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급조치로 거래처 3000곳 추가 확보 … 지난해 5월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 70% 매각, 영부인 연관설 루머
정부가 의약품 도매업체인 ‘지오영’과 ‘백제약품’을 공적마스크의 약국 유통채널로 지정한 것을 두고 도매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의혹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으로 마스크 총 생산량의 80%를 공적마스크로 지정하고 가격과 유통을 통제했다. 마스크의 저렴한 가격 보장과 혼선이 없는 유통을 위해 두 도매상에게 맡겼다는 게 정부의 해명이지만 시중에는 청와대 개입설과 중국계 자본의 지오영 지배에 대한 비판론이 등장했다.
지오영과 거래하는 약국은 국내 전체 약국의 60% 수준인 약 1만4000개에 달한다. 이 업체는 이번 수급 안정화 대책을 통해 거래처를 3000개 더 늘려 1만7000개로 확대했다. 지오영이 공급하지 않는 약국 약 5000개는 백제약품이 담당한다. 이들 업체는 거래처 확대와 부가적 수입 특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 지오영은 연 매출 1조5768억원, 백제약품은 1조3032억원을 올리는 거대 도매상이다.
약국 유통망 깐 덕택에 한 달에 두 도매업체가 480억 가져가
일각에선 지오영과 백제약품이 장 당 500~600원의 유통 마진을 남긴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됐지만 실제 추정치보다는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두 업체는 정부가 제조업체와 계약한 단가인 900~1000원에 마스크를 공급받아 약국에 장당 1100원에 넘긴다. 1장당 100~200원의 마진을 챙긴다. 1일 국내 전체 생산량의 80%인 800만장을 공급하면 하루 순익이 8억~16억원에 달하고 한 달이면 240억~480억원을 챙기게 된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공적마스크의 소비자가격은 1장당 1500원으로 약국에선 장당 400원을 남긴다. 여기서 부가가치세 136원과 카드결제 수수료 30원을 뻬면 234원 정도다. 약국 1곳 당 1일 공급량인 250장을 팔면 5만8500원이 남는 셈이다. 마스크 구매자가 몰리면서 처방조제 손님까지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약국은 손해라는 게 약사들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L약사는 “약사가 많은 큰 약국이라면 처방조제와 마스크 업무 분업이 가능하지만 영세 약국은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하기가 너무 벅차다”고 토로했다. 약사들의 호소가 지속되자 서울시는 한시적 방법으로 서울시약사회를 통해 오는 11일부터 약국 2500개소에 3시간씩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약국은 업무 증가에 짜증난 손님 대응에 울상 … 공무원은 뭐 하나?
현장에선 여전히 원활한 공급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10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의 한 약국에는 ‘공적마스크 품절, 언제들어올지 저희도 모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인근 다른 약국을 찾았지만 번호표 배부가 끝난 두 곳을 제외하곤 마스크가 입고되지 않았다는 곳이 많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사무소 등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을 놔두고 민간에서 부담을 떠안아야 하냐는 글도 눈에 띈다. 한 네티즌은 “마스크 생산자에겐 보상도 없이 일괄 단가로 공급하라는 정부가 공급도, 판매도 일선 도매상과 약국에 떠넘기면 공공 영역에선 하는 일이 도대체 뭐냐”며 “정부는 생색만 내고 민간이 실무를 떠맡는 이상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어 “마스크 제조업체 중 영세업체는 대형업체보다 생산 단가가 높은데도 정부가 일괄 가격을 매긴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물량을 넘기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른 네티즌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직접 약국까지 가는 게 불편한 점을 감안해 지역별 통장 네트워크를 활용해 분배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겠나”라는 의견도 내놨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조달청 등은 지난 9일 “마스크 판매처는 공공성과 접근성, 유통업체는 효율성을 최대한 고려한 것으로 유통업체에 독점권을 부여한 게 아니다”라며 “공적마스크의 약국 판매를 위해선 전국적 약국 유통망과 전문성을 보유한 두 업체 선정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지오영과 백제약품 유통마진에 대해선 “최근 전국적으로 급증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매일 밤샘 배송과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며 “물류비, 인건비 인상분 등을 고려할 때 과도한 마진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르면 두 업체는 마스크 수급안정화 대책 이후 24시간 유통체인을 가동해 공장 출고분이 그 다음날 전국 약국으로 배송되도록 하고 있다. 또 물류창고에서는 배송받은 벌크 마스크 포장을 1인 2매로 판매할 수 있도록 재분류·포장하면서 밤샘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마스크를 빨리 공급해야 되는 상황에서 전체 약국 거래처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이 지오영이고 우리는 하루에 2~3회 배송을 해 신속한 공급이 가능하다”며 “2위 백제약품까지 1, 2위 업체를 넣은 것이 무슨 특혜인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전체 의약품 도매업체가 가입돼 있는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이번 정부 조치의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협회 관계자는 “지오영과 백제약품이 공적마스크 유통채널로 결정됐다는 것은 언론을 보고 알았다”며 “협회 차원의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계 자본으로 운영되는 지오영? … 지분 70% 매각 사실
지오영의 지분 대부분을 중국계 투자회사가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오영은 2019년 5월 홍콩계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홍콩SPC에 지분 70%를 매각했다. 블랙스톤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칼라일(The Carlyle Group) 등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모펀드(PEF) 중 하나다. 지오영을 인수한 블랙스톤 홍콩법인은 중국계 자본 투자를 맡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지난해 4월 29일 외국계 사모펀드(PEF)인 앵커프라이빗에쿼티(Anchor Private Equity)가 보유한 46% 지분을 포함, 지오영 지분 100%를 1조100억원에 인수한다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공동창업자인 조선혜 회장, 이희구 회장지오영 및 동부약품 회장은 매각 대금을 대부분 블랙스톤이 지오영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에 투자해 주요 주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해 페이퍼컴퍼니의 지분 23.66%를 보유해 사실상 최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앵커프라이빗에쿼티는 페이퍼컴퍼니를 조 회장 외 6개 해외투자법인으로 나눠 지분을 고루 보유하도록 했고, 그 중 1개 투자법인은 조선혜홀딩스로서 조 회장의 경영권을 공고히 했다.
김정숙 여사·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 연관설 … 각 당사자 “사실 무근”
조선혜 회장과 김정숙 여사가 같은 학교 출신으로 연관성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는 “지오영 대표와 김정숙 여사는 일면식도 없다”며 “최근에 가짜뉴스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1955년생으로 인천 인일여고, 숙명여대 약대를 졸업했다. 2009년 5월부터는 숙명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정숙 여사는 1954년생으로 숙명여·중고, 경희대 성악과를 다녔다. 둘 다 숙명학원 소속 학교를 나왔다는 것일 뿐 함께 학교를 다니거나 근무한 접점은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조 회장의) 남편은 중기부 산하 공영쇼핑의 대표이자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 최창희’라는 주장에 대해 공영홈쇼핑은 입장문을 통해 “최 대표와 조 회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이라며 “온라인카페 등에서 악성루머가 발생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