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전(血栓, thrombus )은 흡연,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 비만,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에 의해 생성된다. 혈액 중 섬유소원(Fibrinogen)과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혈구의 잔해가 비정상적으로 얽혀 피가 끈끈해질 때 생긴다. 혈류를 감소시키거나 막음으로써 조직이나 장기에 허혈성 손상을 일으킨다. 혈관 벽에 부착돼 있던 혈전이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다른 부위로 이동해 굵은 혈관을 막는 덩어리가 되면 색전(塞栓, embolism)이라고 한다. 둘을 합쳐 혈전색전증(thromboembolism)이라고 한다.
항혈소판제는 혈소판이 응집하는 것을 억제해 혈전 형성을 예방한다. 아스피린(ASPIRIN)이 대표적이다. 아스피린을 해열·진통·소염 목적으로 쓰면 하루 1000~3000mg을 복용한다. 그러나 이 용량의 10분의1 수준인 100~300mg을 매일 복용할 경우에는 뇌졸중,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
ADP수용체 길항제, 티클로피딘·클로피도그렐·티카그렐러
아스피린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2차 치료제로 P2Y12 억제제인 치에노피리딘(thienopyridine) 계열의 티클로피딘(ticlopidine),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 프라수그렐(prasugrel) 등과 이보다 다소 진보된 티카그렐러(ticagrelor), 칸그렐러(cangrelor) 등이 뇌졸중·협심증·심근경색 예방약으로 주로 쓰인다.
P2Y12억제제는 혈소판을 활성화해 혈액응고를 촉진하는 P2Y12 퓨린수용체를 억제한다. ADP 수용체 저해제(Adenosine diphosphate receptor inhibitor)라고도 한다. ADP는 주로 혈소판의 과밀과립(dense granule)에서 방출되며 혈소판의 표면형상을 변화시켜 점착과 응집을 촉진한다. 과밀과립은 ADP 외에 adenosine triphosphate (ATP), 이온화칼슘(혈액응고 카스케이드에서 필수적), 세로토닌 등을 세포외배출(exocytosis)을 통해 방출한다.
티클로피딘은 혈소판내 c-AMP(cyclic adenosine monophosphate)의 농도를 높임으로써 ADP, 콜라겐, 에피네프린에 의한 혈소판 응집 및 점착을 막는다. AMP→ADP→ATP→c-AMP→AMP로 순환하는 과정에서 c-AMP 농도가 올라가면 피드백 작용에 의해 ADP 농도는 낮아지게 돼 있다. ADP는 혈액을 순환하는 혈소판 표면의 형상을 변화시켜서 응집을 촉진하는 반면 c-AMP는 혈소판의 안정화(응집 억제)에 기여한다. 또 티클로피딘은 적혈구막을 유연하게 해 적혈구가 세포내 통로를 쉽게 통과하게 함으로써 혈액점도를 낮추는 작용도 한다.
티클로피딘은 뇌혈전 및 뇌색전에 의한 혈류장애, 심장관상동맥의 혈류장애, 이들 혈류장애로 유발된 각 조직의 궤양·통증·냉감 등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부작용 때문에 출혈, 중증 간장애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생리 중이거나 수술 직전 환자,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주의해야 한다. 장기간 복용할 경우 백혈구를 감소시키는 무과립구증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처음 3개월 동안 주기적인 혈액검사를 실시해 예방해야 한다. 유유제약의 ‘유유크리드정’(성분명 티클로피딘)이 대표적이다.
클로피도그렐은 뇌졸중, 심근경색, 말초동맥성질환, 금성관상동맥증후군(불안정성 협심증, 비Q파 심근경색증) 환자에서 죽상동맥경화 진행을 저지한다. 이 약물은 ADP가 혈소판 표면 ADP수용체에 결합하는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ADP에 의해 혈소판 응집과정이 증폭·촉진되는 것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클로피도그렐은 트롬복산(TXA₂)에 의해 유도되는 혈소판 응집을 방해하는 아스피린보다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으로 혈소판응집을 억제할 수 있다. 혈소판응집 억제효과는 아스피린보다 높고, 티클로피딘과는 동등하며 위장장애 등의 부작용은 이들 성분보다 적은 게 장점이다. 심장발작, 뇌졸중, 말초동맥경색 등 중증의 혈전색전증을 경험한 환자의 재발 예방 목적으로도 쓰인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플라빅스정’(이하 클로피도그렐), 동아ST ‘플라비톨정’ 등이 대표적이다. 클로피도그렐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프라수그렐 또는 티카그렐러를 사용한다.
프라수그렐 성분인 다이이찌산쿄의 ‘에피언트정’(EFFIENT Tab)은 플라빅스 다음 세대 약물로 꼽힌다. 클로피도그렐은 cytochrome P450 효소 중 주로 2C19에서 대사되는 반면 프라수그렐은 CYP3A4 and CYP2B6에서 대사되므로 상호 작용이 없고, 클로피도그렐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에 쓸 수 있다. 전자는 5일 만에 약효가 소진되는 반면 후자는 7일 정도가 걸린다. 또 전자는 주로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ute coronary syndromes, ACS)에 투여되는 반면 후자는 경피관상동맥중재술(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PCI) 전후 혈전 생성 위험 감소 목적에도 쓸 수 있다. 프라수그렐은 75세 이상, 체중 60㎏ 미만 노인에서는 출혈 위험 때문에 투여가 금지돼 있다.
티카그렐러는 ADP 대신 ADP수용체와 결합해 혈소판 활성화와 응집을 억제한다. 클로피도그렐과 작용 기전이 동일하지만 피카그렐러는 가역적으로, 클로피도그렐은 비가역적으로 작용하는 게 다르다. 두 약물 모두 식사와 관계없이 투여할 수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브릴린타정’(성분명 티카그렐러) 등이 있다. 클로피도그렐과 티카그렐러는 아스피린과 함께 병용하기도 한다.
칸그렐러는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뉴저지주 소재 더메디신컴퍼니(The Medicines Company,메드코)가 인수한 약으로 미국에서는 ‘Kengreal’, 유럽에서는 ‘Kengrexal’이란 제품으로 판매되는 정맥주사제다. 클로피도그렐처럼 대사된 후 약효를 발휘하는 프로드럭이 아니고 활성화된 상태로 직접 작용한다.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국내서는 허가되지 않았다. 칸그렐러는 수술 전후 경피관상동맥중재술(PCI)의 심근경색 위험을 감소를 위한 보조요법. 반복적인 심장혈관 재관류(coronary revascularization), 스텐트 삽입으로 인한 혈전(stent thrombosis, ST) 환자 중 기존 P2Y12 억제제를 사용하지 않았으면서 당단백질 수용체 길항제(glycoprotein IIb/IIIa inhibitor)를 투여하지 못하는 경우에 칸그렐러 사용하도록 FDA는 권고하고 있다.
현재 아스피린과 다른 P2Y12 억제제를 사용하는 이중 항혈소판제요법(DAPT, dual antiplatelet therapy)이 심근경색 또는 스텐트 시술 후 혈전 사건 발생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표준치료지만 미흡할 경우 칸그렐러를 쓰라는 얘기다. 기존 경구 P2Y12 억제제는 혈소판 억제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디며, 혈전 위험이 높은 환자에서 충분한 혈소판 억제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반면 칸그렐러는 정맥주사제로서 빠르고 강한 혈소판 억제 효과, 약제 중단 후 1시간 내에 가역적인 약효 소실 등의 장점이 있다.
반면 심각하지는 않지만 출혈 위험이 존재하고, 기대치보다 표준치료 대비 효과가 월등하지 않으며, 비용 대비 효과(cost-effectiveness)가 떨어진다. 칸그렐러 50mg 1병은 약 749달러 수준으로 75㎎정 당 1.5달러인 클로피도그렐(국내 1147원), 90mg정 당 1.27달러인 티카그렐러, 5mg정 당 1.04달러인 프라수그렐보다 약값이 비싸다.
PDE 억제제, 디피리다몰·실로스타졸 … c-AMP 수치 늘려 혈소판 응집 억제
c-AMP는 혈소판의 활성을 저해하는 물질이다. PDE3 효소(phosphodiesterase type 3)는 c-AMP 분해를 억제해 c-AMP 수치를 높이고, 혈소판 응집을 막는다. 실로스타졸(cilostazol), 디피리다몰(dipyridamole) 등이 있다.
디피리다몰은 혈장 아데노신(adenosine) 농도를 높여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고, c-AMP를 증가시켜 혈소판 활성화를 막는다. 심장근육에 존재하는 관상동맥을 확장해 혈액과 산소 공급을 늘리고, 동맥경화와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혈전형성을 저지한다. 주로 협심증, 심근경색, 울혈성 심부전, 혈전색전증 등의 예방 및 치료에 쓰인다. 뇌졸중만 있는 경우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 혈압약으로 개발됐으며, 저혈압 환자는 투여 시 주의해야 한다.
아스피린과 디피리다몰 복합제는 뇌졸중 예방과 심근경색 위험을 줄이는 데 많이 쓰인다. 두 성분의 약리기전은 각각 다르지만 같이 존재하면 세포 내 아데노신 소모를 억제하고 혈중 아데노신 농도를 장기간 높게 유지해 혈액응고를 막는다. 또 혈소판 내 c-AMP 농도를 높게 유지해 혈소판 안정화에 기여한다. 혈관 내피세포에서 혈소판응집을 막는 혈관활성물질인 프로스타사이클린(prostacycline, PGI2)이 생성되도록 돕는 작용도 한다. 간장애나 신장장애 및 심부전 환자에게 투여 시 신중해야 한다.
제일약품 ‘아피다몰서방캡슐’(성분명 디피리다몰·아스피린), 현대약품 ‘디피아녹스서방캡슐’(디피리다몰·아스피린), 명문제약 ‘명문디피린서방캡슐’(디피리다몰·아스피린) 등이 대표적이다.
실로스타졸은 ADP, 콜라겐, 아라키돈산(arachidonic acid), 에피네프린 등에 의한 혈소판 응집 및 점착을 막는다. 혈관평활근의 포스포디에스테라제(phosphodiesterase, PDE) 활성을 억제해 c-AMP 농도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혈소판 응집을 방해한다. 혈관을 확장하는 기능도 하기 때문에 동맥경화 진행을 저지할 수 있다. 특히 하지혈관으로 혈류를 늘리는 작용이 뛰어나 손발저림, 수족냉증 등의 허혈성 말초혈관질환에 효과적이다. 만성동맥폐쇄증, 당뇨병 합병증에 의한 궤양·통증·냉감 등을 개선한다. 뇌경색 재발을 예방에도 쓰인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실로스탄씨알정’(성분명 실로스타졸), 한국오츠카제약 ‘프레탈정’(실로스타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