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는 최근 몇 년간 매우 급속하고 극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5~6년 전까지만해도 1형 당뇨병은 인슐린 주입, 2형은 메트포르민 등 경구약으로 시작해 증상 진행에 따라 인슐린 제제로 넘어가는 가이드라인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환자의 혈당 변화 양상과 기저질환, 유전자까지 고려한 맞춤형치료로 달려가고 있어요”
문선준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당뇨병센터 인공췌장클리닉)는 “여러 약물을 동시에 또는 인슐린을 조기에 투여하는 등 치료 패턴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특히 인슐린펌프, 혈당모니터링 기기, 인공지능 알고리즘, 패치형 인슐린펌프 등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이를 최적화해 환자에 적용하는 시스템 구축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새 당뇨병 신기술 급진전 … 강북삼성병원, 국내 최초 인공췌장클리닉 열어 대응
문선준 교수는 강북삼성병원 당뇨병센터가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개소한 인공췌장클리닉의 막내 교수다. 올해 교수에 부임, 기라성 같은 선배 교수의 임상·연구·병원행정 공백을 커버하면서 짬이 나는 대로 당뇨병 관련 기초의학 및 의공학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인공췌장클리닉은 당뇨병 치료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임상에 적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인공췌장을 간판으로 삼되 연속혈당측정기, 환자를 위한 라이프로그 애플리케이션, 최신 약물요법, 인슐린 패치, 인슐린펌프 등을 개발 또는 도입해 임상에 적용·발전시키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들 아이템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제1형 당뇨병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신 당뇨 치료 아이템 가운데 전개의 출발점이 되는 게 연속혈당측정기다. 이를 활용하면 환자들의 생활습관 교정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 클리닉은 여러 유형의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패턴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저런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문 교수 역시 클리닉의 일원으로서 ‘당뇨병 경구약제로 조절되지 않는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연속혈당측정을 사용한 생활습관 교정 교육의 효과 연구’를 진행 중이다.
클리닉은 환자의 일상을 모바일 기기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S진료노트’와 ‘S입원노트’란 앱을 각각 외래 및 입원 환자에게 적용해 혈당조절 및 생활습관 교정 교육을 하고 있다.
“임상의로서 연구를 병행하는 게 버겁긴 해도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라 연구를 하는 즐거움이 각별해요. 해외에 비해 국내는 당뇨병 신기술 도입에 보수적인 편이어서 임상 적용 및 연구 속도가 2~3년 정도 뒤처져 있습니다. 특히 여러 신기술을 조합한 인공췌장 분야가 그렇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한데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문 교수는 본래 생명과학 기초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과학도였다. 의대에 진학한 후엔 세부전공으로 내분비내과를 선택했다. “연구 성과가 환자에게 효과를 보여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 의사가 됐어요. 이런 면에서 내분비내과는 논리적이고 정확한 게 제 적성과 맞았고요” 한눈에도 천상 연구자같은 그의 표정과 말씨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이 묻어났다.
사람 췌장 대신하는 ‘인공 췌장’ … 멀지 않아 당뇨병 치료의 ‘대세’될 것
인공췌장이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을 상실한 제1형 당뇨병 환자와 인슐린 분비가 잘 되지 않는 중증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짜 췌장처럼 혈당에 반응해 알아서 인슐린을 투여하는 치료 시스템이다. 당뇨병 치료에서 가장 첨단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인슐린은 혈당 조절을 관장한다. 탄수화물(당)은 소화·분해돼 혈당이 되고 혈액 속을 타고 흐르면서 필요한 세포에 에너지원이 된다. 하지만 혈당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돼 일부를 근육, 간, 지방에 축적하도록 유도한다. 췌장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제1형 당뇨병), 여러 이유로 인슐린에 세포들이 잘 반응하지 못하는(제2형 당뇨병) 게 당뇨병이다. 이로 인해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케톤산증·고혈당삼투압증이 급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과도하게 혈당을 조절하다가 저혈당증에 빠지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 급성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급성합병증 외에도 장기간 고혈당이 유지되면 관상동맥경화증·당뇨발·당뇨병성 신장병·당뇨병성 망막병증 등 여러 만성 합병증이 나타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만성 진행성 질환이라 일단 걸리면 되돌릴 수도 없다.
췌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와 과도한 인슐린저항성(인슐린이 분비돼도 효과가 떨어지는)이 나타나는 기간이 길어져 췌장 기능이 약해진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췌장을 대신할 인공췌장은 의료계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놓고 논란이 이어져왔다.
“처음에는 간이나 심장처럼 타인의 췌장을 전체 또는 일부 이식받는 방법이 연구됐습니다. 하지만 이식 후 투약하는 면역억제제가 다시 당뇨병을 유발하거나 이식된 췌장의 기능을 약하게 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어요. 이후 줄기세포를 췌장의 베타세포(인슐린 분비세포)를 분화해 이식하는 방법이 연구됐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종양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죠. 결론적으로 최근에는 몸 속에 췌장을 집어넣는 대신 인슐린펌프와 연속혈당모니터기를 연동해 췌장처럼 기능하도록 하자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어요. 이를 인공췌장 시스템(Aritificial Pancreas System)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이들이 인공췌장이 어떤 특정 치료기기일 것이라 짐작하지만 실제는 지금껏 당뇨병 치료에 활용돼 오던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연동한 시스템이다. 이들 3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연속혈당측정기가 혈당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인슐린이 필요한 순간 인슐린펌프에 신호를 보내면, 펌프가 반응해 적정량의 인슐린을 내보내도록 구동된다.
인공췌장의 전단계로서 시초가 된 모델은 2010년 인슐린펌프 제조사인 메드트로닉이 처음 개발했다. 인슐린펌프와 연속혈당측정기를 연계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후 저혈당에 도달하기 전에 인슐린 투약을 중단해주는 수준의 모델(minimed 640G, 현재 국내 최상위모델)을 거쳐, 갑자기 상승하는 식후 고혈당 등을 제외하고 평상시에 실시간 혈당 수치에 따라 인슐린 투여가 어느 정도 자동 조절되는 수준으로 개량됐다.
최근 개발된 메드트로닉의 minimed 670G(알고리즘 내재형 인슐린펌프), 탠덤(Tandem Diabetes Care)의 ‘t:slim X2, Control IQ’ , 미국 보스턴대가 개발한 ‘iLET, bionic pancreas’ (각각 인슐린펌프, 알고리즘), 영국 캠브리지대의 ‘CamAPS FX’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은 아직 식후혈당까지 완벽하게 조절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상황에서 자동으로 인슐린 투여량을 조절해 더 발전된 형태의 인공췌장에 가까워졌다.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인공췌장을 위한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다만 알고리즘을 탑재한 인슐린펌프 ‘minimed670G’과 캠브리지대의 ‘CamAPS FX’ 알고리즘 등이 식약처 승인을 기다리고 있어 올해 안에 인공췌장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내서는 minimed640G만 승인받아 운영 중이다.
국내 인슐린펌프 제조사인 수일개발은 CamAPS FX과 연동할 수 있는 자사의 인슐린펌프 ‘다나아이’를 9월에 출시한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문 교수는 “한국이 인공췌장 분야 연구가 밀렸던 것은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 환자보다 제2형(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 환자가 많은 이유도 있고, 인슐린 펌프 등 기기 사용에 한동안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최근 관련 기술발전으로 인공췌장이 정교화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사용 인구가 늘 것으로 예상돼 연구 열기가 뜨거워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일회용’ 인슐린펌프라 할 수 있는 패치형 인슐린펌프가 2형 당뇨병에서 효과가 있는지 연구 중이다.
신기술 쏟아져도 당뇨병 치료의 기본은 생활습관 교정
당뇨병 약물치료 양상도 수년 새 급격히 바뀌고 있다. “인슐린 투약이 필요한 제1형 당뇨병을 제외하고 제2형 당뇨병에서 예전에는 혈당 자체를 맞추는 것에 목표를 두고 약을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합병증 예방에 방점을 찍고 치료가 진행되는 추세”라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메트포르민을 중심으로 설폰우레아제, 메글리티나이드, 치아졸리딘디온, DPP-4억제제 등의 경구약을 사용하다가 췌장 기능 저하가 오면 인슐린을 병행하던 과거 약물치료 루틴이 깨어졌다. 대신 여러 약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슐린을 조기에 투여하는 치료가 확산돼가고 있다. 여기에 혈당조절 효과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예방(심장보호 및 혈압 개선), 신장병 개선, 체중감량(식욕감소), 뇌혈관질환 예방 등의 부수적인 효과를 겸비한 약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기저질환에 따라 취약한 합병증을 예상하고 이를 방지하는 약물을 조합해 사용하는 치료가 예후 면에서 훨씬 더 좋았어요. 향후 약물치료는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치료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환자가 생활습관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에게 늘 당뇨병은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대하는 만큼 변하는 병’이라고 일러줍니다. 당뇨병만큼 환자의 기여도가 치료성과로 이어지는 질환은 없을 겁니다. 경구약, 인슐린 투약 이상으로 중요한 게 생활습관 교정이고 둘이 균형을 잘 잡아야 비로소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문선준(文銑焌)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프로필
학력
2009년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2018년 서울대 의대 의학과 석사 졸업
2020년 서울대 의대 의학과 박사 수료
경력
2014~2018년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
2018~2019년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전임의
2019~2020년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진료교수
2020년~ 강북삼성병원 임상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