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준 인정 못 받는데다 러시아 판권은 현지 제약사 보유 … 4년째 독성시험 머문 메르스 치료제 꼴 우려
일양약품이 러시아 제약사 알팜(R-pharm)을 통해 러시아 정부로부터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캡슐’(성분명 라도티닙, Radotinib)의 코로나19 대상 임상 3상 승인을 받았다고 지난달 28일 밝힌 가운데 제대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13일 슈펙트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정부과제로 연구 중인 메르스 치료 후보물질 9종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탁월하게 억제했다고 발표했다. 슈펙트는 일양약품이 2012년 출시한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세계 네 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 국산 제18호 신약이기도 하다. 김동연 사장이 2008년 사장 취임한 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개발에 성공한 품목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고려대 의대 생물안전센터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한 바이러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슈펙트 투여군과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 슈펙트 투여군은 48시간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70% 감소한 것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보조 치료제로 사용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인 애브비 ‘칼레트라’(성분명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Lopinavir·Ritonavir)나 신종플루 치료제인 일본 후지필름 ‘아비간’(성분명 파비피라비르, Favipiravir)보다 성능이 우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비교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고 문헌검색 결과 아직 이를 입증할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 실험을 진행한 곳은 의대 미생물학교실이 주관하는 생물안전센터다. 주로 바이러스·세균에 관한 시험관실험이나 동물실험을 제약업체 등으로부터 의뢰받아 진행해 데이터를 내어주는 곳으로 연구결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저명한 바이러스 감염 전문가인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와도 거의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주식 투자자의 상당수는 김우주 교수의 이름값으로 일양약품의 연구결과를 신뢰해버릴 개연성이 존재한다.
아비간은 현재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코로나19치료제로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일본에서조차 승인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5월 중 허가가 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아베 신조 총리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승인될 가능성이 낮다. 칼레트라도 이미 중국 등에서 이뤄진 실험에서 실망적인 결과가 나와 정식 허가될 후보군에서 한참 멀어진 상태다. 다만 국내서는 가능성 있는 치료제로 현장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3월 당시 일양약품 관계자는 “이미 시판되고 있는 치료제로 안전성을 입증받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기간을 단축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치료 효과는 시험관 내 실험(in vitro) 결과로 신약개발 과정 중 가장 초기 단계다. 동물실험에 임상 1상, 2상, 3상을 거친 뒤 유효성·안전성을 입증하고 상업화 과정까지 마쳐야 치료제란 공식 호칭을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은 통상 10~15년이 걸리고, 이미 나와 있는 약을 다른 적응증으로 허가받는 데도 임상 디자인을 거쳐 2상 또는 3상부터 진행해도 최소 3~5년 이상 소요된다. 임상 3상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도 사용 과정에서 심각한 이상반응(부작용) 등이 보고되면 허가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같은 우려와 같이 일양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두 차례에 걸쳐 치료 목적 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경증 환자 대상이라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모두 반려됐다. 이에 해외 임상을 추진했는데 일반적인 임상시험 국가와 거리가 먼 러시아에서 알팜이 손을 내밀었다. 알팜은 2014년 슈펙트 수입 계약을 체결했던 제약사다.
이번 임상에 대한 모든 비용은 알팜에서 지불하고, 일양약품은 임상약으로 슈펙트를 제공한다. 임상은 러시아, 벨라루스 소재 11개 기관에서 145명의 경증·중증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2주간 투약 후 치료 효과와 유의성을 확인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가 러시아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고 성공해도 주요 국가에선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통 해외 임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러시아조차도 자국 보건부 산하 인플루엔자연구소, 연방우랄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유기종합연구소가 공동으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 ‘트리아자비린’(Triazavirin, 성분명 리아밀로비르, Riamilovir) 3상 임상을 자국이 아닌 중국에서 진행 중이다.
에볼라 바이러스, 신종인플루엔자 등 RNA바이러스 치료에 목적을 두고 개발된 리아밀로비르는 임상시험 등 검증을 거치지 않고 국내에 코로나19 치료제로 둔갑해 불법 유통되기도 했다. 한국인 A씨 등 일당 3명이 러시아 현지에서 저가에 구매한 항바이러스제 트리아자비린을 우체국 국제특송(EMS)을 이용해 소량씩 국내로 반입한 뒤 성인약품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혐의로 지난 11일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적발됐다.
업계 전문가는 일양약품이 러시아 임상에 성공해도 미국·유럽·한국 등에서 판매가 어려워 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에 한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알팜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양약품의 직접 판매 가능 국가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애초에 개발 의지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성과 등을 내걸고 러시아와 한국에서 양사가 주가 부양을 위한 재료로 활용한 뒤 별다른 임상적 성과가 없으면 쉽사리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이같은 내용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유행 당시에도 데자뷰처럼 비슷하게 일어났다.
일양약품은 2015년 7월 메르스가 국내에 유행하자 슈펙트가 대한바이러스학회와 진행한 시험관 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치료제 개발에는 진척이 없었으며, 임상시험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7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연구과제 공모에서 메르스 치료제 개발업체로 최종 선정돼 관련 연구를 진행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기초적인 동물 독성시험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1차 독성시험을 마친 뒤 장기 독성시험을 계획 중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코로나19·메르스 같은 중대한 질병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제약사가 섣부르게 치료제 효능을 발표하는 ‘설레발’ 발표가 대중에게 ‘희망 고문’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 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가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그나마 가능한 개발 시점에 대해선 ‘내후년 이후’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숱한 제약사의 코로나19 치료제 도전 소식에 주가는 출렁이지만 개발 가능성에는 큰 기대가 없는 셈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렘데시비르 등이 발병 초기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떠오른 이유는 안전성이 입증된 임상연구가 있어 즉시 3상 임상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같은 연구가 없는 후보물질은 안전성 입증부터 시작해야 해 시험관 연구로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항사이토카인 등 기전을 갖고 있다면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람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러시아 임상에 대비해 임상 샘플을 제조 완료했으며 알팜에 물량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