통과정이 나눠져 있지 않다”며 “성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백신을 접종하면 소아에게 접종할 물량이 남지 않아 가격을 높여 조절하고 있다”고 답했다.
무료접종 분 중 노인, 13~18세 이하 청소년의 독감백신은 현물로 공급되지만 6개월~만 12세 이하 소아, 임산부, 지자체 지정자의 독감백신은 병원에서 개별 구매하고 접종한 후 비용을 돌려받는 구조다.
하지만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의 트윈데믹(중복 유행)에 대비해 상당수의 무료 접종자들이 서둘러 유료접종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접종 비용을 예년보다 훨씬 높게 책정한 것은 장삿속이나 다름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4차 추가경정 예산안 중 315억원으로 취약계층 105만명에 대한 백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책정 가격은 도스당 3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금년도 분 백신의 생산과 수입이 이미 끝나 국내에 풀릴 백신 양은 한정돼 추가 유입이 어렵다. 독감백신의 시중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와의 트윈데믹을 대비해 어느때보다 독감예방접종이 강조되는 한해다. 지난 28일 양동교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독감백신의 시장가격과 관련된 부분은 필요할 경우 설명하겠다”만 말했다. 치솟는 접종비에 대해 설명만 할 게 아니라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