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중국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국내 제약사가 늘고 있다. 이번 사태 초기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한 외국계 제약사와 달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국내 제약사들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상황이 급변하면서 외부 영업활동을 멈추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국내 제약사의 조치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영업활동 자체가 어려워진 데 따른 불가피성에 기인한다. 현장 직원이 감염되면 담당 병원, 영업소 등이 폐쇄되고 방역조치가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힌 의료기관으로부터 원성을 듣는 등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영업직원은 사실상 출근해도 사무실에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이 제약사 영업사원 방문을 자제하도록 요청한 데 이어 개원가에서도 같은 요구가 이어졌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지난 20일 영업사원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에 발송했다.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요즘은 병원·약국에서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라며 “이 시기에 영업활동을 하면 오히려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어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적용한 제약사는 LG화학·CJ헬스케어·녹십자·제일약품·동화약품 등이다.
LG화학은 지난 21일부터 전 영업점의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이 회사의 의약품 사업부인 생명과학본부(옛 LG생명과학)는 지난 24일부터 전 영업직이 무기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CJ헬스케어도 지난 24일부로 모든 영업직의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녹십자도 25~26일 영업직을 대상으로 이틀간 재택근무를 시행했으나 사태 추이를 고려해 기한을 연장할 방침이다.
제일약품·동화약품은 24일부터 26일까지 영업직이 모두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제일약품은 지난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동화약품은 28일까지로 공지했지만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약품은 대구·경북 지역 영업직에 한정했던 범위를 수도권 지역 영업직까지 확대하고 무기한 재택근무 중이다.
영업직원을 대상으로 일부 자체적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내근직을 포함한 전직원 재택근무 적용 등을 고려하면서 상황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유한양행과 대웅제약은 공식적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데 두 회사는 전국 영업직원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사원 재택근무 확대에 이어 내근직 단축근무를 택한 곳도 있다. 동아에스티와 부광약품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전국으로 영업직 재택근무 대상을 확대했다. 여기에 동아에스티는 내근직 등 다른 직원의 업무시간을 오전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으로, 부광약품은 오전 10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변경해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다중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배려했다.
동아ST 관계자는 “단축근무와 재택근무 확대로 동아에스티 직원 중 유증상자·의심환자는 없다”며 “공장 입구에서 열 감지 카메라로 확인하고, 마스크·손소독제 사용을 권장하는 등 감염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이미지에 타격이 크다”며 “제약사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가짜뉴스가 한 차례 돌면서 이같은 부담감이 더 커졌고 제약사 중 감염 첫 사례가 돼선 안된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깔려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약품산업협회에 따르면 주요 외국계제약사는 대부분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일부 직군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던 바이엘코리아,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암젠코리아, 에자이코리아, 한국BMS제약, 한국MSD, 한국노바티스, 한국다케다제약, 한국로슈, 한국릴리,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애브비, 한국화이자제약 등은 지난 23일 전후로 적용 대상을 전직원으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