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의 CTLA-4 억제제 후보인 트레멜리무맙(tremelimumab)의 새로운 용법에 관한 임상 2상 결과가 지난 31일(현지시각)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회의에서 발표됐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현재 방광암·두경부암·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PD-L1 억제제인 ‘임핀지주’(Imfinzi, 성분명 더발루맙 durvalumab) 단독요법과 CTLA-4 억제제인 ‘트레멜리무맙’을 포함한 다양한 면역치료제와의 병용요법을 임상 연구 중이다.
이번 연구에서 간암 환자에게 고용량의 트레멜리무맙 300mg를 먼저 투여한 후 PD-L1 억제제 면역항암제인 임핀지주를 추가로 투여해 추적관찰한 결과 환자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8.7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임핀지를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 13.6개월, 트레멜리무맙을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의 15.1개월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 임핀지와 트리멜리무맙의 가장 적은 용량인 75mg을 투여할 경우 생존기간 중앙값은 11.3개월로 성과가 가장 나빴다.
‘T300+D’로 불리는 고용량 트레멜리무밥과의 병용요법은 치료반응률(RR)이 24%로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반면 임핀지 단독요법은 10.6%, 트레멜리무밥 단독요법은 7.2%, 임핀지+ 중간용량 트레멜리무밥 병용요법은 9.5% 정도였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투자자들은 면역항암제인 임핀지와 트레멜리무맙의 이같은 효과가 낯설 수밖에 없다. 2017년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3상 ‘미스틱(Mystic)’ 시험의 실패로 이들 병용요법은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 시장 진입이 무산됐다.
이어 2018년 4월에 발표된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임상 ARCTIC, 같은 해 11월에 드러난 과거에 치료받지 않은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적응증으로 재도전한 3상 연구인 Mystic 연구도 실패해 ‘삼진’ 아웃을 당했다.
전체 폐암의 약 15%를 차지하는 소세포암에서도 비극은 이어졌다. 지난 3월 17일 임핀지+트레멜리무맙 병용요법이 3상 임상에서 실패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임핀지와 화학요법제 병용요법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소세포폐암 적응증을 획득했다. 이 병용요법은 지난해 12월 화학요법제 단독요법보다 사망위험을 27% 낮추는 것이 입증돼 FDA로부터 우선심사(priority review) 대상으로 지정됐다.
FDA가 임핀지를 소세포암 치료제로 승인한 근거가 된 CASPIAN 3상 임상은 임핀지와 표준화학요법인 에토포시드 + 백금착제 항암제(시스플라틴 또는 카보플라틴 중 하나) 병용할 경우 화학요법 단독치료군보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우월한지 알아보는 시험이었다. 연구 결과, 임핀지 병용군의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13개월, 항암화학요법 단독군은 10.3개월로 나타나 사망위험을 27% 감소시켰다. 추적관찰 결과 18개월 차 임핀지 병용군의 생존율은 33.9%, 대조군은 24.7%였다.
반면 경쟁자들은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 2019년 3월엔 로슈의 PD-L1 면역관문억제제인 ‘티쎈트릭주’(Tecentriq 성분명 아테졸리주맙, atezolizumab)와 화학요법제 병용요법이 과거에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확장성 소세포폐암(extensive-stage small cell lung cancer, ES-SCLC)의 1차 치료제로 FDA 승인을 얻었다. PD-1/PD-L1 면역항암제 중 최초의 적응증 획득이자 20여년 만에 나온 적응증 허가였다.
석달 후인 2019년 6월에는 미국 머크(MSD)의 PD-1 억제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 단독요법이 과거 백금착제 항암제 기반 화학요법제와 다른 치료제로 실패한 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차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았다.
2018년 12월에 나온 국소 진행성 두경부편평세포암(Squamous Cell Carcinoma of the Head and Neck SCCHN)에 대한 3상 ‘이글(EAGLE)’ 연구에서도 임핀지 단독요법 및 임핀지+트레멜리무맙 병용요법은 평가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참사는 계속됐다. 2020년 3월 결과가 나온 전이성 방광암 환자 추적임상(3상, Danube 연구)에서도 임핀지 단독요법 및 트레멜리무맙과의 병용요법은 약물의 안전성·내약성은 기준에 부합했지만 생존율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 임핀지는 2017년 5월 이 약물 최초로 방광암(요로상피암) 적응증을 획득했으나 유효성을 입증할 추가 임상이 필요하다는 조건으로 가속승인을 받았다.
이 분야에서는 미국 화이자와 독일 머크의 ‘바벤시오주’(Bavencio, 성분명 아벨루맙 avelumab)와 MSD의 키트루다가 각축을 벌이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옵디보주’(Opdivo, 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가 추격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는 임핀지와 다른 화학요법제의 병용요법이 방광암에서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연속되는 임핀지와 트레멜리무맙 병용요법의 임상 실패는 BMS의 CTLA-4 억제인 ‘여보이주’(Yervoy, 성분명 이필리무맙 ipilimumab)와 PD-1 억제제인 ‘옵디보주’ 병용요법이 여러 암에 걸쳐 FDA의 승인을 얻은 것과 대조돼 관측통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와 관련, 아스트라제네카의 종양학 사업부 총괄 부사장 겸 글로벌 책임자인 데이브 프레드릭슨(Dave Fredrickson)은 “프라이머(primer)로서 트레멜리무맙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연구들에서 취했던 것과 다른 접근법”이라며 “이번 소규모 연구에서 우리는 정말 좋은 효과의 징후를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번 연구가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3상 ‘히말라야(Himalaya)’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임핀지+트레멜리무맙 병용요법의 간암 치료 효과를 알아보는 임상이다. 프레드릭슨은 “몇 년간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에서 고용량 트레멜리무맙이 의미 있는 지표를 재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연구가 성공하면 아스트레제네카는 지난달 29일 간암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로슈의 티쎈트릭 및 ‘아바스틴주’(Asastin, 성분명 베바시주맙 bevacizumab) 병용요법과 경쟁에 들어간다. 로슈의 병용요법은 기존 간암 표준요법인 바이엘의 ‘넥사바정’(Nexavar, 성분명 소라페닙, sorafenib) 대비 압도적인 유효성을 보였다.
반면 MSD의 키트루다와 일본 에자이의 ‘렌비마주’(Lenvima, 성분명 렌바티닙 lenvatinib) 병용요법은 간암 환자에서 넥사바 대비 비열등성을 보이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스트라제네카만이 최대 효능을 얻기 위한 면역억제제의 우선 투여 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ASCO 2020 연구 발표에서 옵디보와 여보이 병용요법은 비소세포폐암에서 치료 초기에 두 사이클의 백금 화학요법제를 추가하면 치료반응률(RR)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했다고 지난달 26일 ASCO 2020에서 발표했다. 이는 오는 5일께 PD-L1 수치에 상관없이 PD-L1 양성이면서 EGFR 또는 ALK 변이가 없는, 과거에 화학요법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치료제 승인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프레드릭슨은 “면역항암요법에 모든 환자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며, 반응을 보여도 약한 환자가 있다”며 “적절한 약물 조합과 그에 알맞은 환자 유형에 약을 투여하는 게 중요하지만, 적절한 복용량과 약을 먹이는 순서 결정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차원의 갖가지 약효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RI벤처펀드와 클리니컬액셀레이터(Clinical Accelerator) 이사인 바네사 루시(Vanessa Lucey) 박사는 “큰 시야로 보면 임상시험 중 많은 병용요법이 시행되고 있고 특히 화학요법제와 조합한 반복적인 시험이 이뤄지고 있다”며 “BMS의 병용요법이 입증해보인 방식이 다른 종양으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