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기간 중 기존 품목 판매 가능해 참여 여부 고심 … 과학적 데이터 검증 실패하면 건강기능식품 변신 전망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23일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제제의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임상 재평가 실시를 공고하면서 이 성분 의약품을 보유한 제약사들이 임상시험 진행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재평가 대상은 134개사 255개 품목으로 임상을 실시하는 경우 오는 12월 23일까지 임상시험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기한 내 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품목을 취하한다는 의견서를 내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받는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웅바이오와 종근당을 포함해 매출 상위권에 있는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제약사는 단독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만큼 자금력이 탄탄하지 않아 상위 제약사와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재평가가 진행돼 임상시험을 하는 동안에는 기존 제품 판매가 가능한 점도 참여 여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 소요기간이 약 5년 정도로 예상돼 적잖은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매출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위 제약사들이 공동 생동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단독 임상을 진행할 움직임도 보여 품목 허가를 취하하고 철수하는 제약사도 상당수 나올 전망이다. 공동 생동에 합의해도 임상비용 분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국내에서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 기억력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 의욕 및 자발성 저하, 집중력 감소(효능효과1) △감정 및 행동변화 : 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무관심(효능효과2) △노인성 가성우울증(효능효과3) 등 3개 적응증을 인정받았고 모두 보험급여를 적용받았지만 지난달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효능효과1에 대해서만 급여를 적용하기로 해 대폭 삭감된 상태다.
이 적응증을 모두 유지하려면 임상시험도 적응증 숫자와 같이 3건 이상을 진행해야 해 임상비용 부담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임상 디자인과 기간 등에 따라 비용도 달라져 정확한 임상비용 산출도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처음부터 임상을 시작해 마치기까지 수백억원 이상 소요된다.
임상 재평가를 진행해도 원개발사인 이탈리아 이탈파마코(Italfarmaco)조차 임상적 근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은 모든 적응증에 대한 근거를 확보해야 모든 적응증을 대상으로 처방이 가능하다. 임상 결과에서 일부 효과만 입증되면 적응증 삭제 등 허가사항이 변경될 수 있다.
종근당 관계자는 “세 가지 적응증 모두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공동 생동에 대해선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다른 제약사와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L-Alpha glycerylphosphorylcholine, alpha-GPC)는 이탈파마코에서 개발해 1989년 출시한 뇌기능 개선제다. 이 성분은 뇌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콜린 복합물로 알려져 있다. 혈관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뇌 내에서 콜린과 인산글리세릴탈수소효소(Glycerol-3-phosphate dehydrogenase, GPDH)로 분리된다.
콜린은 기억·학습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ACh)의 앞 단계의 물질로 뇌기능 장애 환자에 부족한 아세틸콜린을 보강해준다. 손상된 뇌세포에 직접 작용해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시킨다. 연구 결과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에 아세틸콜린의 전구물질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PDH는 탄수화물과 지질의 대사에서 매개고리로 작용하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전자수송계의 주요 기여자로 역할한다. NADH-H+가 수소 2개를 잃고 NAD+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디하이드록시아세톤인산(dihydroxyacetone phosphate)을 글리세롤3인산(glycerol 3-phosphate)으로 전환하는데 글리세롤3인산은 뇌내 미토콘드리아 내막으로 들어간다. 글리세롤3인산에 아세틸기가 붙은 아실화 과정을 거치며 아세틸콜린을 유도하는 단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치매 환자는 콜린·아세틸콜린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복용하면 증상 개선이 유도된다고 제약사들은 홍보해왔다. 하지만 출시 이후 전반적인 뇌기능 개선제의 유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도인지장애 적응증 허가에 사용된 임상연구는 1980~1990년대에 진행됐으며 임상시험의 최소 기준인 이중맹검으로 실시된 연구가 한 건도 없다. 임상 참여인원은 40~60명으로 수백명이 참여하는 요즘 임상시험과 간극이 크다. 임상 기간도 최대 90일로 짧은데다 일부 임상은 경구제가 아닌 주사제 효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처방받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2014~2018년 기준 총 151만5000여건이다. 환자 수 대비 처방 환자는 2014년 24만7000여명 중 4만명(16%)에서 2018년 40만9000여명 중 10만8000여명(26.3%)으로 급증했다.
전체 환자 4명 중 1명이 복용하는 대형 시장으로 급증하는 환자 수에 따라 급여비도 늘어 효과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정책 남발에 갈수록 악화되는 건보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치매 환자의 증상 완화보다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처방되는 비율이 90%에 달한다. 제약사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적응증이다.
이 성분 의약품의 지난해 보험급여 청구액은 3525억원 수준으로 3년간 약 28%씩 폭증했다. 약제 평균가는 400mg 기준으로 정당 480~523원 수준이다. 금융감독권 공시자료 기준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은 916억원, 종근당 ‘글리아티린’은 723억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두 제품이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 외 유한양행 ‘알포아티린정’, 프라임제약 ‘그리아정’, 대원제약 ‘알포콜린정’, 제일약품 ‘글리틴정’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지난해 8월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재평가를 미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치하고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유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건약은 심평원이 이 적응증에 급여를 인정한 근거 자료를 찾아볼 수 없거나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해 건보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약사가 재평가를 받기로 결정해도 임상디자인부터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경도인지장애를 계량화하는 지표가 별로 없어 의료진 주관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큰 탓에 개인별 해석 차가 생길 수 있다.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경도인지장애 대상 효능·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은 사실상 세계 최초다. 그만큼 임상시험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질병 특성상 관리가 어려운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임상시험 중도 탈락자들도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 재평가 기간 내 만족스런 데이터를 도출해내야 한다”며 “과학적 근거를 밝혀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공유되면 임상시험은 하되 수년간 기존 약제 판매 기간만 늘리는 꼼수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상비용 대비 판매수익의 유불리를 따져 임상 참여 진퇴 여부를 결정할 공산이 높다.
만약 임상이 성공하고 적정 데이터 확보에 성공한다면 콜린알포세레이트는 훌륭한 치매 치료제로 등극할 것으로 보이지만 임상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를 내 줄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건기식으로 분류됐으며 일본은 1999년부터 재평가를 시행해 효과가 없는 제품을 퇴출시켰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지능력 개선’ 등을 언급하며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것처럼 광고한 제약사에 제재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해외에서 건기식으로 등록됐다고 해서 국내서도 이를 곧이 곧대로 수용하는 것은 어렵다”며 “오메가3지방산의 경우 고용량은 전문의약품, 저용량은 건기식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향후 용량별로 전문의약품과 건기식 등 2가지 허가사항으로 나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재평가에 통과하지 못하면 각 제약사의 매출 손실이 예상돼 기업 보호 차원에서 건기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기업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품목을 보유한 상태”라며 “추가 발생하는 비용, 수익 등을 예측해보는 단계로 임상 추진 여부를 결정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