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 다시 이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얼마 전 췌장암 4기라는 사실을 공개한 유상철 프로축구 감독이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한 말이다.
흔히 4기 말기암, 그 중에서도 췌장암이라고 하면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항암치료법의 발전으로 암이 주변 조직을 침범하거나 다른 장기에 전이된 3, 4기 췌장암 환자의 극복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암치료는 수술과 일반적인 항암·방사선 치료를 넘어 정밀의학에 바탕을 둔 개인별 맞춤치료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정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 회장)는 “항암치료의 변화와 방향성은 면역치료, 정밀의료, 개인맞춤치료로 정리할 수 있다”며 “같은 암이라도 환자마다 유전자의 변이 상태가 각각 다르고 장기 및 전신 상태도 달라 선별적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밀의료를 이용한 개인맞춤형 표적치료는 전이성 암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표적치료제를 처방한다. 예를 들면 한국인에 흔한 위암에서 환자별 암 유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같은 위암이라도 각 유형에 맞는 치료법을 선택한다.
국내 한 대학병원 연구팀은 1차 항암 치료에 실패한 말기 위암 환자의 유전자와 단백질을 분석해 암 관련 8가지 유전자의 변이가 확인된 환자에게 8가지 표적항암제 신약을 투여한 결과, 기존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보다 유전자 정보에 따른 맞춤형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의 생존율이 약 40% 향상된 것을 확인했다.
황인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아직 대부분의 위암 환자가 같은 종류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일부는 맞춤형 치료를 받고 있다”며 “향후 면역치료와 개인별 맞춤치료로 효과가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백 개의 유전자 변이 여부를 한번에 분석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이 개발돼 암 발생과 진행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조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선택해 치료함으로써 개인별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 중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를 대상으로 표적치료제 올라파립(Olaparib)을 투여한 결과, 표준치료법에 비해 유방암 진행 위험률이 42% 낮아진 것을 확인했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 난소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루카파립(Rucaparib)이라는 PARP(Poly ADP Ribose Polymerase)억제제로 표적치료(유지요법)를 시행해 질병 진행을 약 65% 감소시켰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뇌로 전이가 잘되는 암인 폐암도 최근엔 다양한 표적 항암제가 등장한 가운데 유전자가위에 항암제를 탑재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이 상용화됐다.
장정순 중앙대병원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흡연하지 않아도 특정 유전자 중에 EGFR 유전자 돌연변이와 ALK 유전자 변이 등으로 폐암이 발병하는 비율이 30% 정도 된다”며 “이 두 가지 유전자의 산물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면 생존율을 2배 이상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항암치료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암을 치료했다면 ‘면역치료(면역관문억제제)’는 암을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 체내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의 면역력을 높여서 암을 사멸시키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T면역세포는 암세포를 포함한 이종물질을 공격해 죽인다. 과도한 면역력에 의한 자기 세포공격을 막기 위해서 면역세포의 인지능력을 감소시키는 시스템(면역관문)이 활성화되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해 암 조직 성장을 막지 못하게 된다.
면역관문 억제제는 면역세포의 암세포 인식 능력을 증가시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든다. 면역항암제는 인공면역 단백질을 체내에 주입해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치료제로 면역체크포인트억제제(CTLA4 억제제, PD-1 억제제, PD-L1 억제제), 면역세포치료제, 면역바이러스치료제 등이 있다.
중앙대병원 암센터 황인규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현재 면역항암제(PD-1 억제제)는 악성 흑색종 등 다양한 암종에서 긍정적인 임상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비소세포폐암과 신장암, 호지킨림프종, 두경부 편평세포암, 요로상피세포암 등 다양한 적응증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면역관문억제제는 세포독성 항암제 또는 방사선치료 등과 병합요법으로 치료효과 개선이 기대돼 암 표준치료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