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치열해지는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orosis, MS) 시장에서 독일 머크(Merck KGaA)의 ‘마벤클라드정’(Mavenclad, 성분명 클라드리빈 cladribine)은 로슈(Roche)의 ‘오크레버스’(Ocrevus, 성분명 오크렐리주맙 ocrelizumab) 등 거대 품목에 짓눌려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출시 1년 만에 마벤클라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9년에 마벤클라드의 전세계 매출은 전년도(2018년) 9000만유로보다 2.5배 이상 증가한 3억2100만유로(3억5800만달러)를 달성했다. 2018년 말 전세계 MS 시장의 1%를 차지했던 마벤클라드는 2019년 5% 이상을 넘어서는 도약을 했다.
2019년 3월 29일 미국에서 허가받은 마벤클라드는 그 해 3분기에 8900만유로(9800만달러)의 글로벌 누적 매출을 올렸다. 이 중 약 3분의 1이 미국에서 나온 것이다. 3분기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무려 45% 늘어난 것이다. 이는 같은 분기에 고정환율로 전년 동기 대비 15.1% 매출이 감소해 3억1800만유로(3억5000만달러) 매출에 머문 머크의 오래된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레비프프리필드주사’(Rebif, 성분명 인터페론베타-1a, interferonbata-1a)의 판매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마벤클라드는 강력한 효능을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즉각적인 승인을 받았다. 재발과 완화를 반복하는 유형(relapsing-remitting), 또는 활동성 2차 진행성(active secondary progressive) 유형의 MS에서 유일한 경구용 단기 치료법이 된 게 의미가 크다.
마벤클라드는 2017년 8월에 승인을 얻은 유럽에서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약을 복용하는 90%의 환자들이 2년 연속 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게 고무적이다. 머크는 ”마벤클라드의 매출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지만 치열한 MS 시장에서 합당한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마벤클라드가 미국 승인을 받기 직전인 2019년 3월 26일 거의 동시에 미국 허가를 받은 노바티스(Novartis)의 ‘메이젠트’(Mayzent, 성분명 시포니모드, siponimod)는 2019년 글로벌 시장에서 17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임상적 독립증후군(CIS) 다발성경화증, 재발성-완화성 경화증(RRMS), 활성형 2차 진행성 다발성경화증(secondary progressive multiple sclerosis, SPMS) 치료제로 승인된 메이젠트도 추가적인 장벽과 직면하고 있다. 노바티스의 마리-프랑스 트슈딘(Marie-France Tschudin) 임원은 지난해 10월 실적발표회에서 “우리는 메이젠트와 관련, 처음 12개월은 의사들에 대한 의약품 교육에 달렸다고 항상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SPMS를 진단하지 않았는데 이런 관행을 바꿔야 하며, 여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빠른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마벤클라드는 로슈의 빠르게 성장하는 MS약 오크레버스의 가파른 벽과 마주하게 됐다. 2017년 3월말에 FDA로부터, 2018년 1월에 EU 집행위원회의로부터 승인받은 오크레버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마벤클라드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2019년 전세계 매출로 전년 대비 57% 증가한 37억1000만스위스프랑(39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스위스 제약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출시된 약물로 기록되고 있다.
또 너무 커서 요리하기 어려운 바이오젠의 대어 ‘텍피데라’(Tecfidera, 성분명 디메틸푸마레이트, dimethyl fumarate)는 작년에 44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회사 매출 비중의 30%를 차지해 가장 많이 팔린 효자가 됐다. 더욱이 지난 2월 5일 미국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Patent Trial and Appeal Board)은 제네릭 전문 제약사 마일란(Mylan)와 바이오젠 간 특허소송에서 바이오젠의 손을 들어줬다. 이 약의 특허가 만료되는 2028년까지 제네릭 경쟁 없이 판매가 가능해졌다.
2019년 10월말 승인된 뷰메리티(Vumerity, 성분명 디록시멜 퓨마레이트, Diroximel Fumarate)는 텍피데라 복용 시 위장관계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후속 개량신약이다. 지난해에는 500만달러의 매출에 그쳤지만 미국 투자기관인 번슈타인(Bernstein)의 애널리스트들은 “텍피데라의 판매가 감소함에 따라 뷰메리티가 2022년까지 7억3400만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바티스(Novartis)의 ‘아르제라’(ARZERRA, 성분명 오파투무맙, Ofatumumab)는 미국 글로벌 학술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의 인공지능(AI) 예측 프로그램 코텔리스(Cortellis)가 지난달 선정한 ‘2020년 주목할 만한 의약품 목록’에 꼽혔다.
아르제라는 지난해에 38억달러(약 4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르제라는 본래 2009년 10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LL)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획득했다가 지난달 24일 재발성 다발성경화증(RMS)으로 적응증을 넓히기 위해 FDA와 유럽 의약품청(EMA)에 적응증 추가 신청을 접수했다.
월 1회 ‘아르제라주’ 20mg을 피하주사하면 사노피의 경구용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오바지오필름코팅정’(AUBAGIO, 성분명 테리플루노미드, teriflunomide) 14mg 1일 1회 복용보다 재발 위험성과 장애진행도(CDP)가 낮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적응증 추가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올 6월 이전에 승인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아르제라는 스위스 제약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출시된 약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오바지오는 2017년 10억달러 매출을 목전에 두고 ‘진행성 다초점 백질뇌병증’(progressive multifocal leukoencephalopathy, PML) 등의 부작용이 노출돼 2018년 이후 새로 진입한 신약들에 의해 뒷전으로 물러난 약이다.
아르제라는 급성장 중인 로슈 ‘오크레버스’(Ocrevus, 성분명 오크렐리주맙 Ocrelizumab)와 같은 CD20 항체의약품으로서 맞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약효는 동등하지만 아르제라는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자가투여가 가능해 정맥주사(IV) 제형인 오크레버스보다 많은 수요가 예상된다. 코텔리스는 아르제라가 2024년 12억6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노바티스(Novartis)의 길레냐(Gilenya, 성분명 핀골리모드 fingolimod)도 이 회사가 보유한 또다른 굵직한 파이프라인이다. 2010년 FDA 승인을 얻었고 2019년 32억2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작년 12월 FDA는 중국 선전의 HEC파마(HEC Pharm), 인도 최대 바이오 제약사인(Biocon) 및 썬파마(Sun Pharma)가 만들게 될 길레냐의 3가지 퍼스트 제네릭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들 복제약은 미국 연방법원 판결로 2027년까지 미국 시장에 출시되지 못할 전망이다.
숨겨진 잠룡도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오자니모드(Ozanimod)’는 미국 글로벌 학술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의 인공지능(AI) 예측 프로그램 코텔리스(Cortellis)가 지난달 내놓은 ‘2020년 주목할만한 의약품 목록’에 선정됐다.
오자니모드는 경구용 S1P1·S1P5 수용체 작용제로 BMS가 740억달러에 거대 바이오기업인 세엘진을 인수할 때 주요 파이프라인에 포함된 약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8년 2월 세엘진이 제출한 데이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심사를 거부했다. 지난해 6월 FDA와 유럽 의약품청(EMA)가 재신청을 받아들여 오는 3월 25일 재검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코텔리스는 이 약이 승인되면 2024년까지 누적 매출이 16억2000만달러(약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다발성경화증이란?
MS는 면역체계가 뇌와 척수를 비롯한 중추신경계를 공격해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증상이 호전되거나 완화되다가도 갑작스럽게 악화하는 재발이 반복되며 신경계가 손상되는 등 장애가 남는다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