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모더나테라퓨틱스(Moderna Therapeutics)가 개발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mRNA-1273’이 18~55세 성인 남녀 45명을 대상으로 한 1상 임상에서 대상자 45명 모두 항체가 형성됐다고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소식에 전세계 증시가 들썩이는 등 mRNA-1273이 팬데믹(전세계 확산)을 종식시킬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모더나의 임상은 45명의 참가자를 3개 그룹으로 나눠 2개 그룹은 mRNA-1273을 각각 25㎍(마이크로그램), 100㎍씩 1개월 간격으로 2차례 투여하고 250㎍ 투여군은 1차례 투여해 효과를 확인했다. 투여 결과 250μg을 투여한 실험군 가운데 3명에선 일시적으로 발열, 근육통·두통 등 경미한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다른 실험군에선 특이사항이 없었고 3개 실험군 모두에서 코로나19 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25㎍, 100㎍을 투여한 실험군 중 8명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가 확인됐다. 모더나 측에 따르면 이 중화항체는 코로나19 완치자에게 발견되는 자연항체보다 바이러스 대응력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번 임상은 18~55세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해 취약 연령층이 제외됐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백신은 체내로 침투한 바이러스의 항원(단백질)에 대항하는 항체(단백질)를 만들게 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기전이다. DNA 또는 mRNA 등 유전물질을 활용하는 핵산 백신(유전자백신), 바이러스 백신(약독화, 불활화 : 세균일 경우에 속칭 생균, 사균 백신으로 명명), 바이러스 벡터 백신(약독화 벡터, 복제 불능 벡터), 단백질 재조합 백신(단백질 조각, 바이러스 유사입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조된다.
이 중 코로나19 백신으로 개발 진척이 가장 빠른 플랫폼은 핵산 백신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정보를 담은 DNA 또는 전령RNA(messenger RNA, mRNA)를 체내에 들여보내 ‘가짜 돌기단백질’을 만들어 항체 생성을 유도한다. 돌기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물질이다.
미국 모더나가 개발 중인 mRNA-1273가 대표적인 RNA 백신이다. 경쟁자로 1상 후반부에 접어든 미국 이노비오(Inovio)의 ‘INO-4800’는 DNA 백신이다. 둘 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달라붙을 때 쓰는 스파이크 돌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기반으로 만든다. 백신을 주입하면 인체에서 돌기 단백질을 만들고 면역반응이 유도된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돌기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에 끼워 넣은 형태다. 중국의 칸시노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康希諾生物)가 ADd5-nCoV란 유전자재조합 백신으로 임상 1/2상 중이다.
이론적으로 유전자백신은 핵산 자체의 낮은 면역원성(항원 거부반응), 장기간 면역유도 효과, 체액성 및 세포매개성 면역반응 동시 유도, 내열성, 대량 생산 용이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역사가 짧아 장기간 면역반응이 유지될지는 확증되지 않았고, 핵산 자체에 항체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DNA백신은 플라스미드(원시적인 원형 DNA) 형태로서 숙주의 핵산에 침투하는 게 어렵다. 이 때문에 주사시 전기충격으로 숙주세포에 구멍을 내야 한다. DNA로부터 RNA가 전사된다. 반면 RNA 백신은 세포질 내로만 들어가면 항원단백질이 유도된다. 백신 개발 난도에서 RNA 백신이 DNA 백신보다 쉬운 편에 속한다.
김홍진 중앙대 약대 교수는 “DNA 백신은 근육주사로 접종할 때 가장 효율적이며 항원을 포함한 플라스미드 DNA가 세포 내로 주입되면 외래항원 단백질이 세포 표면에서 발현돼 통상 1회 주사에 1년 이상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다. DNA가 아닌 RNA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증식한다. RNA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한번 복제할 때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DNA바이러스보다 1000배 이상 높다. 다행히도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비해 코로나19는 돌연변이 누적률이 낮아 백신 개발에 더 용이하다. 쉽게 말하면 코로나19는 돌연변이를 교정하려는 능력이 인플루엔자바이러스보다 높은 ‘모범생’이어서 변이가 적다는 얘기다.
이번 모더나의 1상 임상 결과는 항체 생성 여부를 확인했지만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2상, 3상 임상에서 백신 접종을 한 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미국 의료전문지 스탯(STAT)은 모더나 측이 공개한 초기 임상 자료로는 백신 효과를 평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중화항체를 형성한 대상자 8명은 수적으로 적은 수치”라며 “나머지 인원은 아예 형성하지 못한 것인지 그 여부는 밝히지 않아 실험 결과가 불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중화항체는 백신을 접종한 뒤 2주 만에 채혈한 혈액에서 나온 것으로 항체가 얼마나 오래 생존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의료계 관계자도 “바이러스 방어 능력이 부분적으로 확인됐지만 생성된 항체가 유지되는지 여부와 면역력 지속 기간 등에 대한 추가 임상 등 검증절차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더나는 이번 1상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6월 중 600명을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55세 이상 대상자와 의료계 종사자 등 코로나19 취약군을 절반 정도 참여시킬 방침이다. 용량은 두 가지로만 이뤄질 예정으로 그 중 한 종류는 면역반응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1상 임상 최저 용량인 25㎍보다 조금 높게 설정해 최적의 용량을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모더나는 6월 중 2상을 마치고, 7월로 예상되는 수천명 규모의 대규모 3상까지 차질없이 이뤄지면 늦어도 2021년 상반기에 코로나19 백신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발 완료에 대비해 생산설비도 대폭 확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피어스바이오텍 등 현지 언론은 올 겨울 코로나19 발병 추이에 따라 새로 개발될 백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승인(EUA)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mRNA-1273은 지난 12일 FDA로부터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곳은 모더나·이노비오·화이자 등 미국 제약사 3곳, 우한생물제품연구소·베이징 시노백바이오텍(Sinovac Biotech·科興中維)·톈진 칸시노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3곳, 영국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Jenner Institute) 1곳 등으로 1상 결과를 내놓은 곳은 모더나가 유일하다. 여기에 존슨앤드존슨, 스위스 베른대,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큐어백(CureVac) 등이 동물실험 및 1상 임상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연구결과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미 투자사 체리레인 인베스트먼트의 릭 메클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효과가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가동 재개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인 많은 산업계에 확실한 국면전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기대심리가 반영돼 지난 18일 미국 나스닥(NASDAQ) 시장에 상장한 모더나 주가는 전일 대비 20% 급등한 8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이 임상결과 발표 직후 13억4000만달러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등 주가 조작과 관련된 의구심이 커지고 임상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우려가 확산되면서 19일 주가는 8.33% 하락으로 마감됐다. 시간외 거래가에선 추가로 6%대 급락이 이뤄져 총 15% 하락으로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서두르기 위한 ‘초고속 작전’ TF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백신개발 대표를 지낸 몬세프 슬라위(Moncef Slaoui)를 최고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모더나 이사로 재직하다가 TF 임명 직후 사임했으며 사흘 만에 백신 임상결과가 발표됐다. 가시적인 백신 개발 성과에 급급한 백악관의 무리한 발표가 빚은 실수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슬라위는 주가가 폭등한 18일 보유 중이던 모더나 스톡옵션을 1240만달러(약 152억원)어치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틀린 오클리 미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슬라위가 자신의 임명 직전인 지난 14일부터 발생한 모든 주식 거래 이익을 암연구에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본사를 둔 모더나는 DNA 유전정보를 세포질 속 리보솜에 전달하는 전령RNA(mRNA)를 활용해 감염병·희귀병 등에 관한 백신을 개발하는 회사다.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가 이끄는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