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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로비에 47억달러, 선거에 13억달러 등 美 제약업계 60억달러 지출
  • 홍세정 기자
  • 등록 2020-03-09 22:03:10
  • 수정 2020-03-10 09: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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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A 내과학회지, 1999년부터 20년간 집계 … 화이자>암젠>릴리 順, 산업계 중 1위
미국 정치권은 제약회사들의 약값 인하를 막는 입법 로비와 선거 후원에 휘둘리고 있다. 사진은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화이자(Pizer), 암젠(Amgen), 릴리(Eli Lilly) 등이 미국 굴지의 제약사들이 지난 20년간 미 의회 로비에 가장 많은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의사협회지 내과학회지’(JAMA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1999년~2018년에 제약회사·의료기기 등 헬스케어기업(보험사 제외)는 미 의회와 연방기관 로비 활동에 47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47억달러 중 46.8%인 약 22억달러가 1위를 차지한 미국제약협회(The Pharmaceutical Research and Manufacturers of America, PhRMA)와 나머지 19개 제약사 등 총 20개 기관에서 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화이자, 암젠, 릴리가 로비로 가장 많이 지출한 제약회사였다.

제약·의료제품 회사 대 연방정부 및 의회 로비 지출 top10 (1999~2018)
미국제약협회 4억2230만달러
화이자 2억1920만달러
암젠 1억9270만달러 
일라이릴리 1억6620만달러
생명공학산업협회 1억5340만달러
미국 머크 1억4300만달러
로슈 1억3590만달러
노바티스 1억3020만달러
존슨앤드존슨 1억2990만달러
사노피 1억1670만달러

공화당 대 민주당 6대4로 배분, 상위 20위권 의원이 21% 독점

같은 기간 제약회사·의료기기 업계는 대통령 선거 및 연방의원 선거 유세(캠페인)에는 4억1400만달러를 썼다. 이 중 2200만달러는 대통령 후보에, 2억1400만달러는 연방의원 후보에 직접 들어갔다. 나머지는 공약 개발 및 홍보 등에 투입됐다. 4억1400만달러 중 1억5200만달러는 헬스기업과 관련된 개인 종사자, 1억6500만달러는 정치지지단체, 9600만달러는 외부 연성 지지자들이 냈다. 

직접 정치인이나 정당위원회에게 돌아간 3억6700만달러만 놓고 보면 58.9%가 공화당에, 나머지 41.1%가 민주당에 배분됐다. 친기업 보수 성향인 공화당에 제약기업의 이해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방의원 선거에 투입된 2억1400만달러 중 21%에 해당하는 4500만달러를 상위 20명의 의원들이 선점했다. 

논문에 따르면 1999~2018년 업계는 메디케어(오바마케어 2014년 1월 시행) 관련 이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의원에게 관심을 두며 정치 후원금을 지급했다. 상원에선 오린 해치(Orrin Hatch, 유타주), 리차드 버(Richard Burr, 노스캐롤라이나주),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켄터키주)가 최고 수혜자로 모두 공화당 소속이었다. 하원에선 민주당 안나 에슈(Anna Eshoo,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프레드 업튼(Fred Upton, 미시간주), 민주당 프랭크 팰런(Frank Pallone, 뉴저지주)가 톱3 안에 들었다. 

선거 유세 정치성금도 입법 로비와 마찬가지로 화이자 2320만달러,  암젠 1470만달러, 릴리 1330만달러로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주 정부 및 주 의원 선거에는 8억7700만달러를 써 총 12억9100만달러를 선거 캠페인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 

이같은 제약업계의 입법 및 대정부 로비 및 선거 관련 자금 지출은 다른 산업보다 가장 많았다. 다만 지난해만 따지고 보면 미국 IT ‘빅 5’인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대 정부 및 의회 로비 지출액은 총 6220만달러(약 725억원)로, 미 상의(5820만달러)를 앞지른 것은 물론 존슨앤드존슨·머크·화이자·암젠·릴리 등 의약업계 빅 5의 로비액(347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이는 IT 공룡에 대한 반(反)독점·사생활 침해 우려가 고조되면서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ITC), 주 검찰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IT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제약회사의 신경전, 약가 인하 vs 인상 … 결국 로비에 굴복

미국은 제약사에게 가장 수익성 높은 시장이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는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통제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약값을 결정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시장에서 제약사의 약값책정은 대선 기간 내내 핵심 이슈로 부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선거운동 당시 “미국의 약 가격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며, 당선 이후엔 소비자 단체와 약값 인하를 약속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 기자회견이나 자신의 SNS를 통해 “제약회사들은 왕성한 로비활동으로 제멋대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며 제약사들의 약값 인상을 공공연히 비난해왔다. 

그는 “미국의 약값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특히 노인들을 위한 메디케어 보험의 약값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된 지 열흘 만에 백악관에서 화이자, 암젠, 머크, 릴리, 존슨앤드존슨 등 미국 주요 제약회사 대표를 모아놓고 “미국 제약회사들의 약값은 천문학적”이라고 비판하며 가격 인하를 요청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약품 구매자이지만 적절한 입찰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약업계에 입찰제도를 도입하면 수십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약회사들이 가격을 낮추는 조건으로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가 더욱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약가 인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약가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제약시장 분석업체 RX세이빙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에도 60개 제약사는 미국에서 약값을 5.8% 올렸다. 화이자는 40여 종의 의약품 가격을 5.6%올렸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렐바100엘립타’ 등 천식치료 흡입제와 항암제 ‘제줄라캡슐’ 등 30여 개 의약품 가격을 1~5% 인상했다. 이밖에 사노피, 테바, 길리어드 등도 인상 대열에 참가했다. 중국 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중국·인도 등에서 원료의약품 가격이 올라갈 조짐이어서 인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번 논문의 집필자인 런던경제정치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올리비에 바우터스(Olivier Wouters) 보건경제학 선임연구원은 “미국 약국에서 처방약에 대한 인플레이션 보정 1인당 지출은 1999년 520달러에서 2017년 1025달러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제약회사 로비스트들이 의회 로비를 통해 약값을 올리고 있는 사례는 JAMA 논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제약업계의 지출은 2016년 대선과 2010년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일명 오바마케어) 통과 직전 등의 주요시기에 증가했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에 대한 업계의 후원을 얻었지만 메디케어가 가격 협상을 허용하는 등 의약품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제한을 가하는 데 동의해야만 했다. 

이 논문은 주요 주(state) 보건정책 변화에 즈음에 지출이 급증하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제약업계는 2017년 오하이오주 선거에 기부금 6100만달러를 투자해 의약품 가격을 낮추는 계획을 저지했다. 이는 분석된 20년 동안 주 전체 제약업계 기부금의 82%를 차지했다. 

“로비 지출 수익의 0.1%에 불과 … 로비 영향 최소화 할 수 있어” 

제약 및 의료제품 산업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데 성공하려면 수입의 일부만 소비하면 된다. 바우터스는 “캠페인 기부금과 로비에 지출된 비용은 미국 소비자가 처방약에만 소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5.5조달러의 약 0.1%에 불과하다”며 “환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많은 조직(시민단체 등)은 재정 자원이 더 많이 제한돼 약값 인하 여론이 힘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미국 정부가 제약업계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주(州) 차원의 입법 투표에 대한 정치 기부 제한, 의원 재정 현황 공개와 로비스트와의 미팅에 관한 온라인 기록 등을 통한 투명성 제고 등이 정책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의회와 행정부가 입법과 정책을 계획할 때, 의회와 집행 관계자들은 미국 사회 모든 정파와 당사자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캠페인 기부금 및 로비 지출을 통해 공무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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