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 … 로세핀·산디문·아모디핀·아모잘탄 개량신약 히트 … 2015년 8조원대 신약기술 수출 물꼬
80년 간의 여행을 마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거인(巨人)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진출 토대를 닦고 산업 전반의 기술 발전을 주도한 인물로 제약업계의 ‘큰 별’이다. 한미약품은 3일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했고 밝혔다. 향년 80세.
고인은 조그만 ‘동네 약국’을 시작으로 1조 매출 제약사를 키워냈다. 1940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뒤 1967년 서울 종로5가(동대문)에 ‘임성기약국’을 열며 약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약국은 성병 환자 및 베트남전 참전 용사에게 전문 항생제와 희귀 수입약을 처방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 때 서울 3대 약국 중 하나라는 칭호도 얻었다. 약국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고 임 회장은 1973년 33세의 나이에 ‘더 좋은 약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포부로 임성기제약을 설립했다. 같은 해 글로벌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한미약품’으로 바꿨다. 약국에서 번 돈을 제약사에 털어넣고 동료 약사들과 함께 일궈나갔다. 약국 2층에서 해외의약품집을 정독해가며 품목 다변화에 나섰다.
그는 작은 제약회사였지만 연구개발에 힘쓰며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필수 고가약을 차츰 국산화하는 데 집중했다. 1986년 성남시 분당구에 한미약품 연구센터(현 경기도 화성시 동탄으로 이전)를 설립한 이래 줄곧 개량신약을 창출했다. 1987년에 스위스 로슈의 항생제 ‘로세핀’(세프트리악손)의 개량신약을 내놓을 것을 시작으로 1990년엔 스웨덴 아스트라제네카의 위십이지장궤양 치료제 ‘로섹’(오메프라졸), 1992년엔 스위스 노바티스의 면역억제제 ‘산디문’(사이클로스포린)의 개량신약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1989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제조 기술을 역수출하기도 했다. 로슈가 6년간 한국이 아닌 전세계에서 한미 기술을 활용하는 조건으로 당시 600만달러를 받았다. 1997년에는 노바티스의 마이크로에멀전 제제와 관련 특허 3개를 기술수출했다. 이는 당시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였다. 2004년엔 미국 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암로디핀 베실산염)의 첫 개량신약인 ‘아모디핀’(암로디핀 캄실산염)을 내놨다. 아모디핀은 발매 4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400억원어치가 팔렸다.
한미약품은 2009년에는 고혈압치료 복합제 ‘아모잘탄’(성분명 암로디핀·로사르탄칼륨, amlodipine·losartan potassium)을 ‘코자XQ’라는 브랜드로 50여개 국가에 수출하는 계약을 미국 머크(MSD)와 맺었다. 지난 7월에는 한미약품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정’(성분명 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 Rosuvastatin·Ezetimibe)을 미국 MSD를 통해 멕시코에 론칭했다. 양사는 2016년 로수젯정의 23개국 글로벌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아모잘탄 이름을 ‘코자XQ’로 바꿔 미국 MSD사를 통해 해외 수출에 성공한 것이다. MSD는 ‘코자정’(로사르탄칼륨)을 개발한 원조다. 또 로수젯 또한 MSD의 ‘바이토린정’(심바스타틴·에제티미브)의 성분을 바꿔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 복합제 ‘로벨리토정’(이르베사르탄·아토르바스타틴)은 한미약품과 사노피아벤티스가 협업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한미는 이밖에 ‘에소메졸’, ‘히알루마’, ‘피도글’, ‘몬테리진츄’ 등 제형 변경, 복약편의성 강화 등을 통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개량신약으로 성공사례를 이어갔다. 이는 국내 개량신약 및 복합제신약 개발의 기폭제가 됐다.
1990년대까지는 특허가 만료된 국내 첫 제네릭의 개발과 판매에 집중하며 회사 성장기반을 다졌다. 이런 그의 노력은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대웅제약, 종근당과 함께 우수한 제네릭으로 처방을 휩쓰는 원동력이 되며 빛을 발했다. 의약분업 시행 이후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려온 한미약품은 국내 대부분 기업이 투자를 축소할 때 임 회장은 신약개발 연구 투자, 중국 진출, 제이브이엠(협신의료기) 인수, 온라인 판매망(온라인팜) 구축 등 과감한 투자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빠르게 사세를 확장시켜나갔다.
‘한국형 연구개발(R&D) 전략을 통한 제약강국 건설’이라는 일념으로 매년 매출의 20% 가까이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왔다. 지난해의 경우 1조1136억원 매출에 18.8%인 2097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국내 유수의 대다수 기업이 매출의 6~8%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임 회장은 제약업계의 흐름에 발맞춰 단기적으론 개량신약 개발에 힘썼고, 장기적으로는 혁신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평소 “R&D 없는 제약기업은 죽은 기업, R&D는 나의 목숨과도 같다”는 임 회장의 확고한 신념이 깃든 선택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신약개발에 매진해 온 임 회장의 열정은 2015년 또 한 번 빛을 냈다. 그 해 3월 릴리에 기술수출했던 류마티스관절염 표적치료제인 BTK억제제(LY3337641/HM71224)를, 같은 달 스펙트럼에 폐암 및 유방암 치료제인 포지오티닙, 7월엔 베링거인겔하임에 표적항암제 ‘올무티닙(Olmutinib)’을, 11월엔 사노피에 당뇨병 신약후보인 에페글레나타이드, 12월엔 얀센에 비만·당뇨치료제 ‘HM12525A’(한미 개발명, JNJ-64565111는 얀센 개발명)를 기술이전 하는 등 무려 2015년 한 해에만 해외 제약사에 무려 5건의 자체 신약개발 물질들을 기술수출(라이선싱 아웃)하며 단숨에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우뚝 섰다. 당시 기술수출 규모만 8조원에 달한다.
이같은 임 회장의 도약을 지켜본 국내 다른 제약기업도 R&D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한미보다 먼저 제약업에 뛰어들어 앞서가던 유한양행, GC녹십자, 동아에스티, 종근당 등이 오히려 한미를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이는 오늘날 ‘K바이오’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1996년 설립된 북경한미약품은 생산·연구·영업 등을 점차적으로 확충하며 국내 제약업계 해외 진출사례 중 성공적인 예로 꼽힌다. 임 회장은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기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삼고 준비를 해왔다. 그는 중국 어린이들이 성인용 의약품을 잘라 먹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용 의약품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고인은 2009년 인터뷰에서 “제약산업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시장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의 제약 분야 헌신은 회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의 이사장을, 1999년에는 한국제약협회(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을 맡으며 업계 발전에 이바지했다.
임 회장의 타계로 회사 빈자리는 그의 자녀들이 채울 전망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씨와 아들 임종윤·임종훈씨, 딸 임주현씨가 있다. 이 중 장남 임종윤 씨는 후계자로 일찌감치 지목된 인물이다. 현재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로 활약 중이다.
장녀 임주현씨는 현재 한미약품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차남 임종훈씨는 2017년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돼 현재 경영기획 부사장직을 수행 중이다. 임종훈 부사장은 그룹 관계사인 한미헬스케어와 벤처캐피탈인 한미벤쳐스 상근 대표직도 맡고 있다.
고 임성기 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른다. 발인은 6일 오전이다. 빈소는 확정되는 대로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유족 측은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