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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제약 ‘게보린정’ 공급가 15% 인상 … 15세 미만 여전히 복용 안돼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5-14 09:14:33
  • 수정 2020-05-16 1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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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제품 리뉴얼·이부프로펜 성분 연질캡슐 제형 출시로 OTC 강화 … 개발·마케팅 비용 약국·소비자에 전가 ‘부담’
삼진제약이 지난 4월 리뉴얼한 ‘게보린정’(왼쪽)과 지난 2월 새로 선보인 ‘게보린소프트연질캡슐’
출시 40년이 넘은 국산 진통제인 삼진제약 ‘게보린정’(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이소프로필안티피린·카페인무수물) 10정짜리 약국 공급가(유통업체 G사 기준)가 지난 4월 2700원에서 3100원으로 약 14.8% 인상됐다. 이에 지역 약국가에선 적정 판매가를 인상하고 나서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진제약은 지난해부터 수개월 간 게보린 공급가 인상 여부를 놓고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가격 인상은 4년 만에 이뤄졌다. 2016년 2월에 15%를 인상했다. 2007년에 올린 뒤 9년만에 가격을 올린 것에 비하면 인상 주기가 짧아졌다.

의약품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이미 가격이 인상될 조짐이 보였다”며 “다른 제약사가 너도나도 대표 진통제 품목 가격을 올리면서 게보린도 동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통제는 일반 소비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약이라 마케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투입되는 게 가격상승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A약국 G약사는 “게보린은 일반 손님들이 자주 찾는 진통제인데 가격이 원래 고가인데다 인상 폭도 높은 것 같다”며 “제약사의 가격 인상은 구입하는 소비자와 판매하는 약사 모두에게 부담을 줘 달갑지 않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이날 G약사가 속한 약사 커뮤니티에선 적정 판매가를 3500원으로 설정한 뒤 이 가격을 잘 지켜달라는 당부의 글이 올라왔다. 

1979년 허가받은 ‘게보린정’은 삼진제약의 간판상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안전성 논란이 이어져왔다. 이 약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은 두드러기·구토·식은땀·숨가쁨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과립구 감소증을 유발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재생불량빈혈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이 성분이 골수의 정상 기능을 방해해 과립구가 감소하고 세균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같은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IPA로 진통제를 만들던 많은 제약사는 성분 변경 제품을 내놓거나 철수했다. 이 성분의 사용을 금지한 외국도 꽤 많다. 

2010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혈액학적 부작용이 있다는 우려에 따라 IPA 성분이 든 게보린 등 진통제에 대해 ‘15세 미만 투여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IPA 성분이 함유된 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를 상대로 IPA제제에 대한 안전성 검토를 하지 않을 경우 품목취하 결정을 내리겠다고 압박했다. 당시 11개 품목이 취하됐고 동아제약은 IPA를 에텐자미드(ethenzamid)로 대체한 ‘암씨롱큐정’(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종근당도 이와 동일한 성분의 ‘펜잘큐정’(아세트아미노펜)으로 정책에 순응했다. 하지만 삼진제약은 IPA 성분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논란 끝에 식약처가 2015년 4시간 이상 간격 복용, 단기복용 원칙, 15세 미만 소아 및 혈액이상 환자 복용 금지 등의 주의사항을 표기하면 시판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태가 수습됐지만 부작용을 겪은 환자와 관련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현재 IPA 성분으로 국내 시판 중인 완제의약품은 게보린과 바이엘의 ‘사리돈에이정’ 뿐이다.

이같은 비판을 의식해 삼진제약은 지난 2월 ‘게보린소프트연질캡슐’(성분명 이부프로펜·파마브롬, ibuprofen·pamabrom)을 새로 출시하고, 4월엔 기존 게보린정을 리뉴얼 출시하는 등 제품 개선작업을 마쳤다. 최근 국내 제약사를 중심으로 일반의약품(OTC)을 키우는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로 보인다. 일동제약 ‘아로나민골드정’, 대웅제약 ‘임팩타민정’, 동국제약 ‘센시아정’ 등 대표적 OTC들이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게보린 소프트 연질캡슐은 기존 게보린정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대신 이부프로펜과 파마브롬을 선택했다. 이 두 성분의 복합 작용으로 하복부 통증, 요통, 근육통을 비롯해 골반과 가슴의 둔중감을 완화시킨다. 이부프로펜 성분 함량은 250mg으로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200mg의 제품 대비 함량이 높으며, 파마브롬은 이뇨작용을 도와 월경 부종과 생리통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 더욱이 액상형 연질캡슐이라 체내흡수율이 높고 빠른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만 11세부터 복용이 가능해 기존 게보린정보다 소비자층이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제품 출시 시점에 공교롭게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전세계로 번지면서 이부프로펜 성분 의약품 복용이 위험할 수 있다며 아세트아미노펜으로 대체 처방하라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국제학술지 랜싯(The Lancet)은 이부프로펜과 같은 소염제 때문에 특정 효소 작용이 촉진돼 코로나19 감염이 더 쉽게 이뤄지거나 증세가 악화할 수 있다는 가설을 소개했다. ACE2의 발현을 증가시키는 일부 고혈압약이나 이부프로펜(소염진통제) 성분 등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촉발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ACE2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과정에서 출입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약물 연관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부프로펜 중단 권고를 철회한 상태다. 

지난 4월 22일 리뉴얼 출시한 아세트아미노펜과 IPA 성분의 게보린정은 제제 개선에 초점을 두고 정제 사이즈를 기존 제품의 90%로 줄여 여성과 고령자의 복약 편의성을 높였다. 또 소비자들이 빠른 효과를 원하는 점을 반영해 속효성을 개선했다. 균질과립화 기술을 적용해 붕해 속도를 3배 높여 신속한 흡수가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15세 미만 소아에는 여전히 투여해선 안 된다. 

2011년에는 15세 미만 소아 투여가 금지된 약인데도 광고모델로 걸그룹 ‘걸스데이’를 기용해 대한약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고 촬영을 강행하려다 국회와 약사회의 경고로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약사회는 “게보린은 의약품 안전성 문제로 15세 미만 투여가 금지됐기 때문에 유명 아이돌 그룹의 대중광고를 통해 청소년 오남용을 부추길 가능성을 사전 차단해야 한다”며 “신규 생산분부터 의약품 포장 용기에  ‘15세 미만 복용금기’ 문구를 표기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같은해 10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게보린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용도로 악용돼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 중인데도 삼진제약은 이런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기 걸그룹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다”고 지적, 광고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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