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류속도 빠른 동맥혈전엔 항혈소판제인 아스피린, 혈류정체 원인 정맥혈전엔 항혈소판제 와파린
아스피린(ASPIRIN)과 와파린(WARFARIN)은 모두 체내 혈전 생성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작용기전과 임상적으로 사용하는 적응증에 차이가 있다. 항혈전제는 크게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항혈소판제와 혈액응고인자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응고제로 분류된다. 아스피린은 항혈소판제, 와파린은 항응고제에 속한다.
정맥성 혈전 vs 동맥성 혈전 … 혈전 생성된 혈관 부위 따라 특징 달라져
혈전(血栓)은 혈액 중 섬유소원(Fibrinogen)과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혈구의 잔해가 비정상적으로 얽혀 피가 끈끈해질 때 생긴다. 혈류를 감소시키거나 혈류를 막음으로써 조직이나 장기에 허혈성 손상(혈액공급 부족으로 해당세포가 손상됨)을 일으킨다. 혈관 벽에 부착돼 있던 혈전이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다른 부위로 이동해 굵은 혈관을 막는 덩어리가 되면 색전(塞栓)이라고 한다.
혈전은 형성된 부위에 따라 정맥성, 동맥성으로 분류된다. 어느 혈관에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생성 과정은 물론 심지어 색도 달라지게 되는데 정맥성 혈전은 빨간색이라 적색혈전, 동맥성혈전은 하얀색이라 백색혈전이라고 부른다.
정맥혈전은 정맥혈의 울혈(혈류정체)로 부종·염증·통증이 동반하는 것으로 주로 장딴지정맥에서 비롯되며 골반, 무릎 상부의 심부정맥에서도 발생한다. 주로 혈류 정체, 혈관내피세포 손상, 혈액 과(過)응고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정맥혈전은 혈액이 고이는 게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맥은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혈액이 흐르는 길로 혈관 압력이 거의 없고 혈류 속도도 느린 편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상처가 없어도 혈액 속 혈소판이 서로 들러붙으면서 커지고, 여기에 혈액응고인자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혈전을 형성하게 된다.
동맥혈전은 동맥에서 형성된 혈전이 말초혈관을 막아 혈전이 생긴 부위 아래의 조직이나 장기에 혈류장애를 일으킨다. 급성심근경색이 동맥혈전을 초래하는 흔한 원인으로 뇌나 다리의 혈관에 미쳐 2차적으로 뇌졸중, 하지혈액순환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동맥은 심장이 내뿜는 혈액이 온몸에 나가는 길로 혈액량이 많고 혈류 속도도 빨라 혈관이 손상되기 쉽다. 몸에 상처가 생기면 백혈구와 혈소판이 빠르게 응집되면서 혈전이 만들어진다.
동맥혈전은 혈류속도가 빨라 혈소판응집(혈전생성)을 억제하는 게 예방 및 치료의 관건이다. 따라서 아스피린, 티클로피딘(ticlopidine)과 같은 항혈소판제(혈소판응집억제제)가 효과적이다. 반면 정맥혈전은 정맥의 혈류속도가 느리고 심장 및 뇌와 직결되는 혈관이 아니므로 혈전생성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이미 생긴 혈전이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게 더 중요하다. 따라서 헤파린(heparin), 와파린과 같은 항응혈제(항응고제)가 보다 효과적이다.
아스피린, 해열진통제로 출발해 항혈전제까지 영역 확장
대표적인 항혈소판제인 아스피린은 해열·소염 진통제이자 혈전 예방약이다. 버드나무 껍질이 가진 살리실산(salicylic acid)의 하이드록시기(hydroxy group)를 아세틸(acetyl)로 치환시켜 합성된 의약품으로 아세틸실리실산(acetylsalicylate, ASA)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스피린은 1899년 독일 화학회사인 바이엘(Bayer)에 근무하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이 개발한 약이다. 호프만이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낸 살리실산을 순수하고 안정된 형태의 아시텔살리실산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아스피린이 탄생했다.
원래는 진통제·해열제·소염제로 사용됐으나 이후 저용량으로 장기간 투여하면 혈전 생성을 막아 심근경색과 허혈성 뇌졸중의 발생 위험을 줄인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김원 경희대병원 심장혈관센터 교수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급격히 감소시킨다는 1998년의 대규모 연구결과에 따라 지금까지도 심뇌혈관질환의 1, 2차 예방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며 “다만 심뇌혈관질환이 없는 사람 대상 아스피린 예방효과는 최근 들어 부정적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 고용량 제품은 감기로 인한 발열, 근육통, 관절염 등 치료에 사용된다. 혈전으로 인한 심뇌혈관질환 예방 목적일 경우 ‘100㎎이하 저용량’ 제품이 쓰인다. 시중에는 오리지널약인 바이엘코리아의 ‘아스피린프로텍트정’과 다수의 복제약이 출시돼 있다.
아스피린은 용량에 따라 저용량(75~100mg/day)에서는 항혈소판제로 사용되며 보다 높은 용량(650mg~4g/day)에서는 해열소염진통제로 사용된다. 저용량에서는 사이클로옥시저나제(Cyclooxygenase 1, COX-1)를 비가역적으로 아세틸화시킴으로써 트롬복산A2(Thromboxane A2, TXA2)에 의한 혈소판 생성을 억제한다.
저용량 아스피린은 심근경색·협심증·뇌경색 등을 겪는 환자에서 혈전 생성을 억제할 목적으로 쓰인다. 또 당뇨병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 등 고위험군 환자에서 심혈관계 위험성을 감소할 목적으로 통상 1일 1회 100mg을 복용한다. 아스피린은 위장관출혈 등 위장장애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식후에 복용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장용정(腸溶錠)의 경우 충분한 물과 함께 식전에 복용할 수 있다.
혈소판은 출혈이 일어났을 때 피가 멎게 하는 필수적인 물질이지만 지나치게 잘 응집하는 경향을 띠면 특히 뇌졸중·심장병 환자에게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므로 이런 경우 혈소판 응집을 저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TXA2는 혈소판 응집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혈관벽 근육에 직접 작용해 혈관을 강력하고 수축시키는 물질이다. 아스피린은 TXA2 억제를 통해 혈소판 응집을 지연시키고 혈관단면적을 넓히며 출혈시간(응혈억제시간)이 연장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아스피린에 의해 혈소판응집이 억제되면 7~10일간 혈전이 뭉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치과시술을 포함해 출혈이 뒤따르는 수술을 받기 최소 1주일 전에는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중등도 용량에서는 COX-1 및 COX-2를 억제함으로써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의 생성을 막는 기전으로 해열·소염·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아스피린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2차 치료제로 P2Y12 억제제인인 치에노피리딘 계열의 티클로피딘(ticlopidine, 유유제약 크리드정),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 사노피 플라빅스정 ), 프라수그렐(prasugrel, 다이이찌산쿄 에피언트정 ) 등과 이보다 다소 진보된 티카그렐러(ticagrelor, 아스트라제네카 브릴란타정 ), 칸그렐러(cangrelor, 국내 미시판) 등이 뇌졸중·협심증·심근경색 예방약으로 주로 쓰인다. P2Y12억제제는 혈소판을 활성화해 혈액응고를 촉진하는 P2Y12 퓨린수용체를 억제하는 약물로 ADP 수용체 저해제(Adenosine diphosphate receptor inhibitor)라고도 한다.
비타민K 길항제 와파린, 환자 INR 수치에 따라 용량 결정
출혈이 생기면 지속적인 출혈을 막기 위한 지혈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비타민K는 지혈을 담당하는 응고인자 단백질 형성에 관여한다. 와파린은 비타민K의 작용을 억제해 응고작용을 방해하는 약물로 비타민K 길항제라고 불린다.
와파린은 실제로 비타민K를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게 아니라 비타민K를 재활용토록 하는 효소인 Vitamin K epoxide reductase(VKOR)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비타민K 의존성 혈액응고인자인 Factor 2·7·9·10의 합성을 막아 항응고 효과를 나타낸다. 이밖에 항응고 단백질인 C단백 및 S단백(Protein C & Protein S)도 억제한다.
와파린은 정맥혈전증, 폐동맥색전증의 예방과 치료에 사용되며 색전성 심방세동 치료 등에 사용된다. 제일약품의 ‘제일와파린정’, 대화제약의 ‘와르파린나트륨정’이 대표적이다.
와파린은 과다출혈이 우려되므로 이를 개선, 진화한 신약이 바로 비(非) 비타민K길항제 경구용 항응고제(non-vitamin K antagonist oral anticoagulant, NOAC)이다. ,한국BMS제약의 ‘엘리퀴스정’(apixaban), 바이엘코리아의 ‘자렐토정’(rivaroxaban),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프라닥사캡슐’(dabigatran), 다이이찌산쿄의 ‘릭시아나정’(edoxaban)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와파린은 일반적으로 2~5mg으로 시작하는데 용량결정은 질환에 따라 환자의 INR(international normalized ratio) 값을 측정해 개별적으로 조절한다. INR은 항혈액응고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써 프로트롬빈시간(prothrombin time, PT)에 대한 검사기관 상호간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PT의 국제적인 표준화비율을 말한다.
INR 값이 1보다 높다는 것은 정상인보다 혈액응고가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 INR 2.5를 목표수치로 설정하며 INR 값을 2~3의 범위로 유지하도록 와파린 용량을 조절한다. 그러나 인공기계 심장판막 환자 등 특별한 경우에는 INR 3을 목표로 하고 INR 값을 2.5~3.5 범위로 유지한다.
INR 값이 목표수치보다 높다는 것은 환자에게 출혈위험이 있음을 의미하며 반대로 INR 값이 목표수치보다 낮다는 것은 혈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와파린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INR 수치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하다. 이에 반해 아스피린은 특별한 모니터링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위궤양이나 간손상 같은 위험성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스피린, 위장관장애 및 라이증후군 유발할 수 있어
아스피린은 위장관 장애 위험성이 있으므로 소화성 궤양 환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사용금기다. 이밖에 아스피린 천식이 있거나 출혈경향이 높은 환자, 임부에게도 사용하지 않는다. 고용량의 메토트렉세이트(methotrexate)를 사용하는 환자에게도 투여할 수 없다. 아스피린이 신세뇨관에서 메토트렉세이트의 배설을 지연시켜 치명적인 혈액학적 독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은 라이증후군(Reye’s syndrome)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14세 이하의 수두·인플루엔자 환자에게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라이증후군은 소아에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에 뒤이어 갑자기 뇌와 간에 병변이 생기고 그에 따른 의식장애·구토·간수치 상승·미토콘드리아 변형 등의 증상이 단기간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때로는 3일 이내에 사망하는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아스피린은 다른 항혈전제나 다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와 병용 시 출혈 위험성이 증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부프로펜 등 일부 NSAIDs는 아스피린의 비가역적 혈소판 응집억제 작용을 감소시켜 오히려 혈전 위험성을 높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 술은 위점막 손상을 증가시켜 아스피린의 위장관 출혈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와파린, 비타민K 결핍 환자 사용 금기 … 약물·음식 상호작용 많아 주의해야
와파린은 비타민K 길항효과를 나타내므로 비타민K 결핍 환자에게는 사용금기다. 또 활동성 궤양 같이 출혈 경향이 있는 환자에게 사용해선 안 된다. 와파린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임부에게 사용은 금기된다.
와파린은 주로 간대사 효소(CYP2C9, CYP2C19 등)에 의해 대사된다. 이 효소를 매개로 대사되는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약효가 감소될 수 있다. 예컨대 간대사 효소 유도제인 결핵치료제 리팜핀(rifampin), 간질치료제 페노바르비탈 (phenobarbital) 등과 병용하면 와파린 효과가 준다. 반대로 진통소염제 페닐부타존(phenyl butazone) 편두통약 노르트립틸린(nortryptylin)등 간대사 효소 억제제와 병용 시에는 와파린의 작용이 증가될 수 있다. 또 녹황색 채소 등 비타민K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 음식에 의해 효과가 감소되기도 한다.
와파린은 다른 약물, 음식 등과 상호작용이 많은 약이다. 평소 식습관 및 약물 복용 상태를 유지하면서 INR 수치를 모니터링하고 와파린 용량을 정해야 한다. 갑작스런 식습관 변경을 자제하고, 새로운 약을 복용할 경우 의사·약사와 상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