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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로 무게 중심 옮기는 국내 제약사 … 임상연구 확대 전망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6-11 14:59:46
  • 수정 2020-06-12 2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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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일약품·안국약품·테라젠이텍스, 신약개발 자회사 설립해 연구역량·기업가치 강화 … 보령제약, 항암사업부 부문 승격 및 집중 투자
보령제약(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제일약품, 테라젠이텍스, 안국약품 등 국내 제약사가 항암제 연구개발 조직을 확대 또는 분사하면서 신규 파이프라인 발굴과 기업가치 상승을 노리고 있다.
국내 제약사가 항암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거나 사내에서 부서 지위를 승격하는 등 미래 먹거리로 투자에 나서 활발한 연구개발(R&D)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항암제 시장은 2014년 1040억달러에서 2018년 1490억달러로 매년 9.4%씩 성장했다. 항암제 개발에는 임상 비용이 많이 들지만 상품화에 성공하면 다른 치료제 대비 수익성이 높아 매력적이다.

제약산업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a)는 세계 항암제 매출이 2024년 2366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기관에 따르면 미국에서 항암제 승인을 받기까지 드는 임상 비용은 품목 당 7억달러(약 8631억원)에 육박한다. 감염증이나 피부질환 치료제 임상 비용이 2억달러보다 세 배 이상 소요된다.

하지만 항암제의 평균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 NPV)는 782억달러로 다른 질환군보다 수익성이 월등히 높다. 순현재가치는 편익과 비용을 할인율에 따라 현재 가치로 환산하고 편익의 현재가치에서 비용의 현재가치를 뺀 값이다. 순현재가치가 0보다 크면 일단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심혈관계 치료제 임상에는 10억달러가 소요되지만 NPV는 56억달러에 그쳤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573개 중 항암제는 178개로 개발 중인 전체의 31%를 차지한다. 후보물질 도출이나 비임상 단계가 많고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품목들은 국내 임상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항암 신약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국내 제약사는 항암제 개발에 무게를 두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보령제약은 지난 5월 항암제 사업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전문의약품(ETC) 부문에 있던 ONCO(온코, 항암사업부) 본부가 부문 단위로 독립했다. 이 회사는 2014년 로슈 ‘젤로다정’, 2015년 릴리 ‘젬자주’(성분명 젬시타빈염산염, GemsitabinHCl), 2016년 삼양바이오팜 ‘제넥솔주’ 등 항암제 상품을 도입해왔다. 지난 8일엔 릴리로부터 젬자주의 국내 판권 및 허가권 등 일체 권리를 넘겨받아 이익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1000억원 안팎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으로 보령이 은행권 대출이 아닌 직접 조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보령홀딩스를 통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400억원을 추가로 마련해 1400억원의 자금이 항암 파이프라인 강화 등에 투입될 전망이다.

이 회사가 2016년부터 추진 중인 항암제 사업강화 전략 프로젝트 ‘BR2002‘는 신약 파이프라인 중 비호지킨성림프종 치료제로 개발 중인 약물의 개발명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1상을 허가 받은 뒤 올해 4월 미국에서 첫 환자가 등록해 임상이 시작됐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지난해 12월 1상 승인을 받았다.

BR2002는 암세포의 주요 성장·조절 인자인 PI3K와 DNA-PK를 동시에 저해하는 치료제다. PI3K는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을 조절하는 효소로 세포의 성장, 증식·분화, 이동, 생존 등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PI3K가 악성 종양에서 과도하게 발현되면 암세포가 증식하거나 전이된다. 종양세포의 주변 환경을 암세포 증식에 유리하도록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NA-PK는 세포의 DNA 손상을 인지하고 수선을 담당하는 효소다.

바이오의약품 파이프라인은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보완했다. 2016년 지분 투자를 진행해 면역세포치료제 전문기업인 바이젠셀 지분 29.5%를 확보했다. 이 회사는 ‘세포독성 T세포(Cytotoxicity T Lymphocyte, CTL)’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환자와 정상인 혈액에서 채취한 T세포를 항원 특이적인 세포독성 T세포로 분화·배양할 수 있다. 현재 이를 기반으로 한 림프종 치료제 ‘VT-EBV’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항암사업부를 성장 모멘텀으로 삼고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일약품은 지난달 12일 연구개발 전문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Onconic Therapeutics)’를 설립했다. 온코닉은 종양학(Oncology)에서 차용한 단어로 항암제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제일약품은 온코닉을 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과 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3종의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3~5년 내에 코스닥 시장에 기술특례상장을 병행할 방침이다.

온코닉은 신약 임상 및 상장 가속화를 위해 초대 최고경영자(CEO)로 존 김 박사를 영입했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뒤 미국 바이오젠,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국내 LG생명과학, 한미약품에서 20년 이상 신약개발을 담당했다. 먼디파마 싱가포르 법인에서 일본·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개발 총괄 디렉터로 항암제·진통제 등 라이선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차병원그룹 서울CRO 대표이사, 크리스탈지노믹스 신약개발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제일약품은 현재 PARP-1 억제제 기전 뇌졸중치료제 ‘JPI-289’와 P-CAB(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 기전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JP-1366’이 국내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JP-1366 개발이 완료되면 같은 기전 약으로 시장 독주 중인 HK이노엔 ‘케이캡정’, 임상시험 마무리 단계에 있는 대웅제약 ‘펙수프라잔(Fexuprazan)’과 함께 경쟁 구도를 이룰 전망이다.

TRPV1 저해제 신경병성통증 치료제가 전임상 후보물질 단계에 있으며, 자가포식 결핍 개선 작용으로 계열 최초(First-in-class) 근본적 당뇨병 치료 효과를 내는 자가포식증진제가 초기 연구 단계에 있다. 보건복지부 연구과제로 진행한 SGLT1·2 이중억제제(SGLT1·2 dual inhibitor) 당뇨병 치료제 ‘JP-2266’은 유럽 임상 1상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망막질환 및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인간배아세포 유래 줄기세포치료제 ‘JCT1-PD’는 지난해 6월 국내 바이오기업 에스바이오메딕스에 12억원 규모로 기술이전(라이선스아웃)해 비임상을 진행 중이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이 치료제를 제외한 나머지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신약개발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제일약품은 2019년 개별 기준 매출액 6725억원, 영업이익 34억원으로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0.5% 수준으로 나타났다. 2017년, 2018년에는 각각 1.3%, 1.2%로 이는 상품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7%에 달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직접 제조하는 ‘제품’이 아닌 ‘상품’은 판권 도입이나 마케팅 활동 등으로 들여오는 제품으로 판매 수수료가 영업이익이 된다. 제약업계 평균 상품 매출 비중은 30~40% 내외로  제일약품의 전체 매출 대비 상품 매출 비중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제일약품 관계자는 “매출 대비 영업이익이 크지 않다는 의견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며 “온코닉테라퓨틱스 설립으로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해 기업 체질 및 매출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국약품은 올해부터 항암제와 이중항체를 타깃으로 한 바이오신약 개발을 시작한다. 지난해 4월 신약연구개발 자회사 빅스바이오를 설립하고 김맹섭 안국약품 연구소장(부사장)을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대표는 한미약품에 재직하면서 ‘아모디핀정(성분명 암로디핀 캠실레이트, Amlodipine Camsylate)’, ‘아모잘탄’ 등 개량신약 개발에 앞장서며 이중항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표적항암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부산대 화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화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미약품·대웅제약 연구소장을 거쳐 2015년부터 3년 간 북경한미약품 연구센터 소장으로 근무했다.

빅스바이오는 기존 안국약품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인 화학요법 유발성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AG-B1511’과 성장호르몬 결핍증 치료제 ‘AG-B1512’, 면역항암제 ‘AG-1622’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특수 항체 개발 관련 연구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국약품 관계자는 “하반기 정도에 빅스바이오 역할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에 소요되는 자금 확보를 위한 증자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테라젠이텍스는 지난달 4일 신약개발 전문 계열사 테라젠바이오를 출범시켰다. 대표이사는 2017년부터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대표로 재직해 온 황태순 대표가 맡는다.

테라젠바이오는 유전체 분야 기술력을 활용한 맞춤형 신약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암 환자 신생항원(NeoAntigen)을 이용한 면역치료법 및 치료용 백신 등 맞춤형 항암치료 연구를 첫 번째 도전 분야로 정했다. 이 치료법은 암세포가 지닌 특이 항원(Tumor Specific Antigen)을 암 환자에 투여해 생체 내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제거한다.

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국내외 제약사의 신약개발을 지원하고 암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유전체 기반 동반진단 바이오 마커(생체표지자) 개발에도 나선다. 이 사업은 테라젠바이오가 지난 10년간 축적한 유전체 분석 및 해독 기술을 기반으로 추진된다. 이밖에 현재 진행 중인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연구 지원, 개인유전체 분석 서비스, 마이크로바이옴,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구축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2012년 테라젠이텍스는 신약개발 연구소를 바이오기업 메드팩토로 분사한 뒤 7년 만에 코스닥 시장 상장에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메드팩토는 현재 시가총액 1조1400억원 상당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모기업인 테라젠이텍스 시가총액 4100억원의 3배에 이른다.

테라젠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기업분할로 유전체 분석을 포함한 미래형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하면서 테라젠이텍스와 공동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연구개발 성과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1~2년 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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