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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준 그대로 꺾이지 않은 고고한 자존심, 부르고뉴 와인
  • 김지예 ·소믈리에 기자
  • 등록 2020-03-23 18:20:49
  • 수정 2020-03-25 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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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노누아·샤르도네 단일 품종 고집, 좁은 경작지에 수많은 생산자 … 최고가 와인 '로마네 꽁띠'로 유명

부르고뉴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로 와인의 맛을 향상시키는 보르도와인과 달리 그해 그 땅이 가진 떼루아를 충실하게 빈영한다는 점이다. 부르고뉴 메인 광장. 출처 : 픽사베이
와인 회사 근무 시절, 사장을 모시고 외부 손님과 식사를 가지는 일이 잦았다. 안부를 나누고 나면 의례히 선호하는 와인 종류에 대한 질문이 오간다. 누군가 “프랑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 좋다”고 답하자 “아이고, 여기 집 날리실 분 계시네”라며 화답했다. 그렇다. 부르고뉴 와인에 빠지면 집 한 채는 거뜬히 날아갈 수 있다. 그만큼 비싸고 귀하고 까다로운 와인이다.
 
보르도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스타일  … 인간의 보르도, 신의 부르고뉴

와인에 대해서 좀 안다 하는 사람들도 부르고뉴 와인을 처음 접할 때 당황하기 마련이다. 흔히 알려진 와인의 기준에 부합되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보틀 모양, 글라스 모양도 초짜에겐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병 모양은 좁고 길쭉한 보르도 스타일이다. 반면 부르고뉴 스타일은 보틀이 통통하고 주둥이로 이어지는 곡선이 부드럽다. 글라스도 보르도는 립과 볼의 넓기 차이가 크지 않은 데 비해 부르고뉴는 볼이 넓고 립이 좁아 향을 가두기에 효과적이다. 보르도는 포도원을 ‘샤또’라고 부르지만 부르고뉴에서는 ‘도멘’이라 부른다.
 
같은 프랑스인데도 이렇게나 다를까. 보르도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은 자주 라이벌로 거론된다. 걸어온 길도 다르다. 브르고뉴는 이미 1855년에 ‘그랑크뤼 클라세’를 지정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각종 기술과 자본을 집약해 현대 와인의 기준점을 마련했다. 하지만 부르고뉴는 오랜 시간 이어온 제 스타일을 유지하며 보르도만 만들어낸 메인 스트림에 끼어들길 거부한다. 자신만의 스트림도 그만큼 파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인 자크 페랭(Jacques Perrin)은 “보르도 와인은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신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까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 등 3~4개의 포도 품종을 가장 적절한 비율로 섞어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보르도는 와인 기술의 정수가 모인 곳이다. 반면 부르고뉴 레드와인은 피노누아(Pinot Noir), 화이트와인은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만으로 빚는다. 단일 품종인 탓에 양조 중 인간의 잔기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직 재배된 그 해 땅의 특성(terroirs, 떼루아)을 순수하게 반영한 와인이 탄생한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수많은 차이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최고를 만들어내는 인간과 신이 준 그대로를 향유하는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의 차이다.
 
오직 피노누아만 심으라 … 왕족의 오만함에서 시작된 부르고뉴 와인
 
부르고뉴의 자존심, 혹은 오만함은 일종의 영혼과도 같다. 귀족적 오만함에서 태어난 게 부르고뉴의 와인이기 때문이다. 부르고뉴는 프랑스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여느 프랑스 와인의 역사가 그러하듯 1세기에 로마인들이 넘어오면서 이 지역에서도 와인을 위한 포도 재배가 시작됐다.
 
로마인이 물러간 후에는 미사주가 필요했던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와인 재배가 이어졌고, 11세기 이후 십자군전쟁이 시작돼 국내외에서 와인 수요가 커지면서 와인 재배는 사업으로 변화하게 된다. 수도원들은 적극적으로 와인을 생산, 판매해 부를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과 경쟁하기 위해 와인 생산기술이 발달하고, 지역적인 특색이 자라잡게 된다. 당시 부르고뉴 와인은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떨어져 나온 '시토(Cistercian) 수도회'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부르고뉴를 완성한 이는 13세기 초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다. 당시 부르고뉴에서는 피노누아와 가메 두 품종의 포도가 주로 재배됐는데, 맛과 향이 뛰어난 대신 기르기가 까다롭고 수확량도 작은 피노누아 대신 병충해에 강하고 어느 기후에서나 쉽게 잘 자라는 가메(Gamay) 품종이 농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섬세한 맛의 부르고뉴 와인을 사랑했던 필리프 왕은 자신이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을 지키고자 가메 품종의 포도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부르고뉴에서는 오직 피노누아 품종만 기르도록 명령했다. 심지어 그는 ‘향을 더 감미롭게’ 하기 위해 땅에 비료를 뿌리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 때부터 생산자들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품종의 포도를 비료도 없이 키워내며 필리프 2세 등 VVIP의 입에 맞는 수준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극한의 도전을 이어와야 했다. 부르고뉴 와인의 오만한 자부심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참고로 필리프 2세 의해 부르고뉴에서 퇴출된 가메 품종은 부르고뉴 남쪽 한켠 보졸레 지방에서만 살아남아 ‘햇와인’인 보졸레뉴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샤블리, 꼬뜨 드 뉘, 꼬뜨 드 본, 꼬뜨 드 샬로네즈, 마코네 … 생산지역마다 다른 특성
 
부르고뉴 와인이란 프랑스 남동쪽 부르고뉴 지역과 샤블리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통틀어 일컫는다. 보르도 와인 생산지를 메독, 그라브, 소테른, 바르삭, 쌩떼밀리옹, 포므롤로 나누듯 부르고뉴 와인 생산지는 샤블리, 꼬뜨 드 뉘, 꼬뜨 드 본, 꼬뜨 드 샬로네즈, 마코네 5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경우에 따라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을 묶어 꼬뜨 도르라 평하기도 한다.
 
가장 북쪽에 있는 샤블리는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생산지다. 반짝이는 황금색, 산뜻한 신맛, 신선하고 깨끗하면서도 아로마가 풍부한 뒷맛을 자랑한다. 다만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품질이 해마다 달라 변덕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볕을 잘 받는 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꼬뜨 드 뉘의 다른 이름은 황금의 언덕이다. 가장 복합적이고 섬세하고 깊은 향을 가진 와인이 이 곳에서 만들어진다. 본 로마네, 클로 드 부조, 샹볼 뮈지니, 마르사네 등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상징적인 밭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꼬뜨 드 뉘 옆의 꼬뜨 드 본은 레드와 화이트 모두를 생산한다. 둘 다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레드는 뽀마르·라뚜와 등이, 화이트는 퓔리니 몽라셰·샤샤뉴 몽라셰가 특히 유명하다.
 
꼬뜨 드 샬로네즈는 코뜨 도르의 남쪽에 위치한다. 큰 굴곡 없이 볕을 나누고 있는 꼬뜨 도르와 달리 꼬뜨 드 샬로네즈는 언덕과 계곡이 이어져 있어 밭마다의 편차가 매우 큰 편이다. 레드, 화이트, 클레망(스파클링 와인) 모두 생산한다.
 
마코네는 꼬뜨 드 샬로네즈에서도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서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지역보다 포도밭이 가장 넓은 지역이다. 언덕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토양과 고도를 가져 향미가 달라진다. 레드, 화이트를 생산하는데 푸이이 퓌세, 생 베랑 등 화이트 와인이 명성을 얻었다.
 
10m만 떨어져도 다른 떼루아, 작게 나눠진 밭 … 네고시앙 등장으로 본격적 마케팅

부르고뉴는 먼 옛날 바다였던 땅이 융기해 만들어진 완만한 경사 구릉지다. 성격이 다른 토양이 복잡하게 겹쳐 있는 게 특징이다. 단 10m만 떨어져도 떼루아가 완전히 달라져 생산되는 와인의 성격이 변한다. 물론 그 테루아에 따라 와인의 품질과 가치는 매우 달라진다.
 
그래서 부르고뉴의 밭은 아주 작은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 이를 도멘이라고 한다. 여기에 프랑스 혁명 당시 정부의 개입 등으로 수도원 소유의 도멘이 개인에게 나뉘어져 갈리고 다시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또 쪼개졌다. 현재 부르고뉴 도멘은 110여개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밭주인이 와인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보르도는 와인 생산자가 넓은 와인 밭은 가지고 원하는 포도를 길러내서 자신의 와인을 생산하지만 부르고뉴는 와인 생산자가 유명 밭과 계약을 맺고 와인을 만든다. 한 밭에 난 포도로 여러 생산자가 와인을 만들다 보니 생산량은 작아지고 와인 종류는 많아졌다. 예컨대 유명 와인 밭 ‘클로 드 부조’에서 난 포도로 80여명의 생산자가 저마다의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같은 지역이라도 밭에 따라 가격과 맛이 다르고, 거기서 또 생산자에 따라 또 맛과 가격이 달라지는 셈이다. 농사부터 생산까지 책임지는 보르도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이런 부르고뉴의 특성은 1700년대 파리와 부르고뉴를 잇는 도로가 생기고, 1832년 부르고뉴 운하, 1851년에 파리로 가는 디종철도가 생기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유통이 원활해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부르고뉴 와인의 수요가 늘어났지만 지역 단위의 작고 영세한 와인 생산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게 네고시앙이다. 네고시앙은 여러 도멘에서 포도를 사서 빚거나, 농가에서 만든 원액을 섞어 새로운 와인을 만들어 내는 와인 생산자이자 중간 상인의 역할을 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비로소 부르고뉴는 해외에 대한 본격적인 마케팅과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부르고뉴 와인에서는 이 네고시앙의 역할이 떼루아 다음으로 중요하다.
 
가장 유명한 부르고뉴 5대 네고시앙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메종 J. 페블리(Maison J. Faiveley), 메종 조제프 드루앙(Maison Joseph Drouhin), 메종 루이 라투르(Maison Louis Latour), 메종 루이 자도(Maison Louis Jadot), 메종 르로이(Maison Leroy)등이 있다
 
세계 최고가 와인이자 부르고뉴 와인의 상징, ‘로마네꽁띠’가 지난해 12월 국내 편의점에서 3800만원에 예약 판매됐다. 사진 출처: GS25
사고 싶어도 쉽게 살 수 없던 최고가 로마네꽁띠 … 얄밉도록 고고한 와인
 
여러 이유들로 부르고뉴 와인은 소량 생산, 높은 가격이 유지된다. 경매에서 특별한 사연을 가진 와인을 제외하고 브랜드로서 가장 비싼 와인도 브로고뉴에 있다. 부르고뉴 꼬뜨 드 뉘 지역의 ‘본 로마네’ 밭 포도로 만든 로마네꽁티(ROMANEE CONTI)가 그 중인공이다.
 
트랙터 대신 쟁기로 밭을 갈고, 50년생 포도나무 3그루의 포도로 겨우 1병을 만드는 유난스러운 생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로마네꽁띠는 2005년 한병의 소매가가 무려 2만5000유로였다.
 
와인사에 근무하던 2008년 VIP 고객 한 명이 로마네꽁띠 구하고 싶다고 해서 해당 팀이 수소문 하느라 진땀을 뺀 일이 있다. 당시 로마네 꽁띠는 국내에 단 12병만 수입됐다. 돈만으로는 구입할 수 없어 수입사가 내부 기준으로 고객을 줄 세워 판매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업계에서 돌아다녔다.
 
당연히 빈병마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윤은혜가 출연한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에 사용하기 위해 회사에서 빈병을 제공했던 적이 있다. 공병이라고 별 생각없이 받아들던 철없는 기자에게 와인아카데미 담당자는 엄중하게 경고했다. 깨지면 200만원을 물게 하겠다고. 다행히 촬영장에서 빈병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반납하는 순간까지 위축됐던 슬픈 기억이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12월 GS편의점에서 로마네 꽁띠를 3800만원에 예약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쉽게 살 수 있게 됐단 말인가? GS측에 수입처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허탕이었다. 다만 편의점을 통해 로마네 꽁띠를 예약한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가까이 와 주지 않는 고고하고 얄미운 와인이다. 그래, 그게 부르고뉴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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