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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사 M&A 광풍에도 조용한 국내사들 … 중소형 제약사 타깃될까?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6-17 17:38:41
  • 수정 2020-06-22 16: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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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Z·길리어드 330조원 빅딜설, 다국적사 공룡 만들기 혈안 … 매출 1조원에 자축하는 국내사, 과감한 상상력 펼쳐야
글로벌 제약사가 빅딜을 통한 인수합병(M&A)으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도 오너경영, 제네릭 위주 사업구조 등을 극복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업계에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이 불면서 지난해 매출액 기준 세계 15위 아스트라제네카(243억달러)와 17위 길리어드사이언스(224억달러) 간 초대형 합병설이 도는 등 ‘빅파마(대형제약사, Big Pharma)’가 몸집 불리기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에 국내 제약사도 공동판매(코프로모션), 품목도입 등 기존 협력 방식보다 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가 길리어드에 제안한 인수금액은 2743억5210만달러(약 330조4000억원)으로 지난 16일 기준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시가총액 936억달러(약 112조원)의 약 3배로 아스트라제네카 본인 몸집인 1116억달러(약 133조원)보다도 2.5배 큰 금액이다. 아직까지 이 거래는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길리어드 측이 제안을 받아들여 딜이 이뤄지면 전세계 제약업계 역사상 최대 M&A가 될 전망이며, 매출액 합계 467억달러로 세계 7위 미국 머크(MSD)를 단숨에 따라잡게 된다.

이같은 인수 시도가 가능한 것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팬데믹) 중인 상황에서 당장 전세계가 필요로 하는 치료제·백신 개발에 대한 수요와 향후 시장구조 개편까지 고려한 긴 안목의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와 공동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길리어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을 승인한 코로나19치료제 렘데시비르(Remdesivir)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다케다제약은 2018년 5월 8일 희귀의약품 전문업체인 샤이어(Shire)를 62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월초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세엘진(Celgene)을 740억달러(약 89조원)에 인수했다. 이는 세계 기업 M&A 역사상 10위 규모이고 제약업계 역대 최대 기록이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애브비(Abbvie)가 630억달러(약 75조6000억원)를 들여 사들인 아일랜드 엘러간(Allergan)의 인수 절차가 마무리됐다. 항바이러스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희귀·전문의약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애브비는 엘러간의 중추신경계질환 파이프라인인 양극성장애 치료제 ‘브레일라’(Vraylar 성분명 카리프라진염산염 cariprazine HCI), 경구용 칼시토닌 연관 단백질(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CGRP) 길항제로 편두통·조현병·조울증 치료제인 ‘우브렐비’(우브로게판트, ubrogepant), 과민성대장증후군 치료제인 ‘린제스’(Linzess 성분명 리나클로타이드 linaclotide) 등을 확보했다.

반독점 규제로 인수합병이 승인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애브비는 중복 적응증을 갖고 있는 엘러간의 파이프라인인 인터루킨-23(IL-23) 저해제 브라지쿠맙(brazikumab)을 아스트라제네카에, 낭성섬유증으로 인한 외분비 췌장기능부전 치료제인 ‘젠펩캡슐’(성분명 판크레리파제, Pancreaze)과 췌장 효소제제인 ‘비오케이스(Viokace)’를 네슬레에 각각 매각한다고 지난 1월 27일 발표했다. 

국내서는 흔히 엘러간 하면 보톨리눔톡신 제제 ‘보톡스(Botox)’ 등 에스테틱 분야가 전부인 줄 알지만 엘러간은 날로 축소돼가는 외형에 희귀·전문약 개발에 노력해왔다. 애브비에 합병되면서 다소 아까울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타사에 내놓아야 했다. 

애브비는 지난해 매출 332억달러에 엘러간의 160억달러를 더해 올해는 순위가 몇 계단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 후 애브비의 지난 16일 시가총액은 1692억달러(약 203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1월 릴리는 항암제 개발 전문기업인 미국 록소온콜로지를 80억 달러에 인수했다. 글로벌 톱 제약사를 다투는 화이자 역시 지난해 6월 미국의 어레이바이오파마를 114억달러에 손에 넣었다. 로슈는 2009년 미국 제넨텍을 468억달러에 인수하며 바이오 분야 파이프라인을 대거 확충한 것은 두고 두고 성공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밖에 노바티스·미국 머크(MSD) 등 빅파마도 쉼없는 M&A 또는 사업부 분리 독립 등을 단행해 성장성 높은 제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특허·인재·기술을 흡수하고 브랜드 파워 증강, 영업망 확대 등 사업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바이오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중소 제약사나 스타트업 등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을 줄이고 개발 기간을 단축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자사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M&A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다케다의 항암제 및 희귀의약품 집중 전략은 눈에 띈다. 지난 11일 다케다제약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일반 의약품 판권을 약 3300억원에 셀트리온에 매각해 샤이어 인수 비용의 일부를 충당키로 했다.

다케다는 앞서 지난 3월 러시아·구소련독립국가연합(CIS) 지역 내 비핵심 자산을 독일 제약사 스타다(Stada Arzneimittel)에 6억6000만달러,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같은 자산을 스위스 제약사 아시노(Acino)에 2억달러에 매각했다. 지난해 7월에는 노바티스(Novartis)에 성인 안구건조증 치료제인 ‘자이드라점안액’을 53억달러에, 올해 초에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 비핵심 자산을 브라질 하이페라파마(Hypera Pharma)에 8억2500백만 달러에, 지난 5월엔 덴마크와 폴란드에 위치한 두 생산기지를 포함한 자산을 덴마크 오리팜그룹(Orifarm Group)에 약 6억7000만달러에 팔았다. 일본 내수 제약사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본 특유의 ‘조심성 안전경영’을 버리고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게 주목할 점이다.

반면 국내 제약사는 이제 막 매출 ‘1조 클럽’ 달성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물론 국내 제약사 매출 규모로는 상당한 발전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업계가 보유한 기술 수준에 비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M&A나 과감한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출 상위권에 자리한 국내 제약사는 설립부터 복제약(제네릭)을 발판 삼아 성장해 온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판매·생산하는 약이 비슷하고 글로벌 신약이 국내 출시되면 특허 무효소송이나 염 변경 의약품 특허로 대응해 계열 최초(First-in-class) 신약 개발보다는 개량신약을 만들어 기존 시장을 빼았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다른 제약사가 도전하지 않는 백신이나 바이오시밀러에 투자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이다.

제약 관계자는 “대부분 제약사가 만드는 약은 이름만 다를뿐 사실 같은 제품인 셈”이라며 “최근 국내사가 신약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특화사업에 집중하는 등 사업전략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는 오너 중심 경영이 이뤄지는 곳이 많아 M&A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문제다. 굴지의 제약사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직후 설립된 뒤 대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창업주의 회사 설립 이념을 섣불리 버릴 수 없고 M&A로 드러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오너의 자산 노출 및 삭감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다른 조직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조직 구성원 간 문제 등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전문경영인을 섭외해 오너 경영의 색을 빼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오너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한계가 존재한다. 

제약사 간 통큰 합의는 아니지만 적대적 M&A로 GC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하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다. GC녹십자는 2012년부터 일동제약 지분을 매입해 2014년 29.36%를 보유한 2대주주가 된 뒤 경영 참여와 사외이사·감사 선임에 나서는 등 의욕을 보였다. 당시 일동제약은 일동홀딩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GC녹십자의 반대로 무산됐고 업계에선 적대적 M&A 추진설이 돌았다. 경영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일동제약은 환인제약이 보유하던 주식 147억원어치를 매수하고 개인주주 안희태 씨로부터 보유 주식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이는 등 애를 먹었다. 2015년 3월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GC녹십자와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

제약사의 자금력이 뒷받침된다고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999년 한화그룹은 전문그룹 육성방침에 따라 (주)한화의 의약부문을 분사, 100% 자회사인 에이치팜을 설립했다. 2004년 한화케미칼 자회사인 드림파마에 흡수합병됐다. 2005년 한화그룹은 연 매출보다 많은 700억원을 투입하며 주력 사업으로 키우고자 했지만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 신약개발 등 신사업 발굴 대신 기존 제약업계처럼 제네릭, 불법 리베이트 등과 같은 관행에 집중한 탓에 드림파마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4년 미국 알보젠(Alvogen)에 매각됐다.


알보젠은 2012년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근화제약 경영권 50.5%를 228억원에 사들인 뒤 2014년 드림파마를 약 1945억원에 인수해 2015년 6월 알보젠코리아를 출범시켰다. 드림파마의 인수 당시 매출은 930억원 수준이었다. 알보젠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897억원으로 선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는 M&A를 통해 사업부를 정리하거나 인수한 뒤 기존 정체 상태에 있던 자사 품목과 인수한 사업부를 묶어 가치를 재산정해 파는 등 쉽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다”며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시장 선점을 위한 속도전에서 뒤처지지 않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은 오너 중심 경영 틀을 깨기 어렵겠지만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고 대형 인수합병이 어렵다면 국내외 유망 벤처·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국내 제약사 M&A는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사모펀드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유비케어를 GC녹십자헬스케어에 2088억원을 받고 팔았고, 3월엔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서울제약을 6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 5월 IMM프라이빗에쿼티는 한국콜마로부터 7500억원에 HK이노엔(옛 CJ헬스케어) 사업을 제외한 전 제약부문을 사들이는 등 꾸준히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 투자 업계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중소형 제약사 매물의 거래가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국내 제약사의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나 케미컬의약품을 기반으로 삼는 대신 바이오시밀러 개발·생산부터 시작해 미국·유럽 시장에서 급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를 기반으로 케미컬의약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존 제약사와는 다른 공략법을 펼치고 있다. 지난 11일 셀트리온이 다케다제약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일반 의약품 판권을 약 3300억원에 인수해 케미컬의약품 파이프라인과 브랜드 홍보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대웅제약은 스타트업 및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에게 사업화 검증, 기술사업화 전략지원 등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유망한 스타트업에 2024년부터 마곡 DIC(Daewoong innovation cube) 입주 혜택과 업무공간, 실험실 및 공용 장비 제공 외에 연구·생산·판매 지원 등 사업화 전주기 컨설팅에 나서고 있다. 유망 스타트업을 직접 키워 지분 투자 및 라이선스 계약 등 사업 기회를 창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기업 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성공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대형 제약사간 빅딜이 나올 가능성도 없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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