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사태 장기화되면서 일상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감염병이 육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정신적 우울감을 유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Corona Blue·코로나 우울증)를 앓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에 따른 우울감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돼 느끼는 소외감, 타인에 대한 경계심 등 사상 초유의 심리적 바이러스는 사회 전반에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퍼뜨리고 있다. 경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한국인의 47.5%가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집에 오래 정주하면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체중이 증가하고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올 수 있다”며 “가족 간 대화와 유대 강화,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고 가끔씩 가까운 야외활동 등을 통해 ‘심리적 환기’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코로나 블루를 막아내는 게 공동체의 또 다른 과제가 됐으나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 여부 등에만 신경쓰는 분위기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은 축소되거나 등한시되고 있다. 우울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호전되지만 심하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우울증에 대한 흔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1. 우울증은 내성적이거나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다?
우울증에 대한 큰 오해 중 하나는 우울증은 정신병이라 특별한 사람만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면서도 심각한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에 가장 큰 부담을 초래하는 10대 질환 중 3위를 우울증으로 꼽았고, 2030년에는 1위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뇌과학 연구자인 앨릭스 코브(Alex Korb)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우울 성향이 있으며, 진화의 결과 뇌가 그런 성향에 빠지기 쉽다. 부정적인 것에 의해 뇌의 감정 회로가 더 쉽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것은 근거가 없으며 우울증 환자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잘못된 통념에 불과하다.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활동, 대인관계, 감정 표현이 적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외향적인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완벽주의인 사람이 우울증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거나, 이런 성향이 병적 상태로 악화된 강박신경증 환자는 같은 스트레스에도 일반인보다 우울한 감정을 쉽게 느낀다. 실제 강박신경증 환자에서 우울증이 공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우울증 약을 먹으면 지능이 떨어진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 약간 졸리거나 머리가 맑지 않은 느낌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같은 부작용은 약의 진정작용에 의해 불가피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적정량을 투여한다면 점차 사라진다. 정신과 약물 복용으로 지능이 떨어지거나 신경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우울증에 복합된 조현병(정신분열증)은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뇌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중독될까봐 꺼리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는 중독되지 않으며 습관성이 없는 안전한 약이다. 적절한 시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필요한 약을 복용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3. 기분이 우울하면 모두 우울증이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은 아니다. 우울감은 누구나 느끼는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며 대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소가 된다. 우울증은 우울감이 최소 2주 이상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때로 정의된다. 불면과 자살사고나 자살충동이 일어나는 게 특징이다.
반면 신체검사 등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지만 소화불량·변비·식욕감퇴 등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하거나, 우울감을 감추기 위해 밝은 척 과잉행동을 하는 경우 등을 ‘가면성(假面性) 우울증’으로 의심할 수 있다. 예컨대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고 감정적으로 별다른 특징을 보이지 않지만 이유 없이 피곤하고, 불면증·과다수면이 나타나며, 입맛이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다. 환자는 정신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들을 전전하면서 병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치료가 되지 않는 과정 속에서 더 우울해지고 절망하게 된다.
가면성 우울증은 슬픔·분노 등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말한다.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큰 사람일수록 이 질환을 앓기 쉽다. 간혹 식욕 저하, 피로, 소화불량 등과 함께 치매를 의심할 만큼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는데 이를 ‘가성 치매’로 의심해 볼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울증에 걸리면 동반될 수 있고 우울증을 치료하면 함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4. 어린이도 우울증에 걸린다?
우울증은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하며 나이에 따라 임상 양상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어린이는 짜증, 불안, 공격성, 수면장애, 학습능력 저하, 또래관계 악화, 등교거부증 등 행동을 보이게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 성향을 보이는 아동 및 청소년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전국 초4~고2 아동·청소년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평균 수면시간과 공부시간이 이전보다 각각 41분(8시간6분→8시간47분), 56분(3시간49분→4시간45분) 늘었다. 평균 미디어 사용 시간은 2시간44분(3시간54분→6시간38분)이나 늘었는데, 운동시간은 21분(1시간2분→41분) 줄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래의 행동 및 생활반경이 제한될 때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며 “재난 시기에 발생하는 일상 변화와 불균형은 아동·청소년의 행복감과 자아존중감 등 정서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5. 약물치료보다 정신상담이 더 중요하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므로 약물치료를 하지 않아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면 증상이 호전될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에 전문적인 치료를 멀리하면 치료 시기를 놓쳐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우울증은 뇌내 신경전달물질 체계가 교란에 빠진 상태로 증상이 심하면 항우울제의 도움이 필요하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우울증에 굴복하는 게 아니다. 약물치료는 일반적이고 효과적이며 빠른 치료법이다.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 모두 중요하다. 우울증 환자는 대부분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아세틸콜린과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이 일반인보다 적게 분비된다. 제약사들은 이런 점에 착안해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키는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해왔다.
우울증 치료에는 모노아민 산화효소 저해제(Monoamine oxidase inhibitor, MAOI),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 TCA)부터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재흡수 억제제 (Noerpinephrine Dopamine Reuptake Inhibitor, NDRI),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억제제(Serotonin Noer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SNRI), 노르에피네프린성 선택적 세로토닌 제제(noradrenergic and specific serotonergic antiderpressant, NaSSA)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약제가 처방된다.
비약물치료는 심층적 혹은 지지적 면담치료, 인지행동치료, 광치료, 경두개 자기자극치료 등 다양하다. 정신과에서 시행하는 각 치료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개별 환자에 맞는 치료법이 선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