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내서 바이러스 돌연변이 생성 유도, 증식 억제 기전 … 중국서 간이임상 진행해 일부 효과 확인, 부작용 우려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25일 수입특례를 통해 항바이러스제 ‘아비간’(Avigan, 성분명 파비피라비르 favipiravir, T-705)을 코로나19(중국 우한 폐렴) 치료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이 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비간은 일본 후지필름홀딩스 계열사인 토아먀화학(Toyama chemical)이 개발한 바이러스성 RNA 의존성 RNA 선택적 중합효소 억제제다. 이 약은 체내에서 경구용·정맥주사용 모두 활성형인 favipiravir-RTP(favipiravir-riboforusorosyl-5’-triphosphate) 화합물로 대사된다. 이 물질은 바이러스 게놈의 복제를 교란해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증식을 억제한다.
인간 히포크산틴구아닌 포스포리보실트랜스퍼라아제(hypoxanthineguanine phosphoribosyl transferase, HGPRT,또는 HPRT)이 이 약의 활성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GPRT는 HPRT1 유전자에 의해 코딩되는 효소로 하이포산친(hypoxanthine)을 이노신일인산(IMP)으로, 또는 구아닌(guanine)을 구아노신일인산(GMP)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즉 5-phosphoribosyl 1-pyrophosphate(PRPP)로부터 포스포리보실(5-phosphoribosyl) 그룹을 얻어다가 퓨린 계열 핵산에 갖다 붙이는 역할을 한다.
아비간은 RNA를 구성하는 구아닌의 유사체(analogue)로서 RNA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을 갖는다. 인체내(숙주)의 효소인 HGPRT에 의해 대사물질(metabolites)인 RTP(ribofuranosyltriphosphate)로 전환돼 RNA 바이러스의 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를 선택적으로 저해한다. RdRp가 저해되면 바이러스가 제대로 증식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다.
이 약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 oseltamivir)와는 기전이 다르다.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가 세포막을 녹이고 세포 안으로 침투할 때 필요한 분해효소인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와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 안으로 들어갈 때 세포막에서 잘 떨어지지 않도록 들러붙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혈구응집소(hemagglutinin)를 통해 감염성을 높인다.
타미플루는 뉴라미니다제를 억제해 체내에 침입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증식한 다음 세포 표면으로 뚫고 나와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뉴라미니다제는 헤마글루티닌과 시알릭산(sialic acid residue)의 결합을 끊어주면서 인플루엔자가 숙주세포를 떠나 주변세포를 감염시키도록 돕는데 타미플루는 시알릭산과 유사한 구조를 가져 뉴라미니다제의 기능을 저해한다.
아비간은 기존 연구에서 A형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유도해 증식을 막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포주와 동물모델 연구결과에서 아비간은 숙주(host)에게 독성없이 바이러스 양을 감소시키고, 질병의 징후를 억제한 결과를 보였다. 파비피라비르는 포유류 세포에서 RNA나 DNA 합성을 억제하지 않으며 독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비간은 피라진카르복사미드(pyrazine carboxamide) 유도체로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뿐 아니라 황열병(yellow fever), 에볼라바이러스(ebola virus), 아레나바이러스(arenavirus), 분야바이러스(bunyavirus), 웨스트나일바이러스(West Nile virus, 미국식 일본뇌염), 알파바이러스(alphaviruses), 엔테로바이러스(enteroviruses), 리프트밸리열병바이러스(Rift Valley fever virus) 등 광범위한 바이러스에 활용 가능한 것으로 확인했다. 지카바이러스(Zika virus)에서도 제한적인 효과를 보였지만 MK-608에 비해서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은 현재까지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없어 사망률이 6~30%에 달하는 인플루엔자, 웨스트나일바이러스증, 황열병, 구제역, 플라비바이러스(flaviviruses), 아레나 바이러스 등에 드물게 처방된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 SFTS)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개발 초기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다양한 RNA 바이러스 관련 활성을 가지고 개발한 약이기 때문에 다른 질환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인간 호흡기세포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았다. 이에 지금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용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게다가 임신부에게 투약하면 태아 사망이나 기형을 일으킬 수 있고, 혈중요산수치를 높이는 등 부작용이 발견됐다. 이 약은 임신부와 소아에게 투여할 수 없다. 이에 2014년 3월 일본 정부는 다른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듣지 않는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제조·판매를 승인했다.
일본은 2014년 아비간을 A형 신종플루(H1N1) 등 인플루엔자 확산에 대비한 비상대응 의약품으로 허가했다. 2017년 3월 국가적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해 아비간을 비축하기 시작해 2020년 현재 200만명 분을 확보한 상태다. 다른 나라들이 주로 타미플루를 비축하는 것과 달리 타미플루와 자국 개발약인 아비간을 동시에 쌓아놓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2014년 10월 보건복지부가 후지필름과 아비간 공급에 합의해 한국에서 에볼라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하면 이 약을 공급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그 해에는 에볼라바이러스가 콩고민주공화국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창궐했고, 기니에서 에볼라 치료제로 아비간이 실제 투여됐다.
아프리카에서 발현된 에볼라 바이러스에도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유의성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연구소(Bernhard Nocht Institute for Tropical Medicine)의 로미 커버(Romy Kerber) 박사는 2015년 아프리카 기니에서 에볼라바이러스로 진단된 16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후향적 연구결과를 2019년 발표했다. 아비간 치료를 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42.5%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사망률 57.8%에 비해 낮게 나타났지만 생존율 향상의 경향성만 확인했을 뿐 통계적 유의성 확보에는 실패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아비간 대량생산에 나섰다. 후지필름은 2018년 10월 중국 대형 제약사인 저장하이정(浙江海正, Zhejiang Hisun Pharmaceutical), 중일우호병원(中日友好病院), 국가응급의약품공학연구센터(National Engineering Research Center for the Emergency Drug, NERCED)와 임상개발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저어장하이정은 중국내 아비간의 개발·생산·판매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달 코로나19 치료제로서 임상시험 및 원료의약품 생산에 들어갔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이 약을 공식 코로나19 치료 적응증으로 허가하고 지난 16일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아비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dRP 유전자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광둥성의 선전시에서 시행된 코로나19에 감염된 80여명을 대상으로 한 항바이러스제인 애브비 ‘칼레트라정’(성분명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lopinavir·ritonavir)와 비교임상에서 활발한 항바이러스 효과 및 경미한 이상반응이 확인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치료 효과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애스클레티스파마(Ascletis Pharma)도 자체 개발한 신물질(ASC-09) 및 리토나비르(ritonavir) 복합제로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인공지능 플랫폼인 코텔리스(Cortellis)와 의료전문지인 바이오월드(BioWorld)는 전세계적으로 30개의 가능성 있는 신종 코로나치료제 신약후보물질이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 25일부터 코로나19의 근본적 치료 목적보다는 경증 환자의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아비간의 적극 투여를 지시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환자에 아비간을 시험 투약하자 증상 악화와 무증상 감염자 발병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증 환자나 무증상 감염자는 다수의 임상시험을 완료한 다른 바이러스억제제로 치료가 가능한데다 가벼운 증상자는 완치 및 퇴원이 이뤄지고 있어 임상시험이 부족한 아비간 투여에 대한 실효성·안전성에 의문이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의사 중심의 시민단체인 바른의료연구소는 “신종플루 사태 때 타미플루를 사용해 효과를 본 것과 같이 경증 환자에게 아비간을 투여해 질병 치료 및 확산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아비간을 에볼라 치료 등 허가 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중앙임상위원회, 치료지침위원회 전문가 등이 협의 중”이라며 “국내에는 100명 분 정도 약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