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유사체 약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제약업계 1위 한미약품의 당뇨병 신약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4일 프랑스 사노피가 한미의 이 계열 당뇨병 신약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권리를 반환하겠다는 의향을 통보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사노피는 사실상 계약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사노피를 대신할 글로벌 판매 담당 파트너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번에는 아예 권리를 반환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는 지난해 9월 1일자로 부임한 폴 허드슨(Paul Hudson) 사노피 CEO가 기존 당뇨병, 순환기질환 중심의 회사 주력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항암제 및 희귀질환신약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한 데다가 노보노디스크와 릴리의 유망 제품이 GLP-1 유사체 시장에서 추격을 불허할 만큼 앞서가고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폴 허드슨은 지난해 12월 9일 25억달러를 들여 항암제 확보를 위해 신톡스(Synthorx)를 인수했다. 다음날엔 벤처기업 온듀오(Onduo)와 맺은 가상 당뇨클리닉 상담사업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같은 달 2일에는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심부 체강 창상피복재(유착방지제) 세프라필름(Seprafilm Adhesion Barrier) 사업을 3억5000만달러에 미국 박스터(Baxter International)에 넘겼다. 오직 돈만 보고 가겠다는 사노피 최초의 영국계 글로벌 CEO다운 거침없는 행보였다.
지난달 사노피는 R&D파이프라인에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삭제했다. 이후 한달 만에 개발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는 한미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한미는 원래 진행 중인 임상 3상시험 5건을 완료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거의 5개월 만에 일방적으로 약속 파기를 당했다. 한미는 법적 소송을 통해 피해 배상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 이런 사유로 배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다만 실제 소송을 걸지는 두고 봐야 하며, 무엇보다도 회사의 신뢰도에 멍이 가는 타격이 크다. 사노피로서는 패소로 인한 몇 천만달러 내지 수억 달러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GLP-1 유사체에 들어갈 경제적·시간적·인적 투입을 줄이는 게 이익이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한미약품은 당뇨병 신약후보 3개를 사노피에 판권을 넘겨주면서 계약금 4억유로, 마일스톤 35억유로 등 총 39억유로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 중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기술이전으로 받은 계약금은 2억유로에 달한다. 두 차례의 수정계약을 거쳐 한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됐으나 청천벽력 같은 계약 해지로 쇼크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한미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쟁력을 동일 계열 의약품과 비교해본다.
한미 ‘에페’ vs 노보 ‘삭센다’ & ‘오젬픽’ … 혈당강하 효과는 다소 우위, 체중감량선 열세
2019년 10월 15일 ‘Diabetes In Control’에 게재된 임상논문에 따르면 에페글레나타이드 3mg 및 4mg, 노보노디스크의 오래된 당뇨병 치료제 ‘빅토자주’(Victoza 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 Liraglutide) 1.8mg을 주 1회 용법으로 투여해 혈당강하 효과 비교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가 다소 우위를 보였다. 12주 동안 진행된 임상에서 에페 3mg, 에페 4mg, 빅토자 1.8mg 투여군의 당화혈색소(HbA1c) 감소 효과는 각각 1.41%, 1.61%, 1.38%였다.
당뇨병 환자의 체중 감소 효과는 에페 3mg군이 2.73㎏, 에페 4mg군이 0.31㎏이었다. 반면 빅토자 1.8mg 투여군은 3.21㎏ 체중이 빠졌다.
빅토자주와 동일 성분으로 비만치료제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게 바로 ‘삭센다주’(Saxenda 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 Liraglutide)이다. 혈당강하 효과에서는 에페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비만치료제로서는 유망하지 않다는 단서를 보여줬다.
또 지난해 7월 2일 ‘Diabetes, Obesity & Metabolism’에 등재된 논문에는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에페 4mg 주1회 용법, 에페 6mg 주1회 용법, 에페 6mg 격주 용법, 에페 8mg 격주 용법의 20주간 체중감량 효과가 실렸다. 연구 결과 각각 6.5㎏, 7.2㎏, 6.3㎏, 6.9㎏씩 감량됐다. 위약군 대비 6.7%, 7.3%, 6.7%, 7.4%씩 체중감량이 이뤄졌다.
삭센다는 1년 만에 당뇨병이 없는 환자군에서 위약군 대비 4.5%, 당뇨병 환자군에서 3.7%의 체중 감소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어 비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결과는 한미에게 긍정적이었다.
지난 13일(현지시각)에 공개된 노바티스 주1회 투여 GLP-1 유사체 ‘오젬픽’ 주사제 (Ozempic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Semaglutide, 국내 미시판)는 비만한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주간 2.4mg로 주사치료한 결과 89%(903명 중 802명) 평균체중이 처음 107.2kg에서 96.1kg으로 11.1㎏ 감소했다. 20주 후 802명을 대상으로 48주를 추가한 연장 임상에서는 오젬픽 투여군의 평균 체중이 7.9% 감소한 반면 이 약을 투약 받지 못한 사람들은 체중이 6.9% 증가했다. 다른 비만 치료를 받지 않고 오직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사람은 68주 동안 평균체중이 18.2% 줄었다. 당뇨 여부와 상관없이 과체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몇 달 안에 판독될 예정이다.
한미 에페와 오젬픽과의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적어도 체중감량 부문에서는 오젬픽의 독주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아직 당뇨병 주사제 주도권은 릴리 ‘트루리시티’에 … 1분기 매출만 12억달러 이상
글로벌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는 릴리의 주 1회 투여하는 GLP-1 유사체 ‘트루리시티일회용펜’(Trulicity, 성분명 둘라글루타이드 dulaglutide)’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지난 4월 릴리의 실적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트루리시티 매출은 12억2940만달러였다. 전세계 글로벌 매출은 지난해 41억3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9% 성장했다. 국내서는 2016년 출시 이래 보령제약과 공동 판매 중이다.
삭센다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점유율 56%(2019년 기준)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56억8000만DKK(8억23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7% 상승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3분기 1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4분기에는 56억원으로 비만치료제 매출 1위에 올랐다. 2019년에는 1~3분기에만 316억원 매출로 1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오젬픽은 지난 1분기에 47억6000만덴마크크로나(6억8800만달러) 어치가 팔려나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축(사재기)의 영향도 있지만 전년 동기 14억3000만덴마크크로나(DKK)의 3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시장조사기관 IMS헬스 데이터에 따르면 트루리시티의 지난해 국내 전체 매출액은 약 375억원으로 전년 대비 100억원 이상, 약 39%에 이르는 성장을 이뤘다.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당뇨병 주사 치료제 시장 내 점유율은 전년 대비 약 5% 성장한 28.6%다. 기저인슐린을 제외한 GLP-1 유사체 시장에서는 84.6%를 차지하고 있다.
트루리시티는 심혈관질환 1차 및 2차 예방약 자리도 선점했다. FDA는 지난 2월 21일(현지시각) 심혈관질환(CVD)이 있거나 다양한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를 동반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위험을 낮추는 치료제로 둘라글루타이드를 승인했다. 둘라글루타이드를 제외한 다른 GLP-1 제제는 심혈관질환 2차 예방에 대해서만 허가받았다. 오젬픽도 조만간 1차 예방제로 승인이 기대된다.
그러나 트루리시티의 아성에 오젬픽은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로서도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금을 내려하고 있다. 오젬픽은 이달 초 공개한 임상 2상 연구 결과 한자의 59%에서 NASH 증상이 해소되는 효과를 보였다. 오젬픽은 2023년에는 삭센다의 특허가 만료되면 당뇨병, 비만, NASH 등에서 뒤를 이을 탄탄함을 갖추고 있다.
GLP-1 유사체란?
GLP-1 유사체는 체내 호르몬인 글루카곤양펩타이드-1(glucagon-like peptide 1, GLP-1)과 유사한 작용을 나타내는 약물이다. GLP-1은 음식물 섭취에 따라 분비되고, 강력하게 인슐린 분비를 자극한다. 장관 내 영양분과 혈당 농도에 자극을 받을 때만 분비되기 때문에 기존 당뇨병 치료제에서 나타나는 저혈당을 유발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당뇨병 치료에서 GLP-1 유사체는 체내 GLP-1의 양을 늘려 인슐린은 더 많이 분비되고 혈당은 낮추는 원리를 이용한다. 체내 GLP-1은 △인슐린 분비 증가 △췌장 내분비 조직인 랑게르한스섬을 구성하고 인슐린을 생성·분비하는 β(베타)세포의 분화와 증식 △혈당 상승을 유도하는 글루카곤 분비 억제 등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반감기가 2분 정도로 매우 짧아 약으로 개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GLP-1은 ‘DPP4’라는 효소에 의해 분해되며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에 GLP-1와 기능은 같으면서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개발된 게 GLP-1 유사체다. 당화혈색소를 평균 1~1.5% 낮추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GLP-1수용체 유사체를 투여해 GLP-1의 작용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엑세나타이드(exenatide, 아스트라제네카, 상품명 Byetta), 리라글루타이드, 릭시세나타이드(lixisenatide, 사노피, 유럽 상품명 Lyxumia, 미국 상품명 Adlyxin), 둘라글루타이드 등이 있다. 한미의 에페글레나타이드도 이에 진입하려는 신약후보다.
GLP-1 유사체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위장장애다. 위장관계 운동성을 저하시키는 작용이 있어 구토, 변비, 복통, 소화불량 등이 흔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대개 사라지게 된다. 체중감소, 식욕감소 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혈당관리 및 비만해소 차원에서는 긍정적이다. 단독요법 시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설포닐우레아계 약물과 병용하면 저혈당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